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스무살을 울린 책
김윤식 외 지음 / 작가정신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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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쯤, 아버지가 읽으라고 사오신 책이 바로 '내 스무살을 울린 책'이다. 사회 명사들이 자신의 젊은 시절에, 감동을 주고 사상과 가치관에 영향을 끼쳤던 책을 소개한 글로써, 지금까지도 내가 시간날 때마다 읽어보는 책이다. 21명의 저명인사들 -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게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 이 어떤 계기로 그 책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 책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짤막하게 쓴 글로 특별히 재미있거나 흥미진진한 건 아니다.

다만, 어떤 책이 좋은지 그리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책을 고르고 읽는 즐거움을 알려주기 때문에 자주 읽게 된다. 나의 목적은 여기에 소개된 책을 모두 읽는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가 소개한 <학문의 즐거움>과 <파인만씨, 농담도 정말 잘하시네요>도 읽어보고, 방송인 이숙영이 소개한 <위대한 개츠비>도 전에 읽은 거였지만 다시 한번 읽어봤다. 어려운 이론서와 철학책도 소개되었는데, 나의 지적능력이 조금씩 향상되면 읽을 수 있겠지 싶다.

사실, 만화가 박수동이 소개한 <숫타니파아타>는 제목도 처음 들어봤고,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소개한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손봉호 교수가 소개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환경운동가 최열이 소개한 밀의 <자유론> 등은 일반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 읽기엔 다소 어려울 듯 싶기도 했다. 그래서 '과연 이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 이 책을 다 읽고, 감명을 받았을까? 혹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려고 일부러 어려운 책을 내놓은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에게 나의 스무살을 울린 책이 뭐냐고 물어보면 난 뭐라고 대답할까? 나의 젊은 시절 - 지금도 젊은 편이지만 -을 뒤흔들어 놓았던 책이 뭐였냐고 물어보면 난 뭐라고 대답할까? 나도 그 저명인사들처럼 근사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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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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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충하고 비가 오던 날,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 몰래 눈물을 닦느라 힘들었다. 전에 베스트셀러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땐, 읽을 생각도 없었는데 그 날은 갑자기 이 책이 읽고 싶었다. 미치는 우연히 TV 토크쇼를 보다가 자신의 대학 시절, 은사님이었던 모리 교수가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온 몸이 점차 마비가 되는 불치병인 루게릭병에 걸린 모리 교수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답지 않게 긍정적이었으며 밝았다. 부와 명예보다는 가족이나 친구간의 따뜻한 사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실제로 그 사랑을 실천한 모리 교수는 화요일마다 방문하는 미치에게 많은 걸 얘기해준다. 이 책은 모리 교수와 얘기를 나누던 미치가 교수의 가르침을 녹음해서 쓴 글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죽음을 앞둔 노교수가 인생을 사는 법을 알려준다면서 진리만을 죽 늘어놓았다면 이 책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늘 밝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성인 군자처럼 행동했다면 이 책은 덜 재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모리 교수의 인간미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모리 교수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고, 루게릭병에 걸린 자신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너무 힘겨웠다.

불치병에 걸린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슬퍼하다가도 다시 즐거움을 되찾는 기복이 심한 감정의 변화도 받아들였다. 죽기 전에, 모리가 죽음을 앞두고 괴로워하며 흐느껴우는 장면에선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다가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사는 게 재미없고 힘겹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이 책이 '어린왕자'처럼 소박한 삶의 진리를 전해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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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사랑 청목정선세계문학 8
D. H. 로렌스 지음, 강만식 옮김 / 청목(청목사) / 198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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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어봐야지 마음먹고 있었지만 계속 미루다가 이제야 읽게 된 책이다. 도대체 얼마나 야했으면 출판하는데 많은 물의를 일으켰을까...내심 기대감(?)을 갖고 읽어봤다. 요즘 나오는 책들에 비교해봤을 때, 성에 대한 묘사가 적나라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를 생각해본다면 상당히 파격적인 건 사실이다. 같은 시대에 쓰여진 작품들 중에서 성욕이나 성기에 대해 묘사한 책은 아마 이 작품밖에 없을 것이다.

채털리 부인이 남편의 영지의 산지기와 사랑에 빠지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의 마님과 마당쇠의 불륜과 비슷해 우습기도 했었지만, 차츰 부인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전쟁으로 인해 하반신 불구가 된 남편이 소설을 쓰는 일과 광산일로 온통 정신을 쏟고 부인에게 따뜻한 마음을 건네주지 못하자, 채털리 부인은 외로움을 느끼고 산지기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결국 채털리 부인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산지기의 아기도 갖게 된다.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세상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던 산지기도 부인에 대한 열정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채털리 부인과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을 먹는다. 채털리 부인과 산지기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나오는 걸로 끝을 맺는 게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산지기의 다짐을 보여주는 편지로 끝을 맺는다. 아마도 둘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리라 생각한다.

