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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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 부동명왕, 단단인형, 자재의 붓, 바늘비가 내리는 마을까지 짧은 설명을 한 편집자 후기를 먼저 읽고 이 책이 단순히 관련 없는 네 편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서장에서는 흑백의 방이 생기고 오치카에 이어 도미지로에 이르기까지 간단한 역사를 설명해준다. 그렇다. 이것은 두번째 청자를 맡은 도미지로가 들은 이야기들이다. 전하는 사람은 각각 다를지라도 말이다. 이번에는 어떤 기이한 이야기들이 있을까.

본가인 미시마야로 돌아온 첫째 이이치로. 둘째였던 도미지로는 가업을 물려받지 않아도 되니 조금은 마음 편한 상태랄까. 이이치로의 이야기가 전에 나온 적이 있었었나. 없었다면 나중에 한번 다루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형한테 잡혀서 모델을 하고 있던 도미지로는 스님을 한 분 보게 된다. 오치카도 알고 있던 교넨보님이다. 그 승려의 소개로 흑백의 찾아온 손님의 이야기가 바로 표제작인 <청과 부동명왕>이다. 밭에서 찾아낸 부동명왕을 닮은 우린보 님을 업고 온 이네. 그녀가 사는 곳은 동천암이다. 온갖 일을 겪은 여자들이 모여 사는 곳. 별별 일이 다 있어서 지금으로 말하자면 여성들을 위한 쉼터라고 생각하면 될까. 답답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 오나쓰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면서 그 당시 여자들을 향한 사회적인 편견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편집자 후기에 굉장히 무섭다고 미리 공표한 두번째 이야기는 그렇게 막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는 아니라고 느겼다. 분명 다른 누군가는 또 다들게 느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오치카는 고우메를 무사히 낳았고 흑백의 방에서 괴담 이야기를 듣는 일은 재개되었다. 이번엔 온 손님은 이이치로가 몸 담고 있었던 히사야의 단골손님으로 도미지로하고 비슷한 또래여서 그런지 그들은 말을 놓으면서 편하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들었다는 이야기. 좋은 다이칸이 있었지만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마을이 쑥대밭이 된 이야기는 어떠게 보면 악독한 지도자가 나타났을 때 지금도 일어날 수 있는 일 같아서 그런 현실성이 무섭기도 하다. 사람들을 가차없이 처단하는 장면은 무섭다기보단 저렇게 행하는 나쁜 넘에게 대적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이해되어 화가 났고 나중에 단단인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가능성 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더라도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그런 말처럼 어쩌면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장 짧은 이야기인 <자재의 붓>은 한 화공의 붓에 관한 이야기인제 도미지로는 이것은 그림으로 남기면서 더이상은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결심을 해버린다. 그림과 도미지로는 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는 어떤 식으로 흑백의 방의 이야기를 듣고 잊을까. 마지막 이야기인 <바늘비가 내리는 마을>은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오래 남고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모두가 나들이를 가고 부상으로 혼자 남은 도미지로는 찾아온 오른팔이 없는 한 사람. 화공을 동경했다는 그는 자신이 버려진 아이였다고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그가 살았다는 그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바늘비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가장 마지막에 알고 나니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그 마을이 다시 보이게 된다. 괜히 이름을 바늘이라고 붙여 놓은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 수 아니 두 수 앞을 내다 보닌 작가의 센스에 감탄하게 된다.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네 편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띠고 있어서 여러가지 맛이 한 박스에 담긴 도넛 세트처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오치카는 아이를 낳았고 이이치로는 돌아왔고 그림을 그리지 않겠노라고 생각한 도미지로는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흑백의 방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편집자 후기에는 다섯가지 호러의 효력이 나온다. 왜 소설을 읽는지 왜 호러를 읽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아마도 가장 적확한 설명을 해주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장르 소설을 좋아하고 오늘도 호러를 읽는다. 그리고 또 새로운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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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건 죽음
앤서니 호로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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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아 확실히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말이다. 어떻게 보면 클래식한 매력을 뽐내면서도 어떻게 보면 정통 추리같은 느낌을 주며 그 속에 긴장감은 물론이거니와 한번 꼬아주는 센스까지 겸비한 호로위츠의 작품이 왜 인기가 있는지 확실히 증명되었다. 사실 이 작가와의 첫작품은 아니다. 앤터니 호로비츠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셜록홈즈 모리어티의 죽음]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도 역시라는 생각을 가졌던 작가였는데 그 작품보다는 전직형사 호손과 작가 호로위츠의 콤비가 돋보이는 이 시리즈가 더 매력적이다. [중요한 건 살인]이라는 작품이 나와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찾아서 읽어볼 참이다. 본문 속에서도 이 작품은 언급된다.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이혼 전문 변호사가 죽은 채로 발견이 되고 호손은 경찰을 도와서 범인을 찾는 일을 하게 된다. 호손이 하는 일을 그대로 책으로 쓰겠다는 계약을 한 호로위츠는 그를 쫓아다니면서 나름대로 자신만의 범인을 찾기에 이른다. 마지막에 그가 멋지게 등장을 해서 범인은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설명을 하지만 그것이 다 맞다고 인정을 했던 호손은 그게 아니라며 자신이 진범을 밝힌다. 사실 나도 범인을 찾지는 못했고 하지만 호로위츠가 생각한 범인과도 달랐다. 같은 증거를 가지고도 다들 다른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이 사건 현장에는 어떻게 보면 가장 특징적인 증거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벽에 페인트로 쓰여진 숫자다. 182라는 숫자가 나타내는 것은 무엇일까. 범인이 남긴 것이라면 왜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한 것인지가 궁금해지고 만약 이것이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라면 범인을 가르키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머리를 얻어맞고 찔려 죽은 피해자가 이것을 쓸 정도의 여력은 없었던 것 같고 그렇다면 결국 범인이 쓴 것이라는 게 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사실 무지 중요한 힌트같지만 알고나면 조금은 허무해서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달까.

