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 이래 어떤 존재도 이성과 감성사이의 외나무다리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제는 그런 시도조차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금 내가 말머리에 속죄를 매기면서도 떠오르는 조야한 감정들도 그러하다. 2인 3각보다 어려운 몸과 마음의 박자 맞추기는 자꾸만 엇박으로 가기만 한다. 그러니 속죄라고 쓰고 “치기” 라고 읽게 된다.

이언 매큐언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너는 할말이 없냐고. 나는 늘 대답한다. 할 말이 많은데 어디서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혹시 내가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게 화를 내는 것이 소설 속의 실수보다 더한 실수를 내가 안고 있어서 그래서 그런건지. 아니면 모르는지 아는지도 인지하지 못한채 저지를 미래의 실수들을 먼저 봐버렸기 때문인지. 해서, 속죄는 어떤 면에서 나에게 또 독자들에게 과거에 대한 속죄보다 더 포괄적으로 미래에 대한 이른 고해성사를 구하는 것으로 들린다.

너무 많이 들었던 이야기 아니냐고. 문학에 이보다 진부한 클리쉐는 없지 않냐고. 사실 좀 … 개인적으로 저 제목의 소설이 또 있다면 절대 집지 않을것 같다. 응 그래 알았어. 그리고 뚜껑 덮고 잊어버리는 식의 텍스트로 전락하기 쉬운 소재다.  남들 다 듣는 노래. 남들 다 보는 영화. 남들 다 하는거. 하기 싫어하며 기행을 즐기는 것이 또 창작자들의 특징 아닌가 ㅎㅎ 그런데 용감하게도 이언매큐언은 너무 많이 들어서 왜 재미있게 느껴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숙제를 가지고 고전을 만들어 냈다. 거침없고 유려한 문장, 번복되는 플롯, 그러면서도 각종 장르적 특성을 무시하지 않으며 그야말로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흥미와 신파를 한번에 얻다니. 일타 쌍피가 따로 있을까.  멋진 시간이었다. 문장을 보든 문단을 보든 페이지를 보든.  여전히 명정한 눈을 하고 인간이라는 개체를 살펴보는 그의 연필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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