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사람 검사 - 드라마가 아닌 현실 검사로 살아가기
서아람 외 지음 / 라곰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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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들의 에세이라니...

검사 하면 왠지 거리감부터 느껴진다. 일단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에서도 최고의 성적을 낸 사람들만 될 수 있는 것이 검사다. 일명 형사사건에서 형량을 때리시는 분들, 뉴스에서 범죄자들에 대해 판사에게 사형을 '구형'하신 분들.

그리고 검찰 개혁이다 뭐다 워낙 언론에서 많이 나오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적은 월급을 받는 권력자들이기에 당연히 아주 조금이라도 비리가 수반되지 않을까'라는 assumption을 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검사님들, 아니 왜 이렇게 친근하세요?


보통 사명 가지고서는 유지하기 힘든 직업이 바로 검사라고 한다.

남의 송사에 휘말리고 고생하면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돈은 (로펌 변호사들보다) 많이 못 버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들을 읽으면서 검사도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로스쿨을 졸업하고 같은 법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되면서 안쓰러워 토닥토닥 해주고 싶었다.

유머러스하고 위트있는 검사들의 이야기.

검사의 일상과 마음 속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어 너무 흥미진진했다.

- 서아람 검사의 글 中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로펌 세 곳에서 인턴십을 하기도 했다. 부티 팍팍 나는 사무실, 아이비리그 출신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변호사님들, 입이 떡 벌어지는 연봉에 나라고 혹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면, 역시 답은 정해져 있었다. 검사, 내 평생의 꿈. 실체적 진실을 찾고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 / 23

- 김은수 검사의 글 中

거짓말을 하기 싫다는(실상은 거짓말 무능력자라서)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남의 인생에 개입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던 철부지가 다른 사람들의 막장 싸움에 끼어들어 그 싸움을 정리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 검사가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이제 평생 남의 일에 끼어들어 치이며 살게 생겼다는 인생의 아이러니 앞에서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 31쪽

"검사로 살면서 힘든 날이 많았다. 가끔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날의 신부님 말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를 따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내 멘탈은 생각보다 잘 버텨주고 있다.

내가 어디에서 어떤 사건을 맡고 있든 상관없다. 세상의 죄를 씻어내고 닦아내는 사람으로서 집무실에 고이 모셔둔 십자가 앞에서 부끄럽지 않으면 충분했다. 그것이 지금도 내가 검사로 살 수 있는 이유다." / 33쪽

그녀들의 삶, 일기를 엮기만 해도 소설과 같이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하다.

그녀들이 했던 실수에 큭큭 거리며 웃기도 하고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육아비용을 메꾸기 위해 어느새 중고나라 만렙이 되어버린 검사, 그런 박민희 검사가 중고나라 사기꾼에게 낚인 이야기에서는 킥킥대며 웃었고,

학창 시절에도 안 하던 아이돌 덕질을, 검사된 이후 외박을 하면서까지 콘서트에 참석하는 열정을 보이는 그런 서아람 검사의 덕질 이야기에 너무 인간미가 느껴저서 많이 웃었다

아이를 낳자마자 창 밖으로 던져 사망에 이르게 한 범인을 조사하며 눈물 흘리던 김은수 검사 이야기에서는 눈물이 났다.

그리고 검사들의 삶이 생각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것에 마음이 너무 짠했다.

(발령 때마다 전국 도처를 돌며 급하게 이사를 다녀야 하고, 그로 인해 기혼이라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혹여나 다쳐도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눈치보며 병원을 다녀야 하는.. 그러면서 월급은 대기업 신입사원만도 못한.. 그런 삶을 소명 없이 어느 누가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크게 기대 하지 않았는데 드라마틱한 일상을 덤덤하게 써내려가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눈을 부릅뜨고 책을 다 봤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세 명의 저자 모두 유머, 감동, 스릴, 교훈을 일상에 녹여 글로 다 담아내는 능력들이 뛰어나신 듯.

검사라는 직업에 앞서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월급쟁이 직장인으로서 우리네 일반인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그녀들의 애환을 들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대한민국 검사님들, 특히 여성 검사님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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