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제왕학 태학총서 20
김문식 지음 / 태학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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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조 관련 책자를 여러 권 보았으나 이 책만큼 ‘학문정치의 주역’으로서의 정조의 면모를 자세하게 다룬 책은 없었다.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정옥자 외 지음) 이후 접한 두 번째 논문집이자 정조의 제왕학을 중심으로 그의 학자로서의 면모를 집중해 다룬 책이니만큼 당연하다 할까.

논문집인 탓으로 고유명사 외 주요용어들을 한자로 표기했으나 다음 문장부터는 한글 표기가 잇따르므로 약간의 번거로움만 감수한다면 읽는 데 큰 무리는 없다. 정조가 원손시절부터 국왕시절까지 교육석상에서 읽은 책들의 목록과 그 시기 등을 정리한 표와 같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표들은 국한문혼용체에 가깝지만, 연구자가 아니라면 뛰어넘어도 내용 이해에 어려움도 없다. 다만 이 책을 접하기 전 정조를 다룬 대중적 역사서를 읽어 충분히 배경지식을 쌓은 후에 도전하기를 추천한다. 나의 경우 지난 1998년에 나온 『영조와 정조의 나라』(박광용 지음)가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또 지은이는 『정조대왕의 꿈』(유봉학 지음)의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에서 주장한 정조의) 갑자년(1804년) 상왕 퇴위설’을 받아들이고 있으므로 이 책도 미리 읽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조선조 22대 임금인 정조는 보통 할아버지인 21대 영조와 더불어 탕평정치를 통해 조선의 중흥 또는 르네상스를 이끈 군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학자로서의 면모는 유명하지 못하다. 어머니 혜경궁이 『한중록』에 절절이 기록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과 함께 정조 독살설을 다룬 이인화의 역사소설 『영원한 제국』의 대중적 히트로 말미암아 그 드라마틱한 정치 역정이 조선의 국왕 교육제도가 낳은 유일한 君師(군주이자 스승)로서의 면모를 압도해버린 탓이다. 


조선의 유일한 ‘통치자이자 스승인 군주’ 정조
君師란 유학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군주상이다. 쉽게 요‧순임금을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단순히 태평성대를 이끌었기 때문은 아니다. 이들은 혈통 때문이 아니라 그 덕이 높아서 만백성의 스승이 될 만한 성인군자란 이유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춘추시대 공자 출현 이후 더 이상 성인은 군주가 되지 못하고 세습으로 왕위가 이어졌다는 것이 유학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래서 조선을 세운 양반사대부들은 군주를 조금이라도 성인에 가깝게 만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는데 그것이 바로 조선의 국왕 교육제도, 경연(세자의 경우 서연)이었다.

그런데 이 경연을 쓸모없게(?) 만들어버린 임금이 바로 정조다. 그는 타고난 뛰어난 자질과 학문에 대한 깊은 관심, 부친인 사도세자 죽음을 답습하지 않기 위한 보신책, 북학과 고증학 등 다양한 학문이 크게 발전하고 있던 18세기 시대적 배경 등을 이유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갈고닦아 왕위에 오를 때쯤엔 이미 상당한 수준의 학자가 되어있었다. 그는 즉위 6년초의 경연을 계기로 신하들의 가르침을 받는 대신 그들을 가르치는 君師로 거듭난다. 경연관들도 답변 못한 어려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동의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이후 정조는 규장각 초계문신 선발은 물론이고 성균관 유생을 거쳐 지방유생들에 이르기까지 시험문제를 직접 출제하고 손수 채점하는 데 정력을 아끼지 않았다. 당연히 신하들의 걱정과 만류가 이어졌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스승으로서의 군주인 자신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조의 야망은 원대했다. 그는 단순히 신하들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후대의 왕들을 위한 제왕학 교과서를 마련했다. 바로 『대학유의』다. 성리학에서 핵심으로 꼽는 『대학』을 중심으로 『대학연의』․『대학연의보』를 합하고, 이를 『대학』의 8조목(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 체제에 따라 편집한 책이다. ‘경학이 곧 사학이고 경학과 경세학이 연결되었던 삼대의 학문과 정치를 회복시키려는 의도’였다.

