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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뇌, 미래의 뇌
김대식 지음 / 해나무 / 2019년 7월
평점 :
뇌과학자 김대식 저자가 쓴 책이다. 뇌과학이란 무엇인지, 이 '뇌'의 역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1장, 2장) 그리고 이 뇌와 관련해 미래의 사회, 과학 기술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3장)를 살펴보는, 강의 형식의 문체로 쓰여진 책이다. 저자가 마치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뇌과학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듯 친절하고 쉽게 설명해준다. 요즘 트렌디한 화두, '뇌 과학'이라는 것의 개념과 그 범위, 인간의 뇌에서 부터 AI까지 포괄하는, '뇌 과학'이라는 분야의 개론 정도로 보면 되겠다.
우리 몸에서 우리를 인간되게 만드는 것이 뇌일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게 하는 이성, 감성, 사고력, 상상력, 창의력 등 무궁무진한 세계를 가능케 하는 장본인인 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있는가. 인간의 머릿 속에 들어있는, 그것도 두개골 안에 꽁꽁 감춰진 '뇌'라는 것이 인간을 보게 하고, 듣게 하고, 말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한다니 참 신기하고 놀랍다.
저자는 인간의 뇌를 보면 1.5킬로그램짜리 고깃덩어리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냥 징그럽고 혈관으로 뒤덮인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것이 우주의 원리에 대해 사유하고, 인공지능까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인류의 역사 상 이 뇌에 대해 연구한 시간도 150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뇌'가 얼마나 비밀에 둘러싸여 있는 것인가를 가늠케 한다.
@ 선 선택, 후 정당화
"우리는 선택을 먼저 하고 나서 그걸 보고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지도 모른다. 로저 스페리는 '뇌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기계가 아니고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기계'라고 했다. (125쪽)
자기 정당화는 왜 할까? 우리는 다양한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로저 스페리 이론의 핵심은 이런 결정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택하는 행위 하나하나는 그 주변에 있는 수백 가지 요소들이 얽히고 설켜서 이뤄지지만, 개별 선택 사이에는 아무 인과관계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선택을 하고, 그 다음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함으로써 자기 인생에서 벌어진 선택들을 서로 연결시킬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이 마구잡이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인생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고, 그 선이 자기 자아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아라는 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에 남아있는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합리화해서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것인양 선을 그어 연결할 뿐이라는 야기다. 자기 자신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여려명이다. 현재의 자신과 20년 전의 자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이 선을 계속 그어 점과 점을 연결함으로써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일종의 착시 현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129쪽)
자아라는 개념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 대한 정당화, 그리고 그것들의 연결을 통해 이루어진 해석에 불과하다고 본다. 뇌과학에서는 '자아'라는 심리학적인 측면의 개념을 부인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가 '자아', 'ego'라고 부르며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만나기를 그토록 원했던 것이 단순히 우리의 뇌가 스스로 합리화해서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니 허무하기도 하다.
저자는 그만큼 인간은 정당화의 동물이고, 합리화를 통해 인류가 생존해오지 않았나,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라는 점을 말하고싶었던 것 같다. 자아라는 개념을 부인하는 뇌과학을 바라보는 심리학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다.
@ 기억과 자아의 흔적
로저 스페리는 "자아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나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해서 내 인생이 일치된 것처럼 보이려고 만들어낸 것이라고, 결국 나라는 존재는 일치화된 기억이다. 왜냐? 현실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은 모든 선택 사이가 연결되지 않았는데 기억에만 연결된 걸로 남아 있다. (163쪽)
시간적인 자극과 자극간의 상호 관계가 반복되면 시냅스가 강해져, 한 가지 자극만 들어와도 나머지 자극에 대한 반응이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해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뇌 안에 있는 모든 정보는 시냅스와 시냅스가 강화된 상태로 연결되어 있다. 이게 기억이다. 기억은 하드디스크 어딘가에 쓰여있는 게 아니다. 정보를 접할 때 대개 여러 정보가 동시에 들어온다. 누구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 그 사람의 얼굴 등 시각정보와 목소리 청각 정보가 비슷한 시간에 들어온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해마에 입력되면, 나중에는 그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얼굴이 떠오른다. (171쪽)
그래서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은 이미 존재하는 정보에 새 정보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시냅스를 강화시켜주면 된다. 우리나라처럼 주입식 교육을 계속 반복하면 그 지식은 외딴섬 신세가된다. 연결이 안 돼 있으면 해당 정보가 어딘가에 존재는 하지만 다시 찾기가 힘들다. 학습에서 중요한 요소는 뇌에 입력된 정보를 얼마나 잘 끄집어내느냐이다. 잘 꺼내야 배운 내용을 활용할 수 있다. 학습의 정석은 존재하는 정보들 간의 연결성을 많이 만들어놓는 것이다. (173쪽)
A라는 사실을 'A, A, A, ... ' 하고 100번 공부하면 나중에 찾지 못한다. 그런데 'A라는 사실은 B하고 이렇게 연결이 되고, B는 알고보니 C고, C를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데 종교적으로 보면 이렇고, 물리적으로는 이렇고 진화적으로는 이렇다'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생각하면서 그 범위를 점점 넓혀가면 모두 다 연결이 된다. 그렇게 되면 관련 정보와 지식이 조합돼서 훨씬 더 고차원적인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173쪽)
그래서 어떠한 개념을 공부할 때 무조건 암기하는 방법보다, 그 개념을 둘러싼 배경을 공부하고, 그 개념에 대해 발전된 또 다른 사실, 관련된 다른 개념들을 함께 공부하는 것이 훨씬 기억에 남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뇌과학에서도 시냅스와 시냅스가 서로 연결되어 강화되는 현상이라고 하니,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공부법인 셈이다.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아'라는 개념을 뇌과학에서는 단순히 인간이 자신의 선택을 연결하여 해석한 자신의 모습에 불과하다고 보는 점이 새롭다. 개인적으로 심리학 책을 훨씬 더 많이 접해서인지, 단순히 '자아'를 부인한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자아'라는 개념이 개인의 과거 선택과 기억들, 연결성이 전혀 없는 것들을 개인적인 관점에서 연결짓고 주관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어쨌건 그 과거의 기억들의 연결을 통해 형성된 것도 '나'의 일부이며, 나만이 겪은 과거의 사실이며, 그 과거의 사실로 인해 형성된 나의 모습, 즉 '자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과학이 심리학보다도 더 정확하고 고도로 발달된 학문이라 할지라도, 심리학적 측면과 뇌과학 적 측면은 엄연히 분야가 다르기에 과학만, 육안으로, 일련의 공식으로 증명된 사실만이 정답이라고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똑같은 현상도 뇌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느냐,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뇌과학이 더 정확하고, 다른 학문은 더 열등하다, 혹은 덜 정확하다'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될것 같다. 뇌과학만이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뇌과학이 증명할 수 없는, 과학적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부분도 있게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다소 어렵다고 느껴졌던 뇌과학이라는 분야가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뇌과학이 인류의 미래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 분야라는 점을 배울 수 있어 매우 유익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