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 본격 며느리 빡침 에세이
박식빵 지음, 채린 그림 / 북로그컴퍼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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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수 많은 감정이 물밀듯 밀려와서 서평을 쓰기 시작하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내 속에 있는 감정, 생각들을 잘 정리할 수 있을까. 일기도, 에세이도 아닌, 책을 읽은 다음의 서평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냉정을 되찾고 서평을 쓰기 시작한다.

일단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할 용기를 내어준 저자에게 참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어찌보면 아픈 이야기이고, '나 알콩달콩 행복했다'기보다 '이렇게 힘들었다'는 이야기인데 거침없이, 적나라하게 세상에 드러내준 그 용기, 반드시 칭찬해주고 잘 하셨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대한민국 80년대생 며느리의 속마음을 너무 잘 표현해주어 고맙다고. 그리고 너무 애썼다고 토닥토닥과 따뜻한 허그를 함께 드리고 싶다.

대한민국에 사는 82년생 김지영들에게, 아니 그 이전부터 뿌리깊게 만연해온 며느리들을 향한 시가의 갑질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대해 세상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것일까? 아마 세상의 절반이 남자이기 때문? 우리 모두 어미의 뱃속에서 잉태되어 세상에 나왔고, 엄마의 보살핌을 받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던가. 그 어미들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왜 우리는 쉬쉬해왔어야 했고, 음지에 숨어서 시가를 익명으로 욕하는 것으로만 만족해왔던 것일까.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뭔가 불공평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B급 며느리>, <82년생 김지영>, <며느라기> 등등 요즈음에 들어서야 며느리들이 목소리를 내고 이것이 소위 '주류' 문학으로 포함되어가는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런 주제의 책들, 영화들을 보는 것만으로, 그에 대핸 감상을 말하는 것만으로 '페미니스트' 취급을 받는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참 애석하기만 하다. 무엇이든 극단적으로 치닫으면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언급하는 것 자체만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기혼 여성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인권' 내지 '인격권'에 대한 문제인데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남자만 바라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선택했던 결혼인데, 왜 내가 원하지 않았던 수많은 고구마줄기와 같은 짐들이 함께 줄줄이 딸려오는 것일까. 그러한 상황을 그림으로 참 잘 나타내준 것 같다.

 

 

 


신혼 때 나에게 "우리 아들 키워서 너한테 갖다 바쳤다", "우리 아들이 내 보험이고 연금이지"라고 서슴치 않고 말씀하시던 시어머니의 말씀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시부모님은 결혼하면 더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시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을 외면하시는 것일까. 아들 내외를 여전히 독립된 하나의 가정으로 보지 않으시고 애들 잠깐씩 봐주신다는 이유로, 과일 나눠먹자는 이유로 요즘도 거의 매일 우리 집에 방문하신다. 금쪽같은 손녀들 다칠세라, 며느리가 아들 밥 굶길 세라, 며느리 없을 때 아들 집 냉장고 문을 열어보시곤 한다. 야채, 과일, 김치 등등 이것저것 챙겨주시면 며느리가 엄청 기뻐하실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것이 '우리 아들 잘 챙겨 맥여라'고 부담 주시는 행동임은 1도 모르시는 것 같다.

80년대생 며느리의 마음,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절묘한 대목들이 많아서 무릎을 치며 읽기도 했다. 마구마구 떠오르는 에피소드들이 많지만 할.많.하.않.....


다행히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유지하며 경제권을 놓지 않으면서 아이를 둘씩이나 출산하고, 셋째도 출산을 앞두고 있기에, 신혼 초기 어리버리해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엄청난 권리의 신장이 생겼다고나 할까. 시부모님 만큼 동등한 발언권을 갖기도 하고, 선을 넘는 그분들의 언행을 마주할 때면 대놓고 그건 아니시라고 딱부러지게 말씀 드리거나, 간접적으로 불편함을 내색하곤 한다. (간접적으로 불편함을 내색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무엇이 불편한 지 잘 정리해서 예의바르게 말씀드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다.)

나야 신랑이 워낙 효자이기 때문에 더 속앓이를 많이, 여전히 하고 있다는 면에서 저자 남편이 있는 저자의 편에 서준다는 면에서 저자와 좀 다른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 강도나 세기에 있어서는 저자도 말도 못하게 힘들었을 듯하다. 말로 어찌 다 표현하리. 가족만 아니라면 법적으로 인권침해, 모욕죄,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저자 시부모님의 언사를 단지 며느리라는 이유로 그대로 당해왔을 저자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

저자의 뒷목 잡는 에피소드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고구마를 먹은 느낌?이 들었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만 같은 저자의 시어른들의 언사는 단순 갑질일까? 인격의 문제일까? 나도 이랬었는데, 저랬었는데,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과 감정으로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이 요동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저자가 용기내어 이 책을 출판한 것 자체가 사이다가 아닐까. 가감 없이 본인이 겪은 일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어 고맙고 대견(?)했다. 그녀의 이런 출판을 지지해준 남편도 칭찬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작가의 꿈을 조금씩 펼쳐나가는 저자를 응원해주고 싶다. 작가로서 당당하게 일어서서 할 말 다하고 더이상 억울해할 일 없는 그녀로 성장해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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