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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도 심장이 있다면 - 법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
박영화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9년 8월
평점 :
판사 출신 변호사의 자전적인 에세이가 담긴 책이다. 판사와 변호사로 재직하며 다루었던 사건들을 회고하면서 법이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정의와 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인간적인 마음으로 사건들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던 저자의 심경이 담겨있다.
"나는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엔 선과 악이 공존하며, 이 중 어느 것을 더 끌어내 살아가느냐에 따라 선한 성향의 사람이 되기도, 악한 성향의 사람이 되기도 한다고 믿는다." / 13쪽
판사라는 직업은 법정에서 피고로 만난 사람에게 형량을 정하고 그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 자리다. 그렇기에 한 사건 한 사건을 온 힘을 다해, 공정하려고 애썼던 저자의 마음이 드러난다. 어찌보면 피고인들에게 형량을 판결하고 그들을 감방에 가두기도, 또 사형에 처하기도 하면서 오랜 세월 저자가 마음에 지녔던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자 쓴 글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피의자들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사형을 선고하며, 남겨진 피의자의 가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 시절 그 판결을 내렸던 자신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고 밝히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변호사는 법률적 조언과 재판을 통해 의뢰인의 고충을 해결해주는 직업이다. 하지만 문제 해결 방법이 적절한지, 더 좋은 방안은 없는지 생각해야 하고, 의뢰인의 숨은 사정도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법률적 조언 이상의 무엇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의 병든 몸뿐만 아니라 지친 마음도 함께 보듬는 의사가 좋은 의사듯, 변호사도 주어진 사건을 해결하는 것 외에 의뢰인의 무거운 마음도 잘 풀어줘야 한다. ... 변호사는 남의 고충을 머리에 이고 사는 사람이다. 의뢰인의 이익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성찰과 고뇌가 필요한 직업이다." / 28쪽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된 저자가 이혼사건 의뢰로 만난 의뢰인 중 한 사람이 저자가 사건을 거절하고 난지 한달 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당시에는 이혼의 성립 여부만을 법적으로 따져 의뢰인을 돌려보냈지만, 자신이 그때 그 사건을 받아들였다면 그 의뢰인의 운명은 달라졌을 거라며 후회하는 마음, 죄책감, 등 복잡한 심경이 들었으리라. 그러면서 판사였던 저자가 변호사의 소명에 대해서 성찰하게 되는 대목에서 의뢰인의 숨은 사정을 헤아려야 한다는 부분이 공감되었다.
단순히 법적으로 승소여부, 득과 실만을 따져 사건을 판단하고 의뢰인을 냉정하게 대할 것이 아니라 의뢰인이 처한 상황, 필요하다면 법적인 조언 이상의 도움을 제공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부분이 마음에 와닿는다.
온전히 독립적이어야 하는 기관인 재판부과 관련한 블랙리스트, 재판거래, 대법원장의 비리 등을 뉴스에서 접하며 정의와 공정을 상징하는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이 깨져버렸다. 판사도 인간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당신들도 별 수 없구나라는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뉴스에 나오는 그런 비리에 얼룩진 법조인들보다도 세상에는 분명 훌륭한 판사, 법조인들이 분명 더 많이 존재하며, 여전히 그러한 사법 시스템에 의존하는 일반 국민들은 그러한 온갖 사법부의 비리를 지켜보면서도 정의롭고 공정한 재판부에 대한 한줄기 희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저자가 판사 시절 모든 사건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던 것과 같이 법조인들에게 진실과 실체를 찾는 열정과 인류애가 담겨있다면 대한민국 사법부에도 분명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법을 존중하고 법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 법을 만고 불변의 진리로서 무조건 수호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옳지 못한 법은 고쳐야 한다. 법은 정의롭고 올바르게 사람들을 이끌고 권리를 지키는 동시에 법 자체로도 굳건히 서야 한다. 따라서 옳지 못한 법을 거부하고 비난하기보다는 합법적인 저차에 따라 정당하게 고쳐야 한다. 그래야 그 법을 모두가 인정하고 모두가 따른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법이 진짜 법이다." / 57쪽
대한민국의 모든 법조인들이 자신의 유익에 따라 사건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법 정신으로 법을 대한다면 분명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