자부심과 완벽주의로 똘똘 뭉친 열혈 계몽군주
재밌는 것은 편집 과정에서의 정조의 태도다. 그는 춘추시대 이후 임금들은 세습으로 군주가 되었기에 정치에서는 본받을 만한 사례가 있을 수 있지만 학문의 모범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대학유의』에서 모두 삭제해버렸다. 지은이는 이를 ‘주자서의 정리와 편찬을 통해 주자까지 전해진 유학의 도통을 계승하고 삼대(춘추시대 이전)의 이상적 군주상인 君師를 삼대 이후로는 유일하게 자신이 실현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야말로 대단한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정조의 자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감히’ 중국본 『대학연의』에 오류가 많다며 『대학유의』의 교정 담당자에게 인용된 책의 원문을 일일이 확인하도록 한 것은 물론이요, 나아가 성리학이 주자학으로도 불리게 만든 대학자 주희의 모든 저작을 확인 및 통합한 『주자대전』을 편찬하려고 한 것이다. 지은이는 ‘정조가 조선이 발달시킨 주자학을 정학으로 규정하고, 자신이 삼대의 이상적 군주상인 군사를 실현하는 동시에 주자 이후 끊어진 유학의 도통을 계승했다고 자부한 것은 조선중화주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굳이 저자의 해석이 아니더라도 정조는 그야말로 완벽주의적 학자이자 조선중화주의의 산증인이라 할 만하다.

정치적으로는, 아들 순조 등 후대왕들을 자신과 같은 ‘군사’로 키워내는 시스템을 마련해 신하들을 제압할 수 있는 학문적 능력을 키워 제왕 중심의 개혁을 지속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조선 전기 태종이나 세조처럼 강력한 왕권을 휘두를 수 없는 정치적 상황에서 군주가 합법적으로 가질 수 있는 힘이란, 사실상 그뿐이었다. 정조의 증조부 숙종이 換局을 통해 왕권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정당정치에 비견할 만한 시스템인 붕당정치를 죽고 죽이는 ‘당쟁’으로 변질시킨 장본인 역시 그였다. 드라마틱한 장희빈의 삶과 죽음, 그 불운을 떨치지 못하고 살았던 아들 경종, 그 이복동생 영조를 늘 따라다니던 ‘경종 독살설’, 뒤이은 정조의 부친 사도세자의 죽음까지도, 이덕일(『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사도세자의 고백』등의 저자)이 지적하듯 그 ‘원죄’는 경종 이후 조선 왕가를 유령처럼 따라다녔다.

정조는 부친의 죽음에 대한 개인적 원한은 화성 건설과 무덤 이장(현륭원 건설), 국왕에 버금가는 수준의 존호 올리기, (한중록의 기록이 맞다면) 갑자년(1804년)에 선위를 하고 순조로 하여금 사도세자를 국왕으로 추존케 하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달래고자 한 듯싶다. 비록 죽기 직전까지도 부친의 죽음에 대한 괴로움으로 화병에 시달리긴 했지만, 정조는 ’개인적 원수가 없다‘는 국왕의 직업윤리를 준수하면서 선대까지 이어진 피 흘리는 정국을 종결짓기 위해서는 신하들을 능가하는 학문 능력을 갖춰 君師로서 거듭나야 한다는 당위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또 군사가 될 만한 능력과 의지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왕학을 향한 정조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망 뒤 간행된『대학유의』가 후대 국왕들의 경연에서 강의되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명료했다. 그가 죽은 뒤 정권은 어린 후계자 대신 수렴청정한 정순왕후를 떠받든 (정조의 뜻에 反한) 노론벽파에 전해졌다가 순조의 장인 김조순을 필두로 한 안동김씨 손에 넘어갔다. 웬만큼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풀 수 없는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수천장에 달하는 답안지를 직접 채점할 정도로 똑똑하며 열정적인 국왕이 스승이자 군주로서 치국평천하를 이룩해야 한다는 정조의 강력한 국왕중심론에 기반한 이 책을 벽파는 물론이고 시파 출신 세도가들 역시 환영할 리 만무했다. 덕분에 이 책은 후세에는 연구자들이나 알 수 있는 희귀한 것이 되고 말았다. 정조의 이름값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처지인 셈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다보면 계속 의문이 떠오른다. ‘학문정치의 주역(박광용)’이란 말을 실감할 수밖에 없는, 이토록이나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집요할 정도로 완벽을 추구했는데도, 24년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왕위에 있었는데도 왜 정조의 君師정치는 그 자신에서밖에 이뤄지지 못했을까. 아니, 후대에 이어지기는커녕, 죽자마자 그토록 철저히 파괴되고 말았던 것인가.

