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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버 보이 - 당신의 혀를 매혹시키는 바람난 맛[風味]에 관하여
장준우 지음 / 어바웃어북 / 2019년 9월
평점 :
셰프 겸 칼럼니스트. 신문기자로 일하다 돌연 음식과 요리에 매료되어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셰프. '음식과 요리를 둘러싼 역사와 인문학적 맥락을 찾아 여행하고 공부할 때 가장 열정적이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책을 읽고 나니 서양 음식계의 백종원, 혹은 서양 음식계의 황교익이 아닐까 (저자가 싫어할 수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먹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 그런지 흥미 진진하다. 기자출신 저자가 쓴 글인지라 사실 기반의 탄탄한 글이다. 음식과 그 음식에 관한 역사적 배경, 문화적 배경에 관한 인문학적 에세이다. 이야말로 여러 영역의 융합이리라 생각된다
지방 이야기 - 님아 그 지방을 떼지 마오
"지방은 음식 맛을 보다 좋게 하는 주방의 필수 요소 중 하나다. 실제 우리가 '요리한다'는 말의 의미를 따져보면 대상이 되는 식재료를 '가열한다, 조미한다'로 나눌 수 있고, 조미한다는 데엔 '소금을 치고 지방을 더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지방은 우리가 풍미라고 표현하는 맛과 향에 크게 관여한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고기 맛의 대부분은 살코기보다 지방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맛을 혀로 분간한다고 느끼지만 사실 후각을 통해 얻는 정보가 절대적이다. 고기 특유의 냄새, 향 성분은 단백질이 아니라 지방에 잘 녹아든다.
마블링 소고기가 맛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끊임없는 논란도 결국에는 지방에 관한 이야기다. 마블링이 있다는 건 지방이 살코기 안에 고루 침투해 있다는 의미다." / 18쪽
미르푸아 - 식재로 덕에 이름을 남긴 공작
18세기 프랑스의 '미르푸아 공작'의 요리장이 만들어낸 고기 요리 소스에 사용된 양파, 당근, 셀러리의 조합이 현재까지도 유럽에서는 널리 고기 소스로 쓰여지고 있다. 미르푸아는 맛을 내는 기본 재료로 유럽 각지에 널리 알려졌다고 전해진단다.
실제 유럽에서 먹는 여러 고기 요리에는 향과 풍미를 위해 샐러리, 당근, 양파가 쓰인다. 스페인에서는 샐러리 대신 토마토를 사용하고 스페인식 냄비 볶음밥인 파에아를 만들 때 이 미르푸아를 쓰기도 한다. 이탈리아 일부에서는 이 세가지 채소에 마늘을 더해 쓴다고 한다. / 28, 30쪽 참고
멸치 이야기 - 요리계의 슈퍼 히어로
유럽의 된장, 간장과 같은 존재가 바로 '앤초비'란다. 우리가 거의 모든 요리에 맛을 더하기 위해 간장이나 된장을 쓰듯 맛을 좀 아는 로마인들은 이 감칠맛의 정수를 즐겨 사용했단다.
서양의 치즈, 동양의 젓갈이나 된장 같은 장류들이 바로 감칠맛과 짠맛으로 음식에 맛을 더해 주는 슈퍼히어로가 된다.
스테이크 이야기
엘 카프리초의 스테이크가 특별한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키운 소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한우는 3년, 미국은 광우병 위험 때문에 2년을 키운 후 도축하는 데 비해 이 곳의 스테이크는 주로 10년에서 15년을 키운 소를 사용한다. 오랫동안 소를 키우는 이유에 대해서 묻자 그는 오로지 최고의 품질의 소고기를 얻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육질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여기서 필요한 것은 숙성이다. 고기를 건조 숙성시키는 드라이에이징은 고기의 풍미는 살리면서 육질은 연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이다. / 10-11쪽 참고
프랑스 요리는 고급 요리, 이탈리아 요리는 서민 요리라는 편견이 있는 데 사실 그것도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다. 이탈리아도 르네상스 시대(15세기)는 과학, 패션, 건축 예술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요리로 이름을 날리던 시기였다.
16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정치적 혼란에 휩싸이자 유럽 최고의 요리 짖위가 프랑스로 넘어가게 된다고 한다. 카트리나 데 메디치라는 피렌체 명문가의 영애가 프랑스에 시집을 가면서 화려한 이탈리아 식기와 더불어 식문화의 불모지였던 프랑스에 이탈리아의 선진 문화가 이식되면서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는 절대왕정 시기를 지나며 요리사들이 창의력과 개성을 마음껏 뽐내면서 요리의 문법이 체계화될 수 있었다고 한다(271쪽 참고)
이렇듯 지금 우리가 맛보는 그 음식에는 역사와 배경이 있고 그 오랜 역사가 전해지고 이어져 현재 식탁에서 만날 수 있는 요리가 된 것이다.
저자가 신문기자의 삶을 포기할 정도로 깊은 매력을 지닌 것이 음식의 세계인 것 같다. 음식에도 역사와 철학이 있고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 그 배경과 역사를 알고 먹으면 식탁 위의 이야깃거리도 풍성해지고 더욱 맛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식탁에서 만나는 음식들도 그 배경과 역사를 알고 나니 더 어제 봤던 그 양파, 그 멸치, 그 고기가 달리 보인다.
저자가 세계 각지를 누비며 경험한 맛의 세계, 곳곳에서 최고라 불리는 음식들을 경험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 글쓰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가 소개한 음식들을 다 맛볼 수는 없지만 유럽, 일본 등지를 여행할 기회가 있을 때 꼭 찾아서 먹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