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두 남자가 수상하다
손선영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갑자기 빨래가 하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봄이 오긴 하나보다. 봄은 사계절 중에 가장 여유로움을 가졌다. 정신없이 바쁜 이에게 봄바람을 불어서 한숨 돌리게 하고, 근심 가득한 이에게 꽃잎을 휘날려서 마음을 달래준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계절이 내게는 마치 공부 빼고 다 재미있는 시험기간과도 같아서 독서만 빼고 모든 게 즐거워진다. 이럴 땐 햇살 내리는 창가에 앉아 허니브레드 한입, 커피 한 모금씩 하면서 가벼운 책을 읽어주면 독서가 더 잘 안된다. 그냥 하던 대로 화장실 변기에서 읽어야겠다. 사람은 갑자기 바뀌면 안 된다더니 과연 맞는 말이다.


버려진 통조림을 먹고 죽은 고양이 사체들이 발견된다. 통조림에는 석시콜린 약물이 투입돼있었고, 이 사건들은 인간을 사냥하기 위한 예행연습 일지도 몰랐다. 동물의 안락사를 위해 쓰이는 약물을 인간에게 쓴다는 건 장기밀매 밖에 없었다. 위험을 직감한 여주 일행이 찾아간 경찰을 통해 듣게 된 사실. 장기기증 신청자들의 정보가 유출되었으며 석시콜린을 머금은 시신이 발견되었단다. 장기밀매 조직의 소탕을 위한 지역 경찰들과, 약물 살인범을 추론해내는 여주 일행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코지 미스터리답게 시작은 평범한 일상 코믹물로 시작했다가 점점 추리소설의 형태를 갖춰나간다. 분위기가 진지해지려고만 하면 시답잖은 유머와 개그를 남발하는 게 마음에 안 들지만 나중에는 유머가 안 나오니까 참고 볼만하다. 처음 만난 손선영 작가는 이 작품만으로도 내공이 탄탄한 게 느껴진다. 플롯이나 구성도 그렇고 캐릭터 설정과 연출, 장치 등등 장르소설의 표본 같은 작품을 써낼 줄 아는 사람이다. 코지 미스터리는 일반인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고 하며 이 작품 또한 그러한데, 여주를 대놓고 단무지로 만들어놔서 툭하면 성질내고 철딱서니 없는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준다. 비호감의 조건을 다 갖춘 여주는 중반부터 비중이 줄고 경찰들이 바통을 넘겨받는다. 왜 이렇게 주요인물이 자주 바뀌나 했더니 작가가 에드 맥베인의 <87분서>처럼 만들고 싶어 했다더라. <87분서>는 매 편 주인공이 바뀌는 시리즈물인데 그걸 스탠드얼론에 적용하면 어떡합니까. 나는 작가가 여주 일행을 까먹은 줄만 알았으요.


두 내용이 교차하다 마침내 하나 되는 흔한 플롯이다. 한쪽은 불을 붙이는 자들의 내용이고, 또 한쪽은 불을 끄려는 자들의 내용인데 한 사람이 쓴 게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양방의 명암이 다르다. 먼저 고양이 사체가 장기밀매 조직으로 연결된다는 점이 일상 추리물 다워서 좋았다. 구제역이 돌때 사용했던 약물이 소재로 쓰인 것도 대단했다. 다만 일행 중에 똑똑한 추리소설가가 있어서 전개가 너무 빨랐고, 좀비물처럼 다소 뻔하게 흘러가는 것도 흠이었다. 반대로 불 붙이는 쪽은 볼거리가 꽤 많았다. 장기 이식이 필요한 환자와 보호자들. 기증자도 없고 돈도 없어서 안절부절하는 병실 안 사람들. 무너진 가족의 신뢰, 타인에 대한 질투, 생명에 대한 윤리 의식 등등. 보이지 않는 싸움들이 그 좁은 병실에서 매일같이 발생한다. 그리고 벼랑 끝에 몰린 보호자들은 영혼을 팔고 장기밀매와 약물을 택한다. 불법이고 범죄인 줄 알면서도 가족을 살리기 위해 발악하는 이들을 마냥 욕할 수가 없다. 뭐 이렇게 무거운 주제의식을 다룬다냐. 난 그저 가벼운 독서가 하고 싶었단 말입니다요... 


기대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 정리도 못하고 그냥 손가락 가는 대로 적었다. 산만한 분위기에다 정체성도 모호한 작품이었지만 이만하면 낫 배드이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걸 다 때려 넣은 작가의 기념비 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 기회가 되면 다른 작품도 읽어보기로 하자. 그보다 산만한 작품을 읽어서 그런가, 리뷰도 산만해지는 거 같네. 에혀. 당분간은 얇은 책 위주로 읽어야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