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 아빠의 불꽃 육아 - V.O.S 박지헌의 애착 관계 15년 육남매 에세이
박지헌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다둥이 아빠로 유명한 VOS의 멤버 박지헌씨가 낸 에세이집이다. 세명도 아닌, 네명도 아닌, 다섯명도 아닌, 여섯명의 아빠다. 요즘과 같은 저출산 시대에 보기드문 다둥이 부부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만난다고 하니 반갑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잘생긴 보컬리스트로만 알고 있던 저자는 사실 첫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만해도 갑작스런 유명세가 무너질까 두려워 아들과 부인의 존재를 숨겼다고 한다. 한참 잘나갈 때 자신이 유부남인 사실을 들킬까봐 쉬쉬하고, 철저히 지인들을 단속하며, 집에서도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온전히 헌신하지 못한채 무미건조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성공에 눈이 멀어 무리하게 기획사를 옮기면서 믿었던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갑작스럽게 돈도 잃고 집도 대전의 작은 집으로 옮기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고 처절하게 반성하게 된다. 그 와중에도 꿋꿋하게 남편을 믿고 가정을 지킨 아내 덕분에 저자는 정신을 차리고 가정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아이들과 살을 부비고 살면서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을 놓쳐왔었는지 깨닫게 되고, 그 때부터 아이들에게 올인하게된다.

아이들은 대전의 부모님께 맡기고 부부가 동대문에서 주말 부모를 하며 한참 사업이 번창하던 때, 계산에 눈이 밝아 절대 손해를 볼 사람이 아닌 아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

"이렇게 일을 하고 돈을 잘 벌고 있는 이 상황이 왠지 나는 손해라는 느김이 들어. 아이들하고 점점 멀어지고, 지나가버린 그 시간들은 못 누리는 거잖아. 인생을 사업으로 보면 이거야말로 가장 큰 손해인 것 같아." / 62쪽

그래서 부부가 내린 결론은 '우리가 경영해야 할 곳은 가정'이었다. 그리고 제일평화시장에서 제일 잘나가던 아동복 도매사업을 하루 아침에 접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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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끊임없이 희생하고 고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넘겨짚음은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양육은 윈윈게임이다. 마치 무슨 큰 고난을 만난 것처럼 '지금을 견뎌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 희생하고 더 고생하면 아이들을 잘 키울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역시나 착각이다. 꾹 참고 좀더 벌고 성공해서 아이들이 더 좋은 걸 누리게 해주는 것은 '잘 키우는 길'이 아니다. 나부터 설레는 그 사랑을 누리고 함께하는 시간을 즐겨야 진짜 양육이다.

나부터 설레는 그 사랑을 누리고 함께하는 시간을 즐겨야 진짜 양육이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사랑을 안다." / 70쪽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음에도 그걸 느끼지 못하는 건 가장 무서운 일이다. 나는 훗날 '내가 그때 왜 그랬지'라고 말하며 공허함을 달래지는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이들과의 기억이 내 삶 구석구석에 새겨질 수 있도록 나는 더 뜨겁게 사랑하고자 했다. /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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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는 법, 우리는 기대하는 법을 이때 조금 배웠다. 그리고 시대의 문화나 내 마음에 속지 않고, 내게 주어진 그 싫은 일을 감당해냈을 때 늘 그것이 예상치 못한 축복으로 연결되는 현상들을 경험했다. 넷재 향이는 우리 부부의 삶의 시야를 또 한 번 넓혀주는 아주 중요한 터닝포이트가 되었다. /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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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대에는 육아라는 것이 너무도 귀한 삶의 원동력이었는데 이 시대에는 힘든 노동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육아가 스트레스가 됐을까? 분명한 건 '부모들에게 재미있는 일이 많아진 시대부터'라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순간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이가 찾아왔는데, 세상에 너무 재밌는 게 많아서 집중이 안 된다.

스트레스라는 말에 감염되서는 안 된다. 마인드 바이러스처럼 쟤가 그렇다니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게 돼버린 것이다. 나는 부모들이 '육아 스트레스'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강력히 밀어냈으면 좋겠다. 내 앞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여유 있게 비웃으며 튕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지면 좋겠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에 있는 스트레스라는 단어에 끌려갈지, 열애의 시간으로 신나게 뛰어갈지는 모두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 97-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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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성장에 기준치는 독이 된다. 내 사랑을 세상의 기준에 맞게 깎아내려고 건들면 자칫 그 사랑이 부서진다.