가장 최근에 소송을 합의로 이끌었던 의뢰인과 그의 전 부인 그리고 출판사 사람. 변호사의 남편 그리고 변호사와 친했던 친구들의 부인 등 호로비츠가 생각한 용의자들을 대상으로 누가 범인일지 보여지는 증거를 가지고 짜맞춰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일 것이다. 홈즈를 능가하는 실력을 가진 호손과 호로위츠의 조합을 보는 것도 흥미롭고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도 전혀 지루함 없이 흘러간다. 작가인 호로위츠가 중간중간 글을 쓰고 드라마 대본을 쓰는 것도 흥미를 돋우는 하나의 장치다. 단 아주 밉상인 저 담당 수사관이 눈에 거슬린단 말이지. 그나저나 세 권을 계약했다고 했으니 다음 권까지는 호로위츠와 호손의 결합을 볼 수 있을 듯 하다.

원제인 The sentence is death는 번역하면 판결은 죽음이라는 소리인데 결국 죽음으로 심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원제보다도 번역을 한 제목이 훨씬 더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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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 무덤에서 돌아온 여자 아르테 미스터리 23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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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누구냐는 것이었다. 대체 이런 몰상식한 일을 저질러서 한 여자의 인생을 십년이나 숭덩 잘라먹은 이 나쁜 놈이 누구냐는 것.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이슈였다. 그래서 나오는 등장인물들마다 다 의심을 해가며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어찌 보면 당사자인 헤더보다도 내가 더 열심히 찾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어느 정도 대충 그 언저리까지는 갔으나 완벽하게 맞추지는 못했다. 어떻게 보면 뒤통수를 맞은 것일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느낄진대 헤더는 오죽했을까. 정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건가 보다.

헤더는 이제 막 출소했다. 가석방이다. 죄명은 살인이었다. 그것도 남편을 죽인 여자. 자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절대 자신이 리엄을 죽였을 리 없다고 그렇게 주장을 했지만 모든 증거는 다 그녀를 가리키고 있었고 심신미약을 주장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남편을 죽인 여자가 되어 감방으로 보내져 버렸다. 아직 다섯 살도 되지 않은 아이 둘을 남겨 놓은 채로 말이다. 그녀는 술을 마셨고 약을 먹었다. 주말이면 으례히 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날은 리엄과 다투기는 했었지만 말이다.

조금 말다툼을 했던 남편이 자고 난 바로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하원의원인 남편이었다. 일이 많아서 자신을 도와주지도 못하는 그런 남편이었다. 헤더도 아이만 보는 전업주부는 아니었다. 일을 했고 아이를 돌봐야했고 거기다 강아지까지 키우고 있었으니 그 일이 오죽 많았으랴 싶다. 일에 치였을 수도 있다. 물론 다툰 원인이 그것이 아니겠지만.

남자와 여자 간에 크게 다른 점은 없겠지만 칼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상당한 무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인간의 몸은 뼈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그렇게 아무데나 찌른다고 쉽게 죽지는 않는다. 약도 아니고 질식사도 아닌 흉기로 죽은 리엄을 보면서 경찰들은 왜 한번이라도 의심을 해보지 않았을까. 그녀가 그렇게 주장을 하는데 왜 재고할 생각을 안 했을까. 어찌 보면 그들도 일종의 공범일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결과로 인해서 형을 사는 원죄의 개념은 나라를 막론하고 어디나 존재하는가 보다.

