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A도 생각한다. ‘이 추운 날 나는 왜 거리에서 이러고 있을까.‘ 집을 뛰쳐나왔을 때는 나올 만한 명백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자기도 자기를 다시 추궁하고 있었을 것이다. ‘네가 옳다‘는 타인의확인이 필요한 건 이렇게 자기 자신도 전적으로 자기 편이 돼주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러고 있나. 도대체, 매번‘ 대개의 사람들에겐 이런 식의자기 분열적 사고가 습관이다.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어‘라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조차 실제로는 그렇다. 인간이 본래 그런 존재이니 우리에겐 일상을 지탱해 줄 최소한의 외부적 산소 공급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A가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는 건 조언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징서적인 내 편이 필요해서다.
"부모님이 그랬으면 당연히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겠네."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A는 그 밤의 분노와 억울함에서 순간적으로 빠져나올 힘을 얻는다. "배회할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는 말은 A를 계속 집 밖으로 나돌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틀린 게 아니구나. 내가 잘못된 게 아니구나. 내가 비정상이라서가 아니구나‘ 안도하게 해서 그 다음 행보를 어떻게 할지 쉽게 결징하게 한다. 십중팔구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