단순히 성에 대한 묘사에만 치중한 작품이었다면 지금까지 명작으로 남아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녀간의 따뜻하고 진정한 사랑, 건전한 성의식에 대해 말하고자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가끔씩 보여주는 귀족들의 생활, 탄광촌의 모습 등 시대적, 사회적 모습이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쯤 읽어보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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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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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였던가? 그 때 이 책이 베스트셀러 1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광고만 보고 값도 저렴하길래 동생 생일 선물로 <깊이에의 강요> 와 <좀머 씨 이야기>를 샀던 게 기억이 난다. 화자인 '나'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이 되어서까지의 이야기인데, 늘 커다란 배낭을 메고 어딘가로 급하게 걸어가는 좀머 씨가 등장한다.좀머 씨는, 아무하고도 얘기하지도 않고, 늘 바쁘게 지팡이를 휘두르며 어딘가로 가는데 주인공이 성장하면서 겪는 사건들과 함께 등장한다.

이 책에서 좀머 씨는 말이 없다. 사람들도 그냥 좀머 씨를 지켜보기만 하고, 좀머 씨는 사람들에 대해서 신경도 안 쓰면서 걷기만 한다. 아니다. 딱 한 마디 했다. 걷기가 힘들 정도로 눈과 우박이 오던 날,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버지가 자동차 안에 있다가 좀머 씨에게 차에 타라고 했다. 계속되는 제의에 좀머 씨는 한 마디 뱉는다.'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병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은둔한다고 하던데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좀머 씨가 대신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의 매력은 여러 가지다. 주인공의 성장, 좀머 씨, 그림....우선,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음직한 사건들로 재밌고 흐뭇하다. 그리고 좀머 씨의 기이한 행동들과 말은 아마 독자들에게 읽는 동안 내내 궁금증을 줄 것이다. 이 사람이 왜 이럴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건 뭘까? 마지막으로, 장 자크 상페의 푸근하면서 귀여운 그림이 이 책의 마지막 매력이다. 쥐스킨트와 상페가 서로 상의하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글과 그림의 조화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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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02
제롬 카린 지음 / 시공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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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헤밍웨이의 작품을 접한 건,중학교 때였고
그 때 읽은 책이 '무기여 잘 있거라'였다.
중고등학생용으로 나온 책이라서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원작의 깊은 맛을 아마 느끼지 못했던 거 같다.
하지만, 아직도 생각이 나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다.
여자 주인공인 캐서린이 애를 낳다가 죽은 후, 남자(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가 병실의 불을 끄고 비를 맞으며
병원을 나서면서 끝이 난다.
꽤 슬픈 장면인 거 같은데, 문체가 너무나 간결하고 깔끔했다.
남 얘기 하듯이 담담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슬프게 느껴졌다.
나중에 대학생이 된 후 알게 됐는데, 헤밍웨이의 문체는
일명 '하드 보일드'라 하며, 간결하며 되도록이면 미사어구를
쓰지 않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난 헤밍웨이 성격 역시 침착하고 조금은 차가울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책을 통해서 본 헤밍웨이는 영화같은 삶을 살았다.
우선 외모부터가 영화배우 뺨치게 생겼다.
시공사 시리즈 좋은 점은 사진자료가 많다는 건데,
이 책에 보면 헤밍웨이의 어릴적부터 죽기 직전까지의 사진이
다양하게 나와있는데,
젊었을 적에는 젊은 대로, 나이들어서는 나이든대로의 매력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얼굴 뿐만 아니라 생활자체도 영화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드 보일드'문체가 주는 분위기과는 달리 헤밍웨이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던 거 같다.
낚시, 사냥을 좋아하고 투우에도 관심이 있었고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결혼도 4번씩이나 하고(내가 제대로 횟수를 세었다면)
나이가 들었음에도 한때 스무살도 안 된 젊은 여자한테 연정을 품을 정도로 정열적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고 병들고 늙은 자신에 대해
허탈함을 느끼고 권총자살을 한다.
그의 화려한 삶에 비해 말년이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졌지만
자살 역시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있는 작가로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거머쥐면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꽤 정열적인 삶을 살아간 그 역시 쓸쓸했었나보다.
그는 노벨상 심사위원회에 다음과 같은
당선 소감을 써냈다고 한다.
'쓴다는 것, 그것은 최고로 고독한 삶이다... 작가는 고독 속에서 작품을 완성하며, 그리고 훌륭한 작가라면 날마다 영원성이나 영원성의 부재와 맞서 싸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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