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맞으면서 피아노를 배웠다. 엄마는 자신의 재능 없음을 조기교육으로 당신이 음악시간에 받은 상처를 대물림 시키지 않기 위해서 였다. 반면 아빠는 음악가였기에 나에게도 그런 재능을 기대하며 자신은 관악기를 나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꿈이 바스라진 이후에도 부모님은 여전히 나에게 가방을 들려보냈다. 나는 알고 있었다. 5살의 나는 좋고 싫음 정도는 알 수 있는 생각과 취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모두가 침묵했지만 나와 피아노 사이의 거리를 나는 알고 있었다. 너무 멀어서 감히 누를 수 조차 없다는것을.

그래도 한마디 불평을 하지 않은 것은 손아래 동생의 장애 때문이었다. 그 때는 엄마가 시키는대로 하고 엄마처럼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스스로 그렇게 결정한 것이었다. 누구도 내게 강요하거나 등떠밀지 않았다.

도시락가방을 한쪽에 던져두고 남들은 10번이면 되는 하농을 20번 30번씩 쳤다. 메트로놈 소리는 끔찍했다. 손을 분명 맞았던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꽤나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인가보다. 그렇가 5년을 보냈고 10년차의 어린이 피아노 수강생의 풍월은 즐거운 우리집을 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모두가 나를 한심하게 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 었다. 난 누구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피아노를 버렸다. 대신 화성악을 택했다.피아노 학원에서 조금씩 배우는 화성법은 내게 꽤나 잘 맞았고 그럭이럭 재미도 있었다. 빈공간에 넣기만 하면 되니까. 그 빈공간을 채우는 것은 연필을 든 한손이면 충분했으니까. 그래서 나를 무작정 미워하지는 못했던 선생님은 화성법을 잘한다고 몇번이나 강조했다고 한다. 지은이는 좀더 시키고 다른 책을 사서 공부시키고 있다고. 강습시간은 좀 빠지지만 재능이 있는거 같다며.

바흐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든 것이 완전하게 들리는 바흐의 소리를 소리로도 말할 수 없는 하물며 글자인데. 째즈를 사랑하는 것은 그 시절, 싫었던 모든 리듬들을 파괴하는 그 소리들이 내게 해방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척점의 둘을 나는 모두 품에 넣었다.

그런데 어느날 글렌굴드가 나타났고, 나는 그를 통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위안을 얻었다. 라따뚜이의 레미가 요리하는 이유와 같다. 신선한 채소는 맛있지만 그 궁합을 따져 다른 것들과 함께 먹는 것이, 그게 음식이다. 그리고 그런 귀의 황홀경을 선사한 것이 글렌굴드의 골드베르크 베리에이션 – 굴드베르크 – 이다.

나는 일단 내맘에 들인 어떤 것은 쉽게 놓지도 버리지도 않는다. 모두가 내 기둥이고 성주이다. 나를 구성하는데에 서까래는 없다.

그렇게 나는 나라는 인간을 취향으로 방패 삼는다. 모르겠다. 나는 내가 외롭지 않기 위해 싫지 않은 것을 선택하지는도 모르겠다. 취향이라는 것은 일정부분 구조적이고 나의 고향의 습속을 내포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너를 택했다. 나를 보호할 방패로 너를 택했다.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들이다. 그러니 나는 다른 것에 건 셈이다.


그리고 청량음료.. 굴드베르크. 

http://youtu.be/4lR2rlq-AL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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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 2012-12-31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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