당신의 사랑은 어디 있습니까 - 행동하는 성자 피에르 신부의 분노의 휴머니즘
아베 피에르 지음, 김용채 옮김 / 바다출판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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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지구촌의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삶의 자세는 무엇인가?  형제애를 실현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과 선택이다. 형제애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요 삶의 태도이다. 행복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우리가 선택해야 할 수단들은 무엇보다 먼저 이 형제애를 기본으로 할 때 정당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제애의 회복이야 말로 지금 이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삶의 자세인 것이다.

  피에르 신부는 그의 글 서두에서 아인 슈타인과 만나 이야기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우리 시대에 커다란 변화가 닥쳐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정보의 폭발적인 증가라고 할 수 있는데 통신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한 정보의 대중화는 더이상 어느 누구도 부당한 이익을 얻을 수 없게 하고 또한 어느 누구도 부당한 착취를 당할 수 없게 하는 상황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탈 지역적 지구화의 상황은 더 이상 우리가 가진 것들을 나누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그리고 현실은 더이상 우리에게 각자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지고있는 공통적인 것들을 자기 만의 것이라고 우기는 행위는 더이상 자리매김 할 수 없으며, 이러한 행위는 오히려 폭력적인 다툼만을 초래하여 가진 것 모두를 빼앗기고 마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누든지 뺏기지 않기 위해 싸우든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피에르 신부는 이야기 한다. 뺏기지 않지 위해 아무리 싸웠어도 역사 안에서 뺏기지 않았던 자는 아무도 없었노라고 말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가 가진 일자리를 나누고 또 임금을 나누어야 한다. 이 세상은 무한정한 금고가 아니다. 이 세상은 분명히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계속해서 파내면 결국엔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더 이상 임금과 더분 일자리의 증가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꿈과 같다. 이러한 현실을 깨닫고 우리는 먼저 일자리를 나누고 덜 벌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시대의 특징은 사람들이 살아하는 이유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과 살아갈 힘을 상실한채 삶을 버텨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사람은 배 부른 돼지보다는 생각할 줄 알고 보람을 얻고 싶어하는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어한다. 때문에 우리가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모든 이들에게 일자리가 골고루 나누어 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대책을 먼저 세워야 만 한다. 어떻게든 사람이 살려고 버텨야 같이 살아보자고 하고 말고 할 것이 아닌가.

  저자 피에르 신부는 이 외에도 수 많은 대안과 사례들 - 특히 그가 몸 담아온 엠마오스 공동체에서 경험되어진-을 들면서 우리가 더불어 살아 내기 위한 구체적 대안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실천들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형제애의 회복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그의 조국 프랑스 혁명의 세가지 구호 자유, 평등, 박애 중에서 박애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그는 그가 이야기하는 더불어 사는 삶, 나누는 삶은 이 땅의 자유와 평등의 기본이자 목표가 되는 박애, 즉 이 형제애의 실현을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피에르 신부의 글 속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요한복음 8장의 한 구절.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노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렇게 하면 너희가 모두 나의 제자임을 알게 되리라. 너희는 서로에게 사랑을 가져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그의 마음 속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은 이렇게 사랑을 강조하고 실현한 스승이요 실천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또한 그의 말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자', '다른 사람과 고통을 나누겠다고 받아들이는 자'이며 '인간적이고 괴로워하고 분개할 줄 아는 자'로서 그와 반대 되는 자들을 스스로 힘겹게 하는 더 나아가 다른길을 선택하게 하는 자라고 할 수 있겠다.

  피에르 신부에게 있어서 생명과 평화는 함께 더불어 살아갈 때에만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생명과 평화는 함께 살아가고자하는 형제의식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는 그의 중심이 되는 논의이다.

  그는 인간의 기본 조건으로 생각되고 있는 자유와 평등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절대적인 자유는 새로운 폭력과 죽임만을 가지고 올 수 밖에 없고 절대적인 평등은 우리의 개성을 묵살시키는 새로운 독재와 건조한 삶만을 가지고 올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새로운 목표는 바로 형재애의 회복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에게 있어서 자유와 평등은 형제애를 위해서 그 실천적 행위로 나타나야 만 하는 한계를 가진 자유와 평등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생명실현과 평화도 이러한 형제애 즉 더불어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에 기초한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통해서 가능해 질 수 있는 것이다.

  피에르 신부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삶이 살아낸 흔적들의 굵은 선들을 바라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삶으로 살아내든지 말든지 하라는 신부님의 호된 질책은 책 한장 한장 넘기기 힘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은 것이니 함께 살자고 권유하는 달램 속에서 다시 치유받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통해 직접 경험했던 수 많은 사례들 속에서 우선 한 가지 만이라도 내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해 보자고 또 다짐할 수 있었다.

  '더불어 살기'.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너 혼자 살기 힘들듯 남도 혼자 살기 힘드니 더불어 함께 살아보자고 하는 것이다. 막연히 더불어 사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피에르 신부님의 글은 구체적인 대안으로 다가온다. 내가 가진 것들을 우선 포기 할 줄 아는 자세. 특히 먼저 일자리를 나누고 임금을 서로 나누어야 한다는 필요 불가결한 시대적 요구를 지적하시는 대목은 나에게 새로운 충격이었다. 그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나눔이 아니라 앞으로 가지게 될 것에대한 나눔에 대한 강조는 정말이지 신선했다. 뜬구름 잡기 식으로 살아온 나의 삶 속에 하나의 목표를 잡고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하는 고마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의 사랑은 어디 있습니까? 언제나 반복되어야 할 내면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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