아내와 나는 '무계획' 덕분에 고민의 절반은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이 계획하면 너무 많이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결국은 사랑이라고 생각을 바꾸면 상대방이 보인다. 그리고 그가 뭘 원하는지를 이끌어내면 그것이 내 기쁨이 된다. 계획을 내려놓아야 상대가 보인다. 조바심 내고 종종거릴 시간에 아이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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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세상의 기준, 주변의 입소문에 휘둘려 아이를 바라보는 눈도 획일화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여유를 가지고 괜찮다가도 아이의 어린이집 학부모 모임에만 다녀오거나, SNS에서 영어로 술술 말하는 동갑내기 아이의 동영상을 보기만 하면 갑자기 조급증 걸린 사람처럼 내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책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를 다그치기도 했다. 내가 왜이러지.

해외 출장이 많은 남편이 없는 주말, 아이 둘 독박 육아에 억울해 하며 스트레스를 한 껏 목소리에 담아 아이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순간순간이 소중한 이 순간을 '스트레스'라 여기며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들을 다 놓치고 있었던건 아닐까.

'여섯 아이의 육아는 대체 어떨까. 대체 얼마나 끔찍할까'라는 마음으로 책을 펼첬던 마음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저자는 행복하고 절절하게 아이들과 아내와 열애중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기준에 어느새 물들어버린 내 마음을 돌아보게 했다.

아이들은 축복이고 기쁨이고 선물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 순간은 세상 그 어떤 즐거움과도 바꿀 수 없는 복된 시간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순간의 내 육체적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을 희생이라 여기고, 이를 견디지 못하고 육아를 스트레스로 단정해버렸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셋 이상 아이를 낳은 부모를 마치 '야만인'으로 여기며 그렇게 무서웠던 다둥이맘이 되는 내 인생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게 되었다.

사실 셋째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순간 처음 느낀 감정이 '두려움'이었다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 마치 아이의 존재가 엄마의 성공과 성장을 방해라도 하는 듯, 셋째가 생긴 것을 환영하기 보다 쉬쉬하며 두려워했던 감정 자체가 너무나도 미안했다.

다둥이 부모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선택한 그 결단을 존중하고 지지해주기 보다, '요즘 세상에 참 대단하네. 좀 사나보지?'라고 비꼬는 듯 말하는 사회의 분위기 그리고 '그러니까 조심좀 하지'라며 나무라는 주변 지인들의 목소리도 안타깝다.

위로와 공감이 되는 것은 저자도 처음부터 다둥이 아빠가 될 준비도, 어떤 마음가짐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육아의 길이 탄탄대로였으며 부부가 애초부터 육아에 올인을 했었던 것도, 파이팅이 넘쳤던 것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저자의 거듭되는 육아이야기에 '여섯이나 되는 아이들 육아를 그렇게 거뜬하게 할 수가 있지?'라는 부러움과 존경이 흘러나오기보다, 저자도 솔직하고 진실된 고백들이 마음에 와닿고 공감이 되기도 했다. '아.. 저자도 힘들었겠구나.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구나. 하지만 그보다 한 명 한 명 소중한 아이들이 주는 기쁨이 몇 백배, 몇 천배는 더 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남겨진 다둥이 육아에 대해 두려움의 많은 부분을 떨쳐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 순간을 흘려보내서는 안 되겠구나. 아이들이 커 가는 순간을 놓치지 말고 마음껏 누리고 기뻐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한다면 얼마나 더 성공할 것이고, 더 잘살려면 얼마나 더 잘살겠는가. 커리어, 성공, 승진... 그게 뭐라고. 인생을 돌이켜보았을 때 아이들에게 '엄마가 이만큼 노력해서 이렇게 성공을 거두었어'라고 자랑하는 것이 큰 축복이겠는가, 아니면 조금 덜 이루더라도, 혹은 다 내려놓고 포기하더라도 엄마와 함께 보내고 함께 웃었던 그 숨결과 따스함이 아이들의 인생에 더 큰 선물이겠는가. 말해 뭣하겠는가.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들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더 감사해하고, 인생에서 주어진 큰 축복들을 더 누리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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