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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이방인 - 194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최헵시바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알베르 카뮈의 데뷔작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다. '실존주의', '부조리'라는 말은 카뮈를 설명하는 대표적 수식어들이다. 사실 '실존주의'와 '부조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없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 1940년도의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 뫼르소는 모든 것에 대해 무미건조하게 반응하고, 무심한 사람이다. 좀 심하다 할정도로 감정의 변화도 기복도 없이 그저 본인의 욕구에 충실하고, 그날 그날 주어진 일상을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악한 살인마로 몰리게 되는 배경은 무엇일까.
충격적이게도 소설은 주인공의 엄마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엄마가 죽었다' 어찌 보면 가장 슬프고 극적인 비극일수도 있는 사건조차 그저 남의 일처럼 덤덤하게 서술하는 주인공, 그리고 그 다음날 여자 친구와 해수욕을 하고 영화를 보는 덤덤함을 보이기도 한다. 여자 친구가 사랑하냐는 말에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대답하지만, '결혼하자'는 말에는 '그러자'고 선뜻 대답하고는 '니가 아니고 다른 여자가 결혼하자고 해도 한다고 했을 것'이라 덧붙이는 무심한 인간. 허무주의의 끝판왕이다.
우연히 사귀게된 친구 레몽이 그를 속인 정부에게 복수랍시고 데이트폭력을 하는 것을 방조하기도 하고 (그것에도 역시 무관심), 그 정부의 오빠인 아랍인 일당이 쫓아와서 레몽을 때려주고 갔을 때도 딱히 복수를 하자거나 감정적으로 동요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그 일 이후 그 정부의 오빠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태양이 너무 눈부시도록 따가워서(주인공의 독백에 따르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별 감정이 없이 말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기는 하다.
그런데 그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간극을 억지로 짜맞춰 주인공을 극악무도한 살인자로 몰고가는 검사와 재판부,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제3자들은 또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검사는 주인공이 악한 사람이고, 그가 범죄를 사전에 계획했다고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엄마가 죽은 후 주인공이 무관심했다는 것, 엄마 나이도 몰랐다는 것, 바로 그 다음날 여자와 해수욕을 하고 영화 구경을 하고 여자와 집에 돌아온 것을 지적한다.
살인을 저지른 후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다는 이유로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해석되고, 아랍인을 죽인 이유가 단순히 태양 때문이었다는 그의 발언은 군중을 더욱 격분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주인공의 행동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인과관계를 만들어낸다.
억지로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는 세상의 부조리와 소통하지 못하는 주인공
더스토리 출판사의 <이방인>의 해설 - 책의 에필로그 부분 -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주인공의 말, "무의미하다." 주인공이 그렇게 내뱉던 그 말이 저자가 드러내고자 했던 실존주의의 실체일까. 그렇다고 아무런 의미를 추구하거나 그 의미를 남들에게 설명하지 않는 삶은 죽어 마땅한 삶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주류에 편승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습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악한 범죄자임이 틀림이 없을까.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밀크 커피를 마시고, 그 다음날 여자친구와 코메디 영화를 볼 정도로. 그런데 그렇다고 그가 악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방인은 주인공 자신을 뜻한다. 앞으로 닥쳐올 미래를 초월한 자기 생의 이방인인 것이다. 자신의 목숨에 대해서조차 자기 스스로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자기 뜻이 아닌 관습에 따라, 타인의 결정과 판단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주인공을 보며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도 주인공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스스로의 인생을 '무의미하다'고 말하게 만든 장본인들도 본인이 아닌, 타인과 이 세상이 아니었을지.
'그러게 누가 살인을 저지르래?'라는 말이 튀어나오지만, 그런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카뮈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인간의 '실존' 그리고 '부조리'가 어떠한 것인지, 직접 설명하지는 않아도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카뮈의 다른 소설들에서는 실존과 부조리가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