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닉 -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마음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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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추" 라는 이름은 나에게 익숙했다. 마지막 악마의 이름 추. 그 것은 김언수의 소설 설계자들에서 씬스틸러, 그 이상의 존재감을 주었던 청부살인업자의 이름이었다. 진짜이름은 아닐 것이다. 그는 추라고 불렸고 무수한 사람을 죽여가며 살아온, 죽음의 동반자였다. 그런 그가 죽이지 못한 어떤 여자아이 하나 때문에 시작된 미로같지만 또 한편으로 1형식같은 단순함으로 떨어졌던 소설이 설계자들이었다. 

 은닉을 읽고, 처음엔 취향에 대한 생각을 했다. 중간중간 실소가 뛰쳐나왔다. 어쩌다 보니 계속 나는 내가 그들이라면- 하는 상상을 반복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 백프로 걸릴꺼야. 나는- 은수가 가진 데이터로 나노초정도라면 나를 밝혀내는 건 식은죽 마시기겠지. 그러다 반대로 생각해 봤다. 그럼 나는 내 취향을 토대로 굉장히 엄밀한 디코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이게 너라구? 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스스로 솔직함을 내세워왔기에 뒤집어 말하면 누구보다 쉽게 가짜를 만들 수 있겠다.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솔직하기에 거짓말과 사기에 더 능통할 수 있는 것이다. 머리가 커지면서 나는 정직과 거짓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았다. 입에 침도 바를 필요 없이.

내가 천사가 아닌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악마가 꿈틀거릴까봐 불안해하던 시절, 매순간 동공이 후덜거렸다. 내가 나쁜년일까봐. 이제는 생각하지 않는다. 악마라고 이름이 악마지 그것도 인격인데 뭘. 

 언젠가 설계자들에서는 우리같은 킬러도, 그리고 펜대가리 굴리는 설계자들도 결국 윗대가리들의 손에 놀아나는 하인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윗대가리는 비어있다. 미세권력연구소에서 나온 결과가 생각이 났다. 개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던. 없는 수괴를 어떻게 찌를 것인가. 결국 서로간의 싸움만 있고 피라미드의 정점은 바보같이 비어있는 것일까. 판을 움직이는 건 더 이상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세계 속 의 변수들의 작은 날개가 만들어 내는 거. 그거맞나. 그래도 얼굴마담은 필요한지라 은경이도 있고 그런건가.  

 너랑 같이 걷고 싶었다는 그 둘의 말은 진짜였을까. 나는 소설속에서 계속 소설과 상상 거짓을 봤다. 그리고 가만 보면 또 그게 진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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