후계자인 순조가 불과 11세였을 때 정조가 승하했기에 정적인 영조계비 정순왕후와 노론벽파가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물론 충분한 이유다. 하지만 완벽한 이유는 아니다. 수렴청정은 불과 5년간이었다는 점도 그 근거 중 하나다. 아마도 이덕일은 정조 혼자 감당하기에는 효종조 송시열부터 시작된 서인-노론의 세력이 군주권을 크게 넘어서고 있었으며 정조를 지지하는 영남 남인은 너무도 세력이 미미했던 탓이라고 하겠지만, 이 역시 100% 완벽한 설명은 못된다.

혹시 너무도 똑똑하고 열정적이며 완벽주의자였던 정조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책의 지은이 역시 서울대 국사학과 학부 및 대학원 출신의 ‘聖骨’ 국사학자로서 쓴 논문이었기 때문인지 점잖게 에둘러서, 정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정조의 제왕학이 현실 정치에 적용되는 과정에는 한계도 있었다. 人治를 위주로 하고 제도적 장치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이 그것인데, (중략) 정조의 국왕 중심적 사고와 과도한 열정이 公論의 형성을 위축시키는 측면도 있었다. (중략) 정조가 사망하자 그의 정책을 부인하고 소수의 세도가가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가 나타났는데, 자신을 견제하는 세력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군주권을 과도하게 사용한 정조의 책임도 있었다. (p.462~463)  
   



자부심과 완벽주의의 ‘부메랑 효과’
정조는 뛰어난 학자이자 정치인이었다. 할아버지 영조가 기초를 마련한 탕평정치를 발전시키되 환국 없이 정계를 이끌어나갔다. 역모사건 이외에 피 흘리는 정국도 없었다. ‘삼대 이후 君師는 오직 자신뿐’이라는 자부심은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양반사대부의 나라였다. 더구나 그 당시 정계는, 거칠게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국왕중심론을 지지하는 남인이 아니라 신하(사대부)중심론을 주장하는 서인, 그중에서도 강경한 노론이 장악하고 있었다. 京華閥閱이라 불리던 그들이 통치자이자 스승으로서의 군주를 자처하는 정조에게 고개는 숙여도 마음까지 그러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최근 발견된 노론벽파의 거두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의 서찰들을 보면 적어도 말년의 그는 벽파를 포섭하기 위해 매우 노력한 것으로 보이지만, 자신을 지지하는 노론시파 측근 중에 직접 선택한 사돈 김조순 역시 정조가 죽고 없자 국왕중심론에 관심을 보이기는커녕, 노론시파 중에서도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붕당정치의 최악의 사태를 불러오지 않았는가.

말년의 정조는 지쳤을 수도 있다. 완벽주의에 가까운 학문에 대한 열정과 그에 따른 지나친 자부심과 과욕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초긴장 상태를 요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의 방식이 자신의 죽음은 물론 세도정치마저 불러온 것은 아니었을까(이에 대해서는 유봉학의 책 참조). 책을 읽는 내내 탄성을 자아내던 정조의 치열한 삶은 그의 죽음과 이후의 역사를 짚어볼 때 탄식으로 이어진다.

