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소담 클래식 3
제인 오스틴 지음, 임병윤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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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직하자마자 다다다 쏘아대는 대화들은 제인 오스틴 문학의 특징이던가. 한 편의 연극의 시작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베넷 씨와 베넷 부인이 동네에 새로 이사온 사람 이야기를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똑같나 보다. 자기네들끼리 그 사람이 어떻니 저떻니 하는 거 말이다. 하기야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베넷 부인은 딸이 자그마치 다섯이나 되고 큰 딸은 그때 당시로 말하자면 결혼정년기니 만큼 빨리 짝을 지워서 보내야 한다는 무슨 투철한 사명의식이라고 가진 것 같다. 더구나 새로 이사온 사람이 재산이 상당한 청년이라면 더욱더 눈에 불을 켜고 혹시나 우리 딸들 중 하나가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엄마의 임무던가. 그렇게 베넷 가문과 빙리 씨의 첫만남이 이루어진다.

사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만남이 어떠했는지 너무나도 많은 다른 작품이나 영화 속에서 접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 작품을 안다고 생각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면을 주는 걸 보니 필시 이 작품을 읽은 것이 아닌 여러 동영상 들에서 이야기의 줄거리만 파악하고 있었나보다. 그들의 첫인상은 썩 좋지 못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원제목이 '첫인상'이었나보다. 이후에 차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가 서로의 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는 얼굴도 보지 않고 중매로 결혼을 많이 하곤 했었다. 조선시대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시대에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이야기 속에서도 결혼에 관한 굉장히 빠른 결정이 이루어진다. 특히 베넷 씨네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재산이 콜린스에게 넘어가고 그는 그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이 다섯 딸 중 하나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참 결혼도 쉽게 한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결혼을 해서 잘 살려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의 계획은 또 다른 길로 방향을 틀어버리지만 말이다.

첫만남이 괜찮다고 여겼던 빙리 씨와 제인 의 관계도 후딱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들의 관계를 방해하는 인물들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있다면 어떤 방해가 있다 하더라도 나중에라도 만나게 되는 것이 인연일까. 그렇다면 그들의 관계는 인연일까. 여기저기서 뚝딱 등장을 했던 인물들이 베넷 씨의 딸들과 이리저리 맞춰지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들의 뒤에는 물론 방해를 하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일일 드라마를 보듯이 말이다. 면전에 대고 돈봉투를 내밀지 않는 게 다른 점이랄까.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사라니.

고전인만큼 지금과 다른 면도 눈에 보인다. 가령 여자가 정조를 잃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관념이다. 설마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없을테지만 그때는 서양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순결이라던가 하는 집착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본문 속에서 남자들은 ~씨라고 표현하며 여자들은 이름으로만 표현되는 것도 조금은 눈에 거슬렸는데 아마도 원작에서 미스터라는 인칭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만 하더라도 작가의 생각이나 그때 당시의 사상에 대해서 엿볼 수가 있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제목답게 이 책에는 오만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많이 나온다. 특히 다아시의 성격을 설명할 때 반복해서 쓰이기도 하는데 영어로 프라이드라는 단어로 번역되는 오만. 사실 프라이드는 자존심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굳이 오만이라는 뜻으로 번역하지 않아도 되었겠지만 그의 캐릭터를 설명할 때 딱 맞는 표현이 오만이기도 때문에 아마 자존심으로 번역했다면 전혀 다른 느낌의 다아시가 나왔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왜 그리도 다아시를 오만하게 본 것일까. 청혼을 거절하며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게 따박따박 대꾸하는 문장을 읽을 때면 너무 서슬이 퍼런 것 같아 그러지 말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후회하는 리즈. 말은 한번 뱉으면 끝이니까 언제든지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랄까. 그녀 또한 다아시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나 할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모두가 다 해피했어요 라고 끝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어디서 언결이 될지 모르기에 다른 것을 기대하게 만들며 더욱 재미나게 빠져드는 로맨스 소설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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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시간 2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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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술을 마시고 가정폭력을 휘두른 보안관보를 죽인 의붓아들이라기 보다는 여자친구의 아들. 그 아들을 어떻게 구해내는가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렇다. 이것은 변호사 제이크 시리즈다. 이 이야기는 9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리즈의 특성 중에 가장 큰 하나는 배심원 선정 작업일 것이다. 지금도 이런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화이트 보드와 카드를 준비해놓고 모든 배심원들의 이름과 나이 저들의 특이사항을 외우고 또 외운다. 어떤 사람이 선택이 될 지 모르니 그 사람에 대해서 자신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재봐야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아무래도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핵심사항은 [타임 투 킬]에서 워낙 자세히 나와 있어서 그런지 여기서는 대략적인 것만 훑고 넘어가고 있다. [타임 투 킬]에서는 인종간의 차이도 있어서 배심원 선정이 더 치열했던 것 같다. 그나마 이번은 백인들 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십대 소년의 범죄라서 제이크 쪽에서는 아무래도 에프 성향의 감성적인 사람을 배심원으로 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이전에 재판지 변경도 이루어진다. 아무래도 자신의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다들 저마다 이야기들을 하면서 자신이 이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렸기 십상이다. 이미 편견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런 현상을 피하고자 제이크는 그나마 이 사건이 덜 알려진 다른 동네로 재판지를 변경하고자 했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는 아니었지만 그것까지도 이뤄냈다. 단 여전한 자금 부족은 문제였는데 집을 담보로 돈을 구하려던 계획은 루시엔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그 집은 나중에 다른 곳에서 유용하게 사용된다. 제이크는 대출을 다 갚고 집을 되찾았을까.

