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연의 로스트 타임 - 지연된 정의, 사라진 시간을 되찾기 위한 36개의 스포트라이트
이규연 지음 / 김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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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라는 TV 프로그램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몇년 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할 때 이 프로그램을 처음 알게 되었다. 베일에 쌓여있던 사건들을 집중 조명하며, 진실을 향해 거침없이 사건을 파헤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며 시원한 사이다 한 잔을 들이키는 느낌이 들곤 했다.

한동안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며 떠들썩하다가도 그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는 나라.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다. 누군가가 끔찍한 일을 당했다거나 비리와 구조적 문제로 억울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반짝 관심이 쏠리다가도 다음날 되면 모두가 무관심해지는.

로스트 타임이란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들, 권력과 부가 없다는 이유로, 약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무관심이라는 덫에 걸진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간이다. 저자는 그러한 피해자가 잃어버린 시간, 그 시간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수년간 탐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영방송에서 밝히지 못한 진실을 더 깊이 다루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에서는 실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소개된다. 1시간의 방송만으로는 다 담아내지 못한 사건의 뒷 이야기들도 담겨있다.

어린 초등학생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남기며 온 국민의 공분을 샀던 조두순 사건, '태완이 법'을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은 적용 받지 못한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 또 대한민국 검찰 부패의 온상을 드러내며 미투 운동의 시초가 되었던 서지현 검사 사건, 그리고 고구마 줄기처럼 비엔나 소세지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이어 터지는 추악한 사건들의 진원지 버닝썬 사태, 당시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킨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그리고 세월호 사건, 가습기 사건, 5.18가태, 인혁당 사건 등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담겨있다.

실제 사건들을 취재하며 방송에는 담지 못했으나 저자가 인상깊에 보았던 장면들,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한 인간이기에 사건들을 보며 느낄 수 밖에 없는 저자의 분노, 안타까움들이 담겨있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있던 분노와 안타까움이 함께 되살아나기도 했고, 이러한 사건들을 파헤치는 것이 언론의 진정한 순기능이기에 저자와 같은 언론인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저자는 기자라기 보다는 탐정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자 + 탐정이라고 하면 되겠다.

학창시절, 아니 내가 대학에 다닐때만 해도, 언론이 언론같지가 않았다. 너무 편파적이었다. 뭣 모르는 어린 내가 봐도 언론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듯했다. 누군가를 마치 의식하듯 공정하지 못했다. 최근까지도 그랬던 것 같다. 어떤 방송사 프로그램은 아예 틀고 싶지도 않았다. 묻고 따지지도 않고 채널을 돌렸다.

그런데 어떤 시점을 기점으로 언론이 앞다투어 '사실'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 같다. 마치 그때서야 언론의 기능에 대해 반성하고 고찰이라도 한듯.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인듯하다. 그 사건으로 대통령이 감옥에 들어갔고, 더이상 누군가를 의식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듯, 언론은 앞다투어 진실을 파헤치려는 풍토가 생긴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언론의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실을 그대로 취재하고, 파헤치며 세상에 공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을 분노케 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더 파헤쳐주었으면 좋겠다. 시청률을 위한, 모종의 이해관계와 이익을 위한 방송들도 존재하겠으나, 저자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처럼,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분노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구석진 곳을 조명하는 그런 방송도 존재한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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