시대를 떠난 영웅은 있을 수 없다. 비록 부작용도 많았다고는 하나 종주국을 뛰어넘는 수준의 성리학을 이룩한 조선 사대부들은 국왕까지도 사대부의 일원으로서 간주해 끊임없이 학습하는 시스템(경연과 서연)을 구축했고, 마침내 正祖라는 최초이자 최후의 君師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유학의 이상향인 삼대시대를 이룩하기에 조선의 붕당정치는 이미 말기적 행태를 보이고 있었고, 근대가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시대적 요구는 유학의 당위인 삼대를 넘어선 실용과 다양성(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이었다. 하지만 정조는 삼대의 이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민중을 통치와 교화의 대상으로만 간주했으며, 국왕중심론에 갇혀 있었다. 요컨대 그는 부지런한 계몽군주였으나, 교조적인 주자학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정조의 시대적 한계, 그리고 오늘
그러나 적어도 정조는 평생 正學으로 받든 주자학을 통해 민본주의적 철학을 체화해 자애로운 어버이로서 백성을 대하고자 했으며, 수많은 능행 중 역대 임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백성들의 상소와 격쟁을 들어주었다. 또 주자학의 이상인 君師로서의 삶을 위해 평생토록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완고한 자기중심주의나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의 병폐는 있었지만, 때로는 그 과도한 자신감이 유연함을 가져오기도 했다. 주자학 외의 학문들, 당시 실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었던 北學과 西學, 특히 천주교를 근간으로 한 서학에도 관대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물론 사도세자와 국왕중심론을 지지하는 남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이유도 있었지만, 서학을 탄압해야 한다는 노론강경파들의 주장에 대한 정조의 대답은 오늘날에도 참고할 만하다. “(주자학이 제대로 서지 못해 서학 등이 창궐하는 것이므로) 주자학을 바로 세우면 된다”는 것이다. 남 탓할 것 없이 나부터 잘하면 된다는 ‘고루한’ 쇄신론이지만, 시민을 위해(?) 시청 앞 광장을 만든 사람이 청와대로 옮겨가더니 촛불시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자(?) 그 광장을 전경차로 둘러싸는 행태보다는 외려 신선하다. 

—그렇다면 당시 주자학에 버금갈 만한 오늘날 이 땅의 철학의 근간과 삼대시대를 갈음할 이상향의 시대는 무엇일까?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그런 고민을 할 겨를도 없이 자본주의의 말기적 상황에 휘말려 하루하루를 버텨내기도 바쁜 것이 이른바 99%의 삶이라는 것이 아닐는지. 나머지 1%는 전통과 인습을 구분치 않고 매일같이 무언가를 부수어대는 서울공화국을 지켜내고 확장하느라 여념이 없으니, 200년 전 정조시대에 비해 사상적으로는 비할 수 없이 곤궁해지지 않았는가.

부디 정조와 같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무장한 ‘합리적 보수’들이 사회의 중심에 서서, 북학과 서학을 신봉하는 실학자들을 관대하게 받아주었듯 사민주의와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저 혈기왕성한 ‘좌파’들을 끌어안고, 북한과 김정일, 김대중과 전라도라는 말만 나와도 광분하는 매카시즘의 후예이자 상처입은 영혼들인 ‘극우’들을 달래어가며, 평화와 공존을 바탕으로 성숙한 시민사회, 가까이 백범이 주창했던 ‘문화국가’를 만들어가는 우리나라를 소망한다면, 너무 큰 꿈일까. 아마도 200년 전 정조의 꿈과는 다르겠지만, 오늘을 사는 나는 그의 삶을 읽고 그렇게 꿈을 이끌어낸다. 아마도 많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믿으며. (2009-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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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트(50pcs-Tin) 책에 손상을 주지 않는 얇은 책갈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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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변하지 않는 재질이라면 재구매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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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 - 많이 바를수록 노화를 부르는
구희연.이은주 지음 / 거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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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이 이 책에 대해 이벤트도 진행했고 

MD분 중 한 분이 자세하게 리뷰도 하셨던데 

정작 알라딘에서는 화장품 표시성분을 하지 않으니 

매우 아쉽습니다. 

제가 알라딘 평을 믿고 켈리워터 슬리핑 크림을 두 번이나 구매했는데 

표시성분 4가지 중 3가지가 이 책에서 말하는 '가장 피해야 할 화장품 성분 20가지'에  

포함된다는 것을 방금 확인했고, 

SNP 팩 역시 유해성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거든요.

특정회사를 폄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상대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는 의미에서) 

혹시라도 제 지적으로 이들 제품이라도 유해성분 최소화가 이뤄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고, 

알라딘 애용자로서 화장품 표시성분제에 알라딘이 동참해준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어디에 건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글을 남기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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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심리치유 카페 서른 살 심리학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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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초 종로 영풍문고에 갔을 때다. 평소처럼 인문서적 코너로 먼저 발을 들여놓았더니, 20만부 돌파기념이라며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라는 별책부록까지 옆에 끼고 인문서적 공간의 가장 좋은 자리를 꿰차고 수북이 쌓여 있었던 이 책‘들’이 단연 눈에 띄었다.

