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해롭다고 말하니 매우 과격하고 극단적인 주장알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저자에 따르면 공감에는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이 있다. 애덤 스미스가 정의하기도 하는 정서적 공감은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느끼는 것, 특히 그 사람이 느끼는 고통을 나도 느끼는 것이며, 저자는 이런 종류의 공감이 편협하고 편향되어 있다고 본다. 이런 공감은 간단한 산수조차 할 줄 몰라서, 고통을 완화하기는 커녕 고통을 야기하는 방식으로 도덕적 판단과 정책 결정을 왜곡한다고 말한다. (54쪽 참고)
반면 인지적 공감은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지, 무엇이 그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을 주는지, 어떤 상황에서 굴욕감을 느끼고 존중 받는 기분을 느끼는지 이해할 줄 아는 것, 그가 느끼는 괴로움을 나도 느껴서가 아니라, 그 괴로움을 굳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그가 고통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내가 이해하는 것"이 인지적 공감이다.
오히려 저자는 긍정적 변화를 이끌려면 타인의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인지적 공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인지적 공감이라는 것은 도덕 중립적이지만, 정서적 공감은 실제로 도덕을 좀먹는 해로운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그 이유는 "공감적 개입을 통해 약간의 만족감을 얻을지는 모르나, 이는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이 아니며, 나쁜 결정,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상대방과 조금 더 거리를 두는 연민과 친절을 토대로 한 추론과 비용, 편익 분석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 58쪽 참고
저자에 따르면 연구 결과, 공감능력과 선행은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고, 편향된 결정을 유도하고, 비이성적인 잔인함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밝힌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이런 행동들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 공감능력이 관여할 수는 있지만 공감능력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즉, 타인의 감정에 정서적으로 동요되어버리는 정서적 공감과 타인의 감정이 그럴 수 있겠다라고 머리로 이해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인지적 공감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는 왜 그렇게 공감에 반대하는 걸까? 바로 정서적 공감이라는 것이 스포트라이트처럼 어떤 사람이나 사건의 좁은 단면만을 비추면 전체를 바라볼 수 없게되고,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킬 정도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인데다, 갈대처럼 시시각각 변하기 쉬운 감정에 휘둘리게 만드는 정서적인 공감은 나에게 어떤 현상, 사건, 사람에 대해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어주기 때문에 정서적 공감이 위험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2012년도 코네티컷 주 뉴타운에 있는 초등학교 총기 난사사건으로 20명의 아이들과 6명이 살해 당했는데, 이 사건에 수 많은 사람들이 강렬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였다. 같은 해 시카고에서 훨씬 많은 수의 아이들이 살해당했지만 사람들은 그 시카고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서적 공감'의 한계를 보여준다.
실제 뉴타운에서는 이 지역이 비교적 부유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자선의 손길이 쇄도해서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많은 기부 물품과 거액의 기부금이 들어왔고, 훨씬 더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부유한 사람들에게 돈을 보내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50쪽 참고)
때로는 공감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기도 한다. 바로 나치정권 시절, 히틀러의 사상에 공감한 독일인들에 의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 그렇게 따지면 '공감'이라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저자는 제목처럼 '공감에 반대하며 Against Empathy'보다는 '공감의 오용에 반대하며 Against the Misapplication of Empathy' 또는 '공감이 전부는 아니다 Empathy is not everything', '공감에 이성을 더해야 완벽한 조화가 이뤄진다 Empathy plus reason makes a great combination' 이 저자가 주장하는 바라고 밝힌다.
즉 콜레스테롤에도 좋은 유형과 나쁜 유형이 있듯, 공감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이성과 판단을 마비시켜버리고 사고를 편협하게 만드는 '정서적 공감'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에 의해 타인의 필요를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인지적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을 구분하지 못하고 정서적 공감이 좋은 것이라 여겨 무조건 감정적으로 공감하려고 애썼던 태도를 조금 내려놓아야겠다. 상황을 개선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인지적 공감'이거늘, 나는 이 인지적 공감능력을 키워보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감정적으론 공감을 잘하나, 타인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그 타인의 필요를 시의적절하게 채울 줄 아는 '인지적 공감'능력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책은 공감이라면 무조건 좋다는 편견을 깨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공감은 절대 선이 아니다. 공감도 잘 해야 한다. 감정적인 동요가 아닌, 인지적, 이성적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과 사회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정서적 공감'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정서적 공감이라는 것이 모든 상황에서 늘 옳은 것은 아니며, 우리 안에 있는 '이성'을 가지고 상황과 사안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늘 선해보이던 공감이라는 것이 때로는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나 자신을 비롯해, 나와 관련이 있거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