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을 보는 것으로도 설경구의 연기에 대한 기대감은 잔뜩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낯익은 여러 조연들의 훌륭한 연기 덕분에 설경구의 성실한 연기가

조금 묻힌 감이 있다.

삶의 목표를 상실하는 것... 이것은 육체의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실미도는 살아있지만 영혼은 이미 죽은, 좀비들의 집합 장소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존재의 상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무릎쓰고 북한에 가고자 했으며 버스를 타고

청와대로 진격하려 했던 것이다.

특별히 주목했던 인물은 마지막에 배신을 때리는 상사였다.

처음에는 실미도 부대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것처럼 가식적으로

행동하다가 전원 사살이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는 자신의 안전부터

지키고자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 자는 애초부터 실미도 부대원들을 인격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형편없는 인생의 실패자들, 범죄자들, 그래서 자신과 함께 할 수 없는

자들로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그 자의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전원 사살이라는 명령에 불복종해서 자신까지 죽는 것보다는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범죄자들만 죽는 것이 낫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합리적이고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위한 전제는 그들을 '범죄자',

또는 나와는 격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영화 속에서 조장 중 한 명이

말한 것처럼 함께 살 수 있는 궁리를 먼저 했을 것이다.

우리는 계급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계층 간의 갈등 못지 않게 무서운 것은

우리들 각자의 마음 속에 내면화된 차별이 아닐까?

대표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들의 시선 말이다.

시절 좋을 때는 마치 그들의 친구인양 좋은 말로 구슬려 부려먹고

그렇지 않을 때는 범법자로 몰아 사냥하듯 잡아 내치는 우리들의 모습 말이다.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들이다. '나'를 포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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