제이크의 홀로 각개격투가 아니라 루시엔과 포샤 등 그를 도와주는 어벤저스가 이번에도 뭉친다. 전작의 칼 리도 중요한 역할을 한 자리 차지했다. 솔직히 뒤로 갈수록 좀 쫄렸다고나 할까. 혹시라도 드루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면 어떡하지 하고 말이다. 사건이 일어나고 검사는 범인을 기소하고 변호사는 범인을 변호한다. 판사는 결론을 내리지만 사실 이 결론을 내리는 것은 배심원이 할 일이다. 결국 검사와 변호사는 얼마나 증거를 더 잘 모으고 증인을 더 잘 준비하고 그들을 설득할 말빨을 가지고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무죄추정의 법칙이 있다. 유죄라고 확실히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범인은 무죄라는 것이다. 능력 좋은 변호사로 인해서 정말 나쁜 범죄자가 법의 허점을 이용해 교묘히 빠져나가는 것은 정말 막아야 하겠지만 이렇게 조금은 참작이 되어져야 할 가해자들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변호사를 구하지 못하고 무언가 어떻게 해 볼 여지도 없이 그대로 감옥에 갇히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내가 사형찬성주의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 배심원 제도가 없어서-국민참여재판이라고 있긴 하다만- 다행이랄까. 내가 배심원으로 선정된다면 그 스트레스는 말도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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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시간 1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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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가 술에 취해서 자는 사이에 그의 머리에 대고 총을 쏴서 죽였다. 경찰이라는 조직은 끈끈하다. 연합이 단단하다는 소리다. 보안관보였던 그의 죽음은 경찰 관계자들에게 똘똘 뭉칠 기회를 주었고 그들은 범인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럴 이유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맞고. 하지만 여기에 몇가지 요소를 더 추가해버리면 과연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첫번째는 보안관보가 겉으로는 멀쩡해보이고 이웃 사람들이나 일에 관해서는 더할 나위없이 괜찮은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같이 살고 있던 가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개자식이었다는 소리다. 첵표지에는 의붓아버지라는 단어를 쓰기는 했지만 실제로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침실이 남았던 그의 집에 여자가 그것도 자신의 자식을 둘이나 데리고 들어왔던 거였다. 처음에는 여자가 있으니 좋았을 수도 있지만 아이들까지 있으니 신경이 쓰였던 것일까. 그는 여자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폭력을 휘둘렀다. 사실 그렇게 드러내놓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는 술도, 도박도 문제였던 사람이었다. 동료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술집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저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를 감싸주는 바람에 상부에 보고만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것이 잘못이었다.

두번째는 범인이 십대라는 점이다. 심실상실의 상태인 술에 취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정상참작이 될 리는 없다. 하지만 상대방이 지속적으로 피해자의 폭력에 시달리는 상태였고 그날도 피해자가 엄마를 때리고 있는 걸 들은 상황에서 자신과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했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이 너무 극단적인 방법이라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뿐이긴 하지만 피해자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아이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상태로 또 그렇게 지나가버렸을 수도 있다.

변호사 제이크 마지막 법정 드라마다. 2권에 나오는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자신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같은 배경으로 쓰여졌다. 그래서일까 다른 작품에서 분명 이와 같은 사람들을 본 것 같다는 기시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는 만큼 이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타임투킬]에서 말도 안되는 변호를 이루어 냈던 제이크는 여전히 자신이 구해낸 가족과 잘 지내고 있다. 이번에는 그런 흑백대결이 아니다. 여기 나오는 가해자와 피해자는 모두 백인이다. 그것보다는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일 것이다. 당하기만 했던 사람이 들고 일어나면 더 무섭다고 했던가. 제이크도 처음에는 이 사건을 맡지 않으려고 했다. 그에게는 더 큰 사건이 있었다. 기차충돌 사건이다. 반드시 승소를 해서 가족도 구하고 자신도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고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서 그 사건 또한 좌초될 위험에 놓였다. 단지 판사의 요청에 의해서 며칠만 봐주려고 했던 제이크는 범인의 변호사가 되어 버리고 막막한 이 가족에게 한줄기 희망이 되어 준다.

