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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 나를 변화시키는 조용한 기적 ㅣ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저자는 고전문헌학자다. 인류 최초 문자들의 언어인 셈족어, 인도, 이란어를 전공한 학자이며,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쐐기문자 비문에 관한 연구로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단다.
인류가 남긴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위대한 개인이 획득해야 할 가치들을 네 권의 책으로 기획했고, <심연>, <수련>, <승화> 중에서 이 책은 세 번째 책이다.
"우리는 나비의 우아함에 감탄하면서도 정작 나비가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겪는 변화의 과정은 외면한다.
나비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절망의 시간을 견뎠다.
이 기적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는 지혜롭고, 그것을 포기하는 자는 어리석다.
만물은 정적 속에서 조용하게 변화 중이다." / 10쪽
"정적은 잠잠한 호수와도 같은 마음의 상태다.
잡념으로 인해 흔들리는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고요하며 의연한 '나'로 성숙하는 시간이다.
정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려면, 그 안에 부단한 움직임을 품고 있어야 한다. 정적은 '정중동'이다." / 10쪽
#완벽
고등학교 방학때 학교에서 내준 숙제로 <갈매기의 꿈>을 읽은 적이 있다. 대체 왜 갈매기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었을까. 당시의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조나단의 심정과 작가가 갈매기 이야기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소설을 성경 속 베드로에 빗대어 설명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깊은 곳으로 가라'는 예수님의 질문을 맞닥뜨린 베드로, '완벽한 자유와 비행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조나단. 이 책은 나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베드로처럼, 조나단처럼 나의 진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심연' 속으로 들어간 적이 있는가?

사랑하는 사이일 수록 더욱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서양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personal space를 존중한다. 타인이 정해놓은 선을 넘지 않는 것. 아무리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그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그 인격을 존중하는 것, 내가 함부로 그 선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사랑과 존중의 표현인 것 같다.
평소 자기계발서나 실용 서적만 탐독했던 나에게 이렇게 추상적 의미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은 새롭다. 이것이 인문학의 맛인가보다. 인문학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바쁜 현대인들은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에 대해 생각할 여력이 없다. 외부 자극이 없는 한 스스로 인생의 의미와 인간에게 중요한 추상적 가치들에 대해 자발적으로 생각해볼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가치들은 삶에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들이다.
이 책은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해 우리가 스스로에게 꼭 반문해보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살면서 거짓이 없는, 타의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발견하고, 그 모습대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멋질까. 내가 나로 사는 삶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진짜 나'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Somebody가 되기 위해, 세상이 열광하는 무언가를 얻고, 또 세상이 부러워하는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진짜 나'의 모습은 접어둔 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매일 세상이 바라는 누군가가 되기 위해 나를 포장하기 바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저자가 던지는 심오한 질문에 대답해볼 것을 추천한다. 그 질문들에 답하며 조용히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는다면 외부에서 주는 자극이 아닌,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