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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엘리 위젤.아리엘 버거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15세의 나이에 홀로코스트를 겪고 눈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하나 둘씩 잃는 처참한 경험을 했던 엘리 위젤, 어린 시절의 그 끔찍한 기억은 기억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빨리 잊혀져야만 하는 것일까.
엘리 위젤은 평생 그 시절 자신이 겪었던 아픈 사건을 '기억'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며 고통과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우리가 겪은 고통을 다리로 바꾸어
다른 사람들이 그 다리를 밟고 지나가며 고통을 덜 느끼게 해주어야만 합니다.
스스로도 과거의 악령에 시달려온 위젤은 자신이 닞지 않고 있는 기억들을 통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고민한다.
"생존자들의 고민은 잊지 않고 있는 그 기억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냥 그 기억들과 함께 절망 속에 빠져 살아가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응답할 수 있는 힘을 얻도록 어떤 식으로든 이용을 해야 할까요?" / 49쪽
최근 읽었던 <아직도 내 아이를 모른다>라는 책에서 아이의 뇌가 통합될 수 있도록 부모가 돕기 위해, 아이가 슬퍼하거나 아파했던 기억, 아이가 감정적으로 압도되었던 기억이 있다면 아이의 기억을 되살려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 왜 그랬는지, 그 상황은 어땠는지, 그 때 기분은 어땠는지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 때의 감정을 잘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고 이야기한다.
좋지 않았던 기억을 자꾸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그 좋지 않은 기억이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지만 기억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과거를 일깨워 미래를 위한 보호막으로 삼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그만 우려 먹으라'고 망언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자꾸만 좋지 않은 일에 대해 망각하기에 아픈 사건은 반복되는 것이다. 그 날의 그 일을 잊는 것은 우리 후손들에 대한 죄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엘리 위젤도 그러한 의미에서 반드시 그 일을 기억해야만한다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우리 민족의 아팠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아픈 사건들에 대해 (가령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6.25 전쟁 등) 제대로 인식하고 기념하며 기억하는 일들이 왜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엘리 위젤이 어린 시절 겪었던 경험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까. 그는 아팠던 소년 시절의 기억을 잊지 않고 세상에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인간의 삶에서 신앙이 가지는 의미, 나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학생들과 소통하며 교수로서 살아간다. 2016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가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들과 가르침이 이 책에 담겨있다.
한 개인의 삶에서 기억이 가지는 의미, 역사 속에서 기억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된 감사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