범인인 드루의 엄마인 조시가 가장 이해하기 힘들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서 키워야만 했던 그녀의 인생 또한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피해자이면서도 자시의 아이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보호를 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자신의 아들이 총을 쏘고 사람을 죽였는데도 자신의 아들은 당연히 나와야 한다는 듯이 그곳에 있으면 안되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아무리 편을 들어 주고 싶어도 사람을 죽이면 감옥에 가는 거라고 이 여자야 하고 말을 해주고 싶다. 그녀가 진작에 무슨 행동을 했다면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 가족에게 쏠리는 피해자 가족의 원망은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어느쪽 편도 정확히 들어줄 수 없음으로 인해서 저울의 추가 왔다갔다 기울고 있다. 제이크는 어디서 이 사건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찾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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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장 - 개정판
아거 지음 / KONG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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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으로 책을 내는 작가의 이름을 볼 때면 생각한다. 여자일까 남자일까. 그것이 책의 내용과 크게 관련이 없긴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조금은 더 감정이입을 하면서 작가의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글을 썼을까를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뉘앙스로만 보면 남자 같긴 한데 비천무의 문장을 보는 순간 여자인가 라는 생각을 했고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란 책제목을 보는 순간 아거 작가는 여자라는 확신을 했었다. 그러다가 좋은 아빠와 좋은 남편이라는 글자에 응? 하면서 다시 보았다. 나만의 편견이란. 남자라고 꼭 그 책들을 읽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여자라고 꼭 그 책들을 읽으라는 법은 없는데 말이다. 나만 하더라도 비천무는 책이 나오고 아주 오랜 후에 읽었고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같은 책을 세월을 두고 다시 읽어본 사람은 안다.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나이에 따라서 자신의 삶에 따라서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는지를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상실의 시대]가 그러했고 [반짝반짝 빛나는]이 그러했다. 이십대의 그리고 삼십대의 느낌이 너무나도 달랐다. 어디 책만 그럴까. 음악도 마찬가지다. 같은 음악이라 하더라도 세월의 무게가 쌓인 후에 듣는 음악은 다르게 느껴진다. 너무나도 당연한 걸까. 내가 이 책을 두고 몇 년이 지난 후 읽는다면 여기 나온 문장들 중에서 다르게 느껴지는 문장이 분명 있으리라.

여러 책 중에서 작가가 탐했던 문장들에 관한 기록이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감상들이 아니 들어갈 수가 없겠다. 내가 읽었던 책이라면 이런 문장에서 작가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면서 공감하기도 또는 나는 다른 문장에서 이런 생각을 했는데 라면서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읽었던 책이라 유난히 반갑기도 하다. 여기에서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요네스뵈이 [데빌스 스타]라는 책을 봤을 때 더욱 그러했다.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7년의 밤]이 그러하다. 내가 읽어보지 않았던 책이라면 이 한 문장에 꽂혀서 전체의 책을 읽어보고 싶게 되기도 한다. 몇몇 책들은 읽어볼 책 리스트에 적어 두었다. 윤대녕 작가의 책이 그러하다.

솔직히 조금은 감성적인 부분도 두드러지게 느껴져서 나처럼 감성이 조금 메마른 사람들은 동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헤어진 사람아 부디 잘 살아다오 라는 문장이 그러하다. 지금은 조금 덜 하다고 느끼지만 -아니 그럴 수도 있다 - 예전의 나는 칼 같았다. 나에게 맞지 않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더이상 만나기 싫은 사람이라면 칼 같이 선을 그어 잘라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헤어진 사람이라고 별다르랴. 그쪽이 잘 살던지 말던지 그건 내 알바 아닌 걸. 그래서 이 문장이 나오는 책의 전부를 읽어보고 싶어진 것이다.

작가는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다른 글이긴 하지만 나 또한 잊지 않기 위해 포스팅을 하고 있다. 내가 읽었던 책들을 잊지 않기 위해.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나는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같은 목적 다른 글인 셈이다. 아니 같은 글이지만 공개적이냐 사적이냐가 다른 점이려나. 이런 식의 다이제스트 형식의 글들은 책의 가지를 치는데 적당하다. 쳐 내는 것이 아니라 넓혀나가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읽고 싶은 책들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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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진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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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무라 겐키 작가 특유의 고유성을 아낌없이 발휘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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