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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결정적 리더십의 교과서, 책 읽어드립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5월
평점 :
마키아벨리의 대표적인 책이 <군주론>이다. 매우 똑똑하지만 역사 속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는 마키아벨리가 하는 군주론이 왜 현대에 이르기까지 회자되는 것일까.
강력한 군주제를 유지하기 위해 악인이 되기도 서슴지 말라고 말했던 그의 말을 들어야 할 당위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게 된 배경이 흥미롭다. 한때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로마제국이 망한 후, 이탈리아 땅은 혼란과 분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북부, 중부, 남부가 갈기 갈기 갈라진 이탈리아는 당시 서로 대립하고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정치제도도 군주국, 공화국, 신정정치체제 등 다양하여 '하나의 정부와 하나의 체제를 갖춘 강력한 통일 이탈리아'를 바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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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이런 시대상이 낳은 사람이자, 그 시대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평생을 걸었던 사람이었다. 이탈리아의 통일, 그것은 필연적으로 거듭된 전쟁의 산물이리라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장군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었다.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적을 무찌를 수도, 그 군대를 강력하게 해줄 대포를 만들 수도 없었던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공부한 인문학에서 나름대로 ‘대포’를 만들어 내어 통일의 걸림돌이 되는 낡은 사상과 관습을 부숴버리려 결심했다.
인문학에 일찍이 통달한 마키아벨리는 서른도 되기 전의 나이에 관직을 얻어 14년 동안이나 고위 관직을 지냈으나 피사와의 전쟁에서 프랑스의 지원을 얻으려 파리를 방문했을 때 루이 12세와 그 신하들에게 비웃음만 샀단다. 로마에 가서는 교황의 아들인 체사레 보르자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로 삼았다고.
하지만 결국 체사레 보르자에게 실망하고 교황 율리우스 2세, 신성 로마황제 막시밀리안 1세, 스페인의 페르난도 2세 등 각국의 지도자들을 만나며 그들을 관찰, 그리스-로마 고전에 나오는 인물들과 비교하며 통치술, 국제정세, 정치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쌓아갔다고. 그 지식과 지혜의 결정체가 군주론으로 탄생한 것」
[네이버 지식백과]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 - 이탈리아의 통일과 번영을 꿈꾸며 새로운 정치사상을 모색한 정치사상가 (인물세계사, 함규진)
친 프랑스적이었던 피렌체가 스페인 군에게 유린되고, 피렌체의 옛 지배자 메디치 가를 복귀시킨다. 메디치 가문은 명목상 공화정부일 뿐 사실상 독재적으로 피렌체를 다스리는 옛 체제를 되살리고, 기존 화정부 참여자를 숙청했다. 그때 마키아벨리는 음모에 휩쓸려 투옥된다. 결국 혐의를 부인하고 석방되었으나 재산도 몰수당하고 시골에서 칩거하게 된다.
그 칩거 기간 동안 메디치 가문의 인정을 받아 공직에 복귀하기 위해 군주론을 집필하여 헌정한다. 그러나 끝내 메디치 가문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당대에는 '악마의 책'이라고까지 불리우던 <군주론>은 후대에 18세기가 지나서야 주목을 받고 그 의미를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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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으로 구성되는 군주로는 총 4부로 나뉘는데 1부는 군주국의 종류, 군주권의 획득 및 유지의 방법이 소개되고, 2부는 군사론, 자국군의 필요성과 군주의 군사상의 의무, 3부는 통치의 기술, 4부는 이탈리아의 위기적 현상의 원인 그리고 운명론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강력한 군주가 되기 위한 권모술수적인 통치의 기술이 담긴 책, 강력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심리, 통치적인 기술과 방법이 담긴 책으로 한때 악마의 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후에는 이탈리아를 강력한 군주에 의해 구하고자 했던 마키아벨리의 애국심으로 인해 집필된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단다.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개인의 권리가 중요한 현대인들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는, 그래서 현대의 정치에서는 적용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지 않을까. 그럼에도 권력이란 어떠한 것인지, 그 본성을 심도있게 파헤친 마키아벨리의 저서를 읽으며 리더십이라는 것에 대해 고찰해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