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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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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에서"가 생각나서 무작정 빌려온 책이랍니다.
그를 아는 것이라곤 달랑 그 시 한 편이었거든요.
그래도 무언가,

나를 잠시 주저앉게 해서 누리게 하는 그 무언가가 느껴져서 들고 나왔지요.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시편들을 찾아가는 여행에서 만난

1분 1초의 사랑스러움을 적은 글입니다.
오늘 날씨처럼 순하고 촉촉한 글이에요.
읽다 보면 500원의 식사가 가장 풍성하고

세상에서 네 번째로 아름다운 학교도 만납니다.
왜 네 번째냐구요?
세상 어디에선가 이 아이들처럼

꽃보다 아름다운 수업을 받는 이들이 세 곳쯤은 있지 않겠냐 하는군요.
신간은 아니지만 그럼 어떤가요.
읽으면서 같이 여행하고

거기에 피고 뜨는 꽃과 별들을 함께 구경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
각박하고 바쁘게 사는 이 시대,

혼란스럽고 허탈함이 난무하는 이 시절,
하긴..어느 시대나 시절이나 그런 기분으로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닐까도 싶지만,
그래도 이 책을 펼쳐놓고 그의 순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세상 어디엔가에도 숨겨진 순한 미소 하나 싱긋 웃으며 곁에 앉을 것도 같습니다.
그의 목소린 잠시 접어두고 일을 하러 나섭니다.
그래도 그 걸음에 그가 묻혀놓은 여유로운 바람 한 올 걸칩니다.
내려앉은 하늘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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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 문학과 숨은 신 - 김응교 문학에세이 1990-2012, 2012 우수문학도서
김응교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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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는 몇 년을 떨었어도 책을 가까이 한 지는 2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전엔 일 년에 열 권 읽기도 바빴고, 수다는 몇 달에 한 번 지금보다 더 길게 주절거렸다. 치열한 자기 고민과 시대적인 고민을 동시에 들고 서평을 쓰시던, 학교에 다닐 때엔 얼굴도 뵌 적이 없는 선배님의 글을 이 페북에서 읽으며 불씨 하나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년에는 가랑이가 찢어지면서 좇아가기 바빴고, 올핸 그것과 병행해서 내가 알고 싶거나 궁금해지는 책들을 위주로 먹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도 없거니와 뚜렷한 서평을 쓸 수도 없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자기의 생각이 더 많이 묻어 있는 서평들의 책들을 많이 만난다. 기억에 남는 이들이라면 정희진과 장석주가 있었고, 또 한 사람 추가하고 싶다면 이 사람이다.
사실 서평을 쓰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자신만의 색깔을 다 드러낼 수도 없고 책에 나와 있는 이야기만 펼쳐놓기도 애매하다. 요약과 느낌이 적절하게 배분되고 버무러져야 그 책을 나도 사서 읽고 싶은 마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나 더 좋은 서평은 그 안에서 작가와 서평자, 읽고 있는 독자 모두를 일깨우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읽은 책들 중에 이 책을 제일 기억에 남는 책으로 손꼽고 싶다.
이 책은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문학 작품과 작가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성공주의적인 혹은 다분히 종교적인 훈계를 전하는 내용은 아니다. 문학 작품 속에 스며 있는 "숨은 신",  낮고 처절한 삶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어둠의 인생, 그것을 인정하거나 보고 싶어하지 않는 더 많은 빛 앞에서의 인생, 그 사이에서 충격 받고 고민하고 결국 그 삶들을 보게 하는 숨은 신의 또 다른 밀어 등을 발견하게 한다. 역시 나는 미우라 아야꼬나 엔도 슈사쿠의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 문익환 목사나 양석일에 대한 이야기도 가슴에 남는다. 

