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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인가? 정부인가?
김승욱 외 지음 / 부키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어디까지나 가치중립적으로, 시장주의자와 정부개입주의자들의 시각 차이를 알려주어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야심찬 목적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초반부의 경제의 기초지식에 대한 설명은 잘 되어있는 편이고, 이후 부문별 사안에 대해서도 각장 끝부분마다 표로 정리해 놓았지만 그뿐이다. 암기해서 객관식 시험을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복잡하기 그지없는 경제문제에 대한 나름의 판단력을 키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더구나 곳곳에 가치평가적인 문구들이 눈에 띄어 신뢰성을 떨어트린다. ‘보수주의자들이 안정을 추구하는 이유는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다(p.79)’거나 98년 8월의 현대자동차 노조의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대해 ‘정치논리가 경제논리가 법논리를 이긴 것이다(p.97)’ 등의 문구는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전자의 문구는 여전히 논쟁중인 사안에 대해 편파적으로 단정짓고 있으며, 후자는 경제논리나 법논리가 정치논리보다 우월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물론 경제인이 정치인보다야 사회적 여론이나 유권자의 눈치는 보지 않겠지만, 그것 자체를 경제인의 우월함으로 삼는다면 결국 ‘중우정치’의 논리에 귀결하게 된다. 경제학자로서 정치논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세상이 불만스러울지 모르겠으나 굳이 적지 않은 부분을 할애해가며 경제논리의 우수성을 설파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사안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겠다는 책의 궁극적 목표만 방해할 뿐이다. 너무 단순화된 이분법적인 접근 역시 현실감을 떨어뜨린다. 워낙에 경제학이 그런 학문이기도 하지만.
다루고 있는 현실 경제 문제도 너무 많다. 분량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경제학 개설서에서도 다루지 못하는 문제들까지 모조리 다루고 있는데, 그를 위한 기초지식의 설명은 부족하여 결국 사안에 대한 실제적 파악을 위해서는 보충자료를 찾아봐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차라리 경제현상을 거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개괄적인 면에서 시장주의자와 정부개입주의자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덧붙여 요즘의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의 근간을 이루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다루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각장으로 나누어 다룬 사안은 개괄적인 설명 속에 약간의 예시로 집어넣었어도 충분했을 듯하다.
요컨대 경제학 원론을 수강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복습한다 생각하고 읽으면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벅찰 수 있으며, 경제학 전공자에게는 기대 이하의 책일 듯하다. 다만 시장주의자(신자유주의)와 정부개입주의자(수정자본주의)에 대해서 대략적이라도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법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