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소피스트적 사유 방식과 대결하다
이로써 철학적 논의에 있어서 중대한 결과를 낳는 변화가 완료된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실재實在(또는 현실)와의 사상적, 논리적 대결은 주로 자연철학적 물음과 관련되어 있었다. 생성과 우주의 구조에 대한 물음에 대답하려고 애씀으로써 세계와 그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이런 작업에 종사했던 사상가들은 훗날 소크라테스 이전 사람들Vorsokratiker, 즉 소크라테스에 앞서 철학했던 사람들이라 불렸다. 이미 이런 명칭부터가 소크라테스―그리고 소피스트들―와 더불어 완전히 새로운 무엇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한다. 키케로는 한 유명한 대목에서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하늘에서 시정市井으로 끌어내렸고, 철학으로 하여금 삶과 도덕과 좋고 나쁜 것에 대해 캐묻도록 하였다고 언급한다.(키케로, 『투스쿨름 대화』 5.10)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그리고 소피스트들과 더불어 인간과 윤리에 대한 물음이 철학의 한복판으로 들어온 것이다. - P34
플라톤이 통치자가 철학자이거나 철학자가 통치자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권력과 능력이 그 안에서 각기 따로 노는 정치관에 대항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이성적이고 바르게 행동하는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 권력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정치학은 윤리학과 접목된다. 플라톤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성품이 좋은 사람만이 좋은 정치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은 『고르기아스』에서 아테네의 거의 모든 정치가들과 비교해서 소크라테스만이 올바른 정치가라는 주장을 편다.(『고르기아스』, 515c4~521e8) - P35
플라톤의 주된 공격 목표는 윤리적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그에 의하면 윤리적 상대주의는 모든 도덕과 모든 정의로운 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플라톤의 핵심적인 철학적 노력 가운데 하나가, 좋고 정의로운 것이란 특정 문화와 연관해서 좋고 정의로운 것이 아니요, 인간이 좋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것에 기대어 방향을 잡아나가야 하는 어떤 객관적인 척도가 있음을 정초하는 것임을 살피게 될 것이다. - P39
플라톤의 가장 유명한 제자는 20년 동안 아카데미아에서 플라톤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논쟁을 벌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입장이 배치되는 데서 아카데미아의 또 다른 기준을 끌어낼 수 있다. 즉 아카데미아의 주된 관심사는 학생들을 독단적으로 어느 한 철학 체계에 붙들어두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일 정도까지 철저하게 토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아카데미아는 오히려 개방적인 기관이 되었을 것이다―최소한 플라톤이 그 학교의 장이었을 때까지는.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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