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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침과 깨달음 - 박성배 교수의 불교 철학 강의, 카르마총서 6
박성배 지음, 윤원철 옮김 / 예문서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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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으로서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하나님과 그 외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신앙의 대상으로 믿는 것 외에 더 나아가 생각 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그것 이외의 다른 것에 대한 믿음은 소위 '우상숭배'라는 낙인이 찍혀 범죄시 되어왔다. 철저한 유일신 사상에 뿌리박힌 기독교의 이 타력신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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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는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소유욕은 정말이지 너무도 크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내 손아귀에 들어오면 아마 나는 그를 거들 떠 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로인해 서운해진 그 사람이 날 떠날 때 아마 나는 그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울부짖을 것이다. 내 품안에 있을 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으면서. 내 손에 있어도 없어도 사랑하고 믿고 참아야 한다. 그 삶을 존중하며 기다려야 한다. 순간의 기쁨도 그 순간 사라질 뿐이다.

  채울 수 없는 것을 채우고자 할 때, 오히려 나의 삶은 그것에 얽매이고 말 것이다. 그냥 그대로 두자. 떠남에도 초연하고 돌아옴에도 초연할 수 있게. 크나큰 배신감은 나로인해 생겨난다. 누가 말했나? 그는 나에게만 속해 있노라고. 그도 자유이고 나도 자유이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 자유함을 얽어매지 말자. 이 때 나도 그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다.

  책임. 이것이 책임일 것이다. 다만 그에게 상처 받듯이 나도 상처를 준다는 것만 기억하자. 하지만 그가 나처럼 행동하기를 바라지는 말자. 욕심과 의심은 내 모든 기억들을 뒤 엎어버리고 말 것이다. 스스로 나락에 빠져버리는 짓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는 것이다.

   감각의 대상들을 골똘히 생각하면 집착이 일어난다. 집착에서 욕망이 생겨나고 욕망은 분노를 낳는다. 분노에서 미혹이 생겨나고 미혹은 기억을 엉망진창이 되게 한다. 이로인해 숭고한 목적은 사라지고 정신은 흐려지니 목적과 정신, 인성이 모두 파멸한다.   - 바가바드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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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금보다귀하다

조용한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님 앞에서 입 닥치고 듣기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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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지인과 만나 영화 한 편 보았다. 여러 사람들의 대화속에서 오르내리던 영화 밀양. 감독은 무엇을 끄집어내고 싶었던 것인지.

  여자가 아닌 나, 어머니가 아닌 나, 누군가에 의해 전도 되지 못한 나, 커다란 상처를 하나님께 치유 받아보지 못한 나, 누군가를 용서해보려고 치열하게 고민해보지 못한 나, 나는 그 여인의 심정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용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는 저 태양빛 처럼 모두에게 흩 뿌려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상처받은 자 만이 상처 준 자를 용서할 수 있다는 피할 수 없는 그 논리는 아직도 남아있으리니. 고통받는 자에게는 함께 고통받는 어린양이요, 고통을 준 사람에게는 한 없는 용서를 주는 자비로운 하나님. 하지만 예수는 말하지 않았던가. 예배하기 전에 먼저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하고 화해하고 오라고 말이다. 용서의 하나님도 좋고 자비의 하나님도 좋다. 대속의 하나님 좋고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좋다. 하지만 진정 그것으로 다 인가? 이미 아이는 죽어버렸다. 아이를 살리든가 무슨 책임은 져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구 맘대로 용서 받았다고 그리 뻔뻔하게 이야기 하고 있느냐 말이다. 진정 용서 받았으면 먼저 용서를 구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젠장. 어지럽고 힘겨운 장면들의 연속.

  그나마 우리 신애씨가 죽지 않아 다행이다. 우리 카센터 사장이라도 곁에 있어주어 다행이다. 온갖 치장된 구원의 남발을 잘 몰라도 술맛과 담배맛 아는 사장님 있어서 다행이다. 진정 하나님의 볕이 들어야 할 곳은 누구의 가슴 속 인가?

  나! 이 파렴치한의 가슴 속!! 용서 받고 싶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내가 상처준 모든 이들에게 용서를 빌고싶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젠 그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조금 더 생각하고 고민하고 제 삶을 살겠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세요. 그래야 하나님앞에 회개의 기도를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답니다. 이렇게 당신께 용서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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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그때 그 상황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은 것 같다. 녹차의 맛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 맛이라는 것이 대충 어떨 것이라는 것은 아는 것 처럼. 영화 속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마셔대는 그 차가 녹차인지 아닌지 몰라도 대충 녹차이려니 하는 것 처럼.
   할아버지의 그 시선과  큰 아들의 사랑과 작은 아들의 기쁨과 막내 아들의 수줍음과 큰 며느리의 다정함과 큰 손주의 설레임과 막내 손녀의 벅차오름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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