출간 6개월이 채 못돼 무려 28쇄를 찍어낸 이 책은 정신분석 전문의가 쓴 심리학 분야의 인문서적이자 서른 살 전후의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실용서적(자기계발서)’이기도 하다. 배고픈 인문과학 분야 중에서는 밥벌이가 괜찮은 심리학이 우리나라 출판시장을 먹여살리는 ‘실용’과 만났으니 안 팔리는 게 이상할 터, 마당발과는 원수지간인양 손가락으로 다 꼽지도 못할 나의 동갑내기 벗들 중에서도 이미 두 명이나 먼저 읽고 서른 살을 보냈다 하니 이 책의 위력(?)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심신을 움츠리게 만드는 수많은 고민들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준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조곤조곤한 위안과 충고의 말은 물론이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사실 자체가 서른 살의 방황과 혼돈의 심리상태가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리라. 지은이가 머리말에서 밝히듯 믿을만한 멘토(스승) 없이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고민과 좌절, 자책에 시달리는 이 땅의 젊은이들은 “네 잘못이 아니야. 누구나 갖고 있는 문제고, 또 누구나 이겨낼 수 있는 문제야.”라는 작은 위로의 말 한마디에도 목이 마르다. 점집과 타로카드에 미래를 묻는 젊은이들도 사실은 “잘하고 있어. 앞으로 더 잘될 거야.”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닐는지.

“구체적인 해결방법이 아쉬웠다”는 독자들의 지적에 지은이는 친절하게도 별책부록으로 답하는 성의를 보였지만, 속이 뻥 뚫리는 해결책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직접 지은이와 상담하지 않을 바에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많은 사례들에 비춰 스스로 심리상태와 그 원인을 짚어볼 수는 있다. 또 직장생활이나 연애와 결혼 등에서 ‘전문가’이자 ‘인생선배’로서의 조언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장점이다.

특히 높은 자아이상 때문에 그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좌절과 자책의 악순환에 시달리며 종종 현실도피를 꿈꾼다면, ‘지금 극복하지 않으면 평생 끌려다닐 문제(p.107)’ ‘나는 왜 만족을 모르는가?(p.161)’ ‘나는 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가?(p.182)’ 등의 부분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어른이 되고 난 뒤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놀라는 때가 있다. 어릴 적 꿈꿔 온 내 모습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당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가 바로 또 하나의 이별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무엇이든지 가능할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거대한 꿈과의 이별. …거울을 깨버린다고 내 모습이 변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체념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한계를 깨닫는 것, 이젠 더 이상 선택할 수 없게 된 것들을 인식하는 것, 이루지 못한 꿈과 현실의 간극을 깨닫는 것 등은 인간 존재의 한 모습이다. …자아이상이 너무 높으면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초라한 자신과 현실에 실망하고 우울해지기 쉽다. …‘과도한 이상’이라는 쇠사슬에 꽁꽁 묶여 고통당하지 말고, 이제 그만 그것들을 홀홀 떠나보내고 새로운 인생을 두 팔 벌려 맞이하라.
― ‘지금 극복하지 않으면 평생 끌려다닐 문제’ 중에서

 
   


어차피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풀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다른 수많은 사람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고 위안을 얻는 것도 우리네 삶일 것이다. 지은이가 강조하듯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괴테의 말처럼, 고민조차도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인간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므로.

한편으로는 이 책이 많이 팔리는 현실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방황하는 서른 즈음 젊은이들에게 작은 위안의 손길을 내밀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시대적 가치는 충분하다. 그리고 그것은 정신분석 전문의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지은이의 섬세하고도 따뜻한 시선과 마음씀 덕분이리라.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심리학]이 사람 마음을 이용하기 위해서보다는 그를 이해하고 위로해야 하는 것이 먼저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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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리 로사 다브레카 트리플 케익 SPF32 PA++ - 21호-다브레카 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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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싸고 질이 좋다. 강추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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