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 문학과 숨은 신 - 김응교 문학에세이 1990-2012, 2012 우수문학도서
김응교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다는 몇 년을 떨었어도 책을 가까이 한 지는 2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전엔 일 년에 열 권 읽기도 바빴고, 수다는 몇 달에 한 번 지금보다 더 길게 주절거렸다. 치열한 자기 고민과 시대적인 고민을 동시에 들고 서평을 쓰시던, 학교에 다닐 때엔 얼굴도 뵌 적이 없는 선배님의 글을 이 페북에서 읽으며 불씨 하나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년에는 가랑이가 찢어지면서 좇아가기 바빴고, 올핸 그것과 병행해서 내가 알고 싶거나 궁금해지는 책들을 위주로 먹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도 없거니와 뚜렷한 서평을 쓸 수도 없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자기의 생각이 더 많이 묻어 있는 서평들의 책들을 많이 만난다. 기억에 남는 이들이라면 정희진과 장석주가 있었고, 또 한 사람 추가하고 싶다면 이 사람이다.
사실 서평을 쓰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자신만의 색깔을 다 드러낼 수도 없고 책에 나와 있는 이야기만 펼쳐놓기도 애매하다. 요약과 느낌이 적절하게 배분되고 버무러져야 그 책을 나도 사서 읽고 싶은 마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나 더 좋은 서평은 그 안에서 작가와 서평자, 읽고 있는 독자 모두를 일깨우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읽은 책들 중에 이 책을 제일 기억에 남는 책으로 손꼽고 싶다.
이 책은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문학 작품과 작가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성공주의적인 혹은 다분히 종교적인 훈계를 전하는 내용은 아니다. 문학 작품 속에 스며 있는 "숨은 신",  낮고 처절한 삶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어둠의 인생, 그것을 인정하거나 보고 싶어하지 않는 더 많은 빛 앞에서의 인생, 그 사이에서 충격 받고 고민하고 결국 그 삶들을 보게 하는 숨은 신의 또 다른 밀어 등을 발견하게 한다. 역시 나는 미우라 아야꼬나 엔도 슈사쿠의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 문익환 목사나 양석일에 대한 이야기도 가슴에 남는다. 

"기독교인들은 '역사 속에 운동하시는 하나님이다'라고 절대자를 표현한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 근현대사에 '숨은 신'이 어떻게 개입하셨는가 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일제 35년과 해방기 5년, 그리고 분단 60년, 군사독재 32년. 짐승스러운 세월 속에서 절대자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 아브라함의 방황과 이집트 4백 년간의 노예생활, 광야 40년의 유랑을 통해 이스라엘을 탄생시킨 '숨은 신'의 역사를 철썩같이 믿는 교인들이, 이 조그만 반도를 때리는 채찍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몰아붙이시는 역사를 도리질치며 외면한다."
                       -비극시대의 구도자들, 조정래 [태백산맥], p234- 



"<빙점>만 읽으면 인간은 죄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는 것처럼, 영원히 죄에 갇혀 살아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태초의 축복을 안고 있는 존재다. 그 원래의 축복을 바로 원복, 영어로 'Original Blessing'이라고 한다. ...원죄를 출발점으로 삼는 '타락/구속영성'은 사람을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인간의 죄성을 씻는 구속에만 매달린 나머지, 인간 이외의 피조물에 대한 구원, 곧 우주의 구원을 누락시킨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계를 배제한 타락/구속 전통은  지구파괴(geocide), 생태계파괴(ecocide), 생명파괴(biocide)와 같은 죄를 포착하지 못하게 만든다."
                      -원죄와 원복, 미우라 아야꼬 [빙점], p414-

책은 455쪽이라 꽤 두껍고 철학적인 사유까지 곁들여 있어서 나처럼 얇게 물만 묻히는 이들에겐 조금 어려울 수 있다. 몇 주에 걸쳐서 읽은 것 같다. 어떤 곳에서는 생소한 맛이, 또 어떤 곳에서는 공감의 맛이, 때로는 고민하게 만드는 맛이 난다. 다행히 이 분의 말투, 아니 글투가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고 다양한 문학작품들 속에서 더 다양한 모습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하나의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의 책을 더 찾아서 읽고 싶어지는 이들이 있다. 이 분도 내 리스트에 올려놓으련다.
이제 햇병아리처럼 책을 읽고 있다. 나도 20년 쯤 내공이 차곡차곡 묵묵히 쌓여 더 좋은 책, 사람을 살릴 만한 책을 소개해주는 서평가로도 발전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