"기독교인들은 '역사 속에 운동하시는 하나님이다'라고 절대자를 표현한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 근현대사에 '숨은 신'이 어떻게 개입하셨는가 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일제 35년과 해방기 5년, 그리고 분단 60년, 군사독재 32년. 짐승스러운 세월 속에서 절대자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 아브라함의 방황과 이집트 4백 년간의 노예생활, 광야 40년의 유랑을 통해 이스라엘을 탄생시킨 '숨은 신'의 역사를 철썩같이 믿는 교인들이, 이 조그만 반도를 때리는 채찍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몰아붙이시는 역사를 도리질치며 외면한다."
                       -비극시대의 구도자들, 조정래 [태백산맥], p234- 



"<빙점>만 읽으면 인간은 죄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는 것처럼, 영원히 죄에 갇혀 살아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태초의 축복을 안고 있는 존재다. 그 원래의 축복을 바로 원복, 영어로 'Original Blessing'이라고 한다. ...원죄를 출발점으로 삼는 '타락/구속영성'은 사람을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인간의 죄성을 씻는 구속에만 매달린 나머지, 인간 이외의 피조물에 대한 구원, 곧 우주의 구원을 누락시킨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계를 배제한 타락/구속 전통은  지구파괴(geocide), 생태계파괴(ecocide), 생명파괴(biocide)와 같은 죄를 포착하지 못하게 만든다."
                      -원죄와 원복, 미우라 아야꼬 [빙점], p414-

책은 455쪽이라 꽤 두껍고 철학적인 사유까지 곁들여 있어서 나처럼 얇게 물만 묻히는 이들에겐 조금 어려울 수 있다. 몇 주에 걸쳐서 읽은 것 같다. 어떤 곳에서는 생소한 맛이, 또 어떤 곳에서는 공감의 맛이, 때로는 고민하게 만드는 맛이 난다. 다행히 이 분의 말투, 아니 글투가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고 다양한 문학작품들 속에서 더 다양한 모습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하나의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의 책을 더 찾아서 읽고 싶어지는 이들이 있다. 이 분도 내 리스트에 올려놓으련다.
이제 햇병아리처럼 책을 읽고 있다. 나도 20년 쯤 내공이 차곡차곡 묵묵히 쌓여 더 좋은 책, 사람을 살릴 만한 책을 소개해주는 서평가로도 발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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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분의 1의 우연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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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처지에 몰렸을 경우,

저널리스트들에겐 보도와 인명 구조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
"개인의 자기 표현은 사회에서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는가?"

 

 


어릴 때엔 추리 소설을 너무나 좋아했다.
홈즈와 루팡의 이야기들을 섭렵하느라 헌책방과 친해졌을 정도였다.
요즘은 의도적으로 소설은 많이 읽지 않았다.
언제든 손에 잡으면 그 세계에서 다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까, 조금은 우려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출판사 사장님의 재미있는 포스팅에 이끌려 이 책을 빌려오게 되었다.

 


내용은 어느 신문사에서 공모한 보도 사진전에 "격돌"이라는 사진이 당선된다.
하지만 그 내용은 처참한 사고로 인해 6명이나 죽음을 당하는 이들의 바로 그 현장을 찍은 것이었다.
'10만분의 1의 우연'이 아니고선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완벽한 현장을 찍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야마가 로스케의 이 사진은 유명해진다.
그 사고로 인해 약혼녀를 잃은 누마이 쇼헤이는 의구심을 품고 우연을 만들기 위한 필연 조건들을 발견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에게 접근하며 사건을 함께 펼쳐 보이는데, 같은 '10만분의 우연'의 방법으로 공명심을 조장했던 심사위원장 후루야와 로스케를 죽이게 된다.

 

특이한 점은, 사건이 벌어진 일과 범인이 초반에 다 드러내보인다는 점이다.
그 사실을 먼저 선포한 뒤에 하나씩 추리해가며 증명해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끔씩 독자의 예상을 뒤집으며 먼저 터뜨리는 작가의 의도는 반전의 묘미를 선물하기도 한다.
사물보다는 사실을 무척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선 꽤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갑작스레 등장하는 대마의 자세한 표현 등은 뒷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기반이 된다.

 

'보도'와 '인명 구조'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펼쳐진 현실의 많은 얼굴일 것이다.
요즘처럼 누구나 폰으로 찍을 수 있고 보도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 기준이 더욱 애매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도 고민하게 만든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명성을 듣기는 했어도 그의 작품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자네들은 자네들이 사는 세계를 묘사하게'라고 말할 것 같다는 평이 마음에 와 닿았다.
정말, 그는 그가 사는 세계를 그만의 언어로 담았다는 느낌이 강렬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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