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난 로즈라는 소녀의 일생을 그린 소설. 

이 소설의 줄거리를 짧게 요약하자면 그러하다.

로즈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사건, 중요했던 시기를 단편처럼 쓰고 엮었다.

하지만 일련의 소설과는 다르게 이 소설에서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장이 바뀔 때마다 시간은 도약을 반복하고 - 과거로의 도약이든, 미래로의 도약이든 - 로즈는 뛰어넘은 시간만큼 변해있다.

그 변화가 너무나 잘 그려져 있어서 로즈의 내적, 외적 변화로도 충분히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옴니버스의 느낌의 장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또 잘 세운 뼈대에 예쁘게 자리한 근육같아 보이기도 한다. 제대로 완성된 콜라주 작품이나 제대로 맞춘 믹스매치패션같은 이야기.


책은 사회적인 이슈-그 시대의 이슈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게 어이없긴 하지만-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주로 다루고 있는 문제라면 페미니즘. 여기에 성 소수자 문제, 인종문제, 계급문제, 문화사대주의까지 골고루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몇몇 사회 문제를 큰 주제로 한 다른 소설처럼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은 작가의 직업의식 덕분이겠지. 


문제를 제시하고, 파헤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독자의 일이다. 책을 읽고, 느끼고, 그 생각을 사회의 변화를 위해 쓸 의무가 독자에게는 있다. 반면 작가의 일은 다르다. 행동하는 독자를 만드는 것. 가끔은 냉정한 시선이 사람들을 움직이게한다. 격하게 반응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작가는 현실을 차분히 나열한다. 너무 격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자세하게.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의 인생이 궁금해진다. 실제로 작가는 소설 속 인물과 비슷한 삶을 살았을까라는 호기심때문에. 그녀의 삶을 지구 반대편에서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내가 알긴 힘들지만 단순히 나열된 객관적 사실은 소설 속 인물들과 일치한다. 자전적 소설을 쓰면서도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에 딱 들어맞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는 힘, 소설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섬세하면서 대범한 묘사. 정말 좋은 소설을 한 권 만났다.

여학생들에게 가난은 상냥하고 헤픈 태도나 멍청함과 결합되지 않는 한 매력이 없다. 정말로 그랬을까? 그리고 그녀는 그런 걸 신경쓸 만큼 어리석었을까? 정말로 그랬다. 그리고, 어리석었다. - P137

패트릭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
.
.
로즈는 말하고 움직이는 매 순간 그를 위해 자신을 무너뜨렸지만 그는 그녀를 뚫고 지나가 다른 곳을 바라보았고, 그녀가 아무리 주의를 돌리려 해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그녀 자신도 보지 못하는 순종적인 이미지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희망은 원대했다. - P155

뭘 원하는지 알아야 뭘 원하지 않는지 알 수 있는 건 아니야! - P171

그녀는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는 소년들은 아무리 무능해 보여도 결국은 남자가 될 것이며, 자신들이 갖춘 것보다 훨씬 큰 재능과 권위가 필요할 것 같은 들을 하도록 허가받을 거라는 사실을. - P359

번역을 통해야만 말해질 수 있는 감정들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감정들은 번역을 통해야만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 대해 말하지 않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번역은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위험하기도 하고. - P3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