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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시선 -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10년 1월
평점 :
참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참 흥미롭기도 한 책이였다. 신화속 인물들의 다양한 에피소드에 담겨있는 의미를 철학적, 과학적으로 연관시켜 해석하고 있는 이런 통합적 사고는 쉽게 접할 수 있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신화-철학-과학을 한번에 아울러 통합적으로 해석해 낸다는 것이 어디 쉬운가.
하지만 특히 김용석교수님과 같이 철학을 전공하셨거나 철학적 사유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철학에세이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겐 교수의 새로운 접근법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다 읽어내기는 힘든 점이 있다. 메두사, 에로스, 아라크네, 헤라클레스, 크로노스, 아프로디테, 피그말리온 등등 신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잘 알만한 인물들의 등장에 기쁨의 마음으로 덤벼들었다가는 이야기 끝부분으로 갈수록 전개되는 이야기들– 신화의 또 다른 해석, 신화적 의미를 철학과, 과학을 연계하여 풀이하는 것, 신화적 의미에 대한 철학자 사이의 여러 견해, 논쟁-을 쫓아가다가 결정주의, 환원주의, 칸트, 헤겔, 형이상학, 인식론,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단어를 접하기 시작하고 철학자간의 이견에 대한 저자의 핑퐁놀이에 다다르는 순간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뜯게 될 것이니 말이다.
특히 찰스다윈과 현란한 이빨을 가진 니체의 해석들을 오가며 풀어나가는 ‘디오니소스와 포도주의 인식론’의 장에 다다를때면 인내심과 이해력의 한계가 오기도 한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의 고대철학자에서부터 지리학자이자 생리학자인 제러드 다이아몬드 (‘총,균,쇠’로 98년 퓰리처상을 받음)에 이르는 학자들로 이뤄진 막강한 소스 버무려낸 철학적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저자의 학식에 감탄을 하면서도 그 견해에 대해 반박은 커녕 의심조차 할 수 없음에 입심좋은 사기꾼에게 뒷통수를 맞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나와 같은 지극히 일반인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가령 신화속 인물과 그들의 에피소드에 담겨 있는 새로운 의미 해석의 발견은 메두사를 보기만해도 사람들이 돌로 변한대 라던가, 장난기 가득한 귀여운 꼬마 사랑의 신 에로스의 화살을 맞으면 격렬한 사랑을 한대라는 수준에 머물렀던 신화속 인물들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높여준다. 아테네의 방패에 왜 메두사의 머리가 붙어 있는지, 악기, 악보, 갑옷 보다도 더 강력한 에로스의 화살에 담겨져 있는 의미와 함께 지혜의 탐구에 대한 해석,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고 장인을 보호하고 상당히 관대했던 아테네가 분노하여 베를 잘짠 아라크네를 벌한 이유에 대한 해석들도 상당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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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는 세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기술, 예술, 그리고 실재성이 그것이다…(중략)예술의 차원에 이르면 여신의 평범함에 견줘 아라크네의 비범함이 번뜩인다. 아테나는 국가 홍보물을 제작하듯이 위엄 가득한 열두신을 묘사했다…(중략)…하지만 아라크네는 가장 예술적일 수 있는 소재를 선택했다. 그것은 바로 섹슈얼리티의 메타포, 즉, 성의 은유였다….(중략)아테나의 융단에 관해 실재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 신들의 존재에 대해서 신이 묘사한 것인데 무슨 시비를 걸겠는가. 그러나 아라크네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그녀는 이야기를 사실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신들의 스캔들은 다 아는 것이지만 구설의 수준에서 그러할 뿐이다. 그런데 아라크네는 그것을 ‘진짜 이야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중략)..이 세가지 차원을 합한다면 아테나 여신은 무자비하게 패배한 것이다. 이 시합은 좋음에 있어서도, 아름다움에 있어서도, 참됨에 있어서도 여신이 우월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 세가지가 융합되면 나름의 세계가 탄생한다. ‘새 세상이 창조되는 것이다. 이 세계에 여신의 자리는 없다..(중략) 모든 기술자들을 보호하고 사랑한 아테나도 기술, 예술, 실재성이 통합된 완벽한 창조를 인간에게 허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라크네와 기예의 철학中 (PP.48-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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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피그말리온의 타자성, 아프로디테의 신호, 편재하는 나르키소스의 신화적 해석과 철학-과학에 이르는 내용도 도전해볼만 하다.일단 이 책을 손에 들기를 맘먹었다면 신화-철학-과학 중에서 어느 한 분야는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 듯하다. 그리고 하루에 한장씩 차근히 읽어 내려간다면 신화-철학-과학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어쩌면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직 신화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 부분만 뽑아 읽어도 좋을 듯하다.
철학에세이지만 비전문가에는 강하게 와 닿는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느낌 때문에 읽는 내내 학부레포트 숙제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긴 하나 철학에 관심이 높거나 신화를 꾀 뚫고 있는 분이라면 지적탐구심을 가득 안고 한번쯤 도전해 볼만한 책일 듯 싶다. 저자가 안내하는 학자와 철학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면서 나름의 해석도 넣어간다면 표지에 실린 문자를 창조한 지혜의 신인 토트의 눈빛이 마냥 매섭지만은 않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