이제 출소한 헤더는 자신이 직접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하게 된다. 자신은 분명 아니니 말이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누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자신의 편을 들어줄 자신만의 팀을 만든다. 누가 가석방한 죄수의 말을 들어주겠는가. 누가 무고하다고 인정해주겠는가. 그러니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야 할 밖에. 그 중심에 보호관찰 호스텔에서 만난 조디가 있고 의심스럽다는 기사를 쓴 오언이 있고 아이들의 고모인 에이미가 있다. 이 드림팀은 헤더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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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고 어른이 되는 법
강지영 지음 / 북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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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의 소설은 왠지 모르게 온다 리쿠의 느낌이다. 내게는 그러하다. 무언가 명확히 구분지어지지 않고 모호하고 몽롱한 느낌이랄가. 작가의 책의 이야기들이 그런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순전히 내 느낌일뿐이다. 작가의 소설이 온다 리쿠처럼 판타지적인 느낌은 전혀 없으니 말이다. 나는 온다 리쿠가 싫은데 하면서 작가의 책까지 미뤄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야기들은 충분히 흥미로우므로 말이다.

몇 권의 책을 간헐적으로 읽었지만 강지영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았던 것은 북카페의 같이 읽는 모임을 통해서였다. 한 작가의 책을 여러권 몇달에 걸쳐서 읽어가는 일명 '스토킹'을 통해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을 수 있었고 그렇게 강지영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어떤지를 느꼈다. 정말 말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같이 읽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간혹 신작 소개코너에서 작가의 이름을 봤을뿐 그 책들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들이 식사할 시간], [살인자의 쇼핑몰], [하품은 맛있다]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다양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 작품은 또 다른 매력을 준다. 한 아이의 일곱번의 출생. 그걸 환생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부활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아이는 같은 부모 밑에서 똑같은 조건 하에서 계속 다시 태어나고 있으므로 말이다. 다만 자신이 죽을 것을 알기에 매번 그 단계를 넘어가며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마치 게임에서 다음 판을 넘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게임에서 주인공이 죽고 새로 시작하면 그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기 때문에 전 판 보다는 확실히 쉽게 대처하고 다은 판을 준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기함을 할 노릇이다. 아이가 조금씩 커서 말을 배우고 해야 하는데 말을 하자마자 유창하게 마구 말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 수 있으니 미리 준비를 하라고 한다면 어떤 부모가 놀라지 않을까. 당연히 부모는 아이를 정신병원에 데려가고 상담소를 데려가고 호들갑을 떨게 마련이다. 그렇게 재이라는 아이는 정소영이라는 심리상담사를 만나게 된다. 누가 알았겠는가. 그 둘이 어떤 관계로 엮였는지 말이다.재이가 한번씩 죽었다 다시 태어날 때마다 소영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알았다면 그랬다면 재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니 그들은 알았고 대비를 했다. 그런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또는 사람들이 불쑥불쑥 나타나서 재이의 평온한 그냥 삶을 자꾸 방해한다. 이 부활이 환생이 의미하는 바는 대체 뭘까. 징따징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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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정에 결혼했다 Endless 2
한지수 지음 / &(앤드)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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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단편이란 것을 알고 한 두편만 보고 자려고 했었다. 짧게 끊어지는 이야기의 장점이다. 처음 읽는 작가의 책이다. 맛보기로 처음 이야기인 <미란다 원칙>을 읽어본다. 사회복지사인 한 남자의 이야기.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모시는 한 남자가 있다. 무슨 관계일까. 자신이 알고 있던 혈액형이 갑자기 바뀐 이야기하며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앞에 나온 그 남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말에 머리속에 있던 징이 징~하고 얻어맞은 느낌이 든다. 이거 분명 미스터리 아니었는데 그냥 한국 단편 문학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처음부터 좋은 맛을 느끼며 시작한 이야기는 이 책에 실린 이야기 중 가장 긴 <천사들의 도시>까지 읽어버리게 만들었다. 물론 그 전에 책을 덮었으나 잠이 오지 않아 다시 펴고 읽은 이유도 있다. 그 이후 결국 새벽까지 이 모든 이야기를 읽고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마 이야기가 재미가 없었다면 진작 졸려서 잠이 들지 않았을까. 나의 불면증을 유지시키는데 도움이 된 책이기도 하다.

천사들의 도시는 필리핀의 한 도시가 배경이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미국의 엘에이가 배경인줄 넘겨 짚었다. 처음에 필리핀이라고 떡하니 적혀 있는데도 말이다. 중고차 판매장을 운영하는 한 남자.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이민비자를 받지 못했다. 서류를 벌써 다 내놨는데 그들의 처리가 늦은 것이 그 이유이다. 그렇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놈의 돈 때문이다. 늦으면 늦을수록 계속 오래동안 이른바 떡값을 받아 챙길 수 있으니 말이다. 답답한 것은 그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하니 그러려니 한다. 이 역시도 처음 이야기처럼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결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단편을 별로라 하는 것은 짧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들을 욱여 넣느라 이야기가 조금은 추상적이고 뜬금없이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면서 또 뭐 그리 어려운 말들을 주워 섬겼는지 내가 문해력이 달리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고 무엇보다 오픈된 결말이 많았다. 하지만 작가 한지수의 이야기는 달랐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결말을 투척함으로 인해서 단편 속에서 반전을 던져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학성을 분명 내포하고 있는 문장들이건만 난해하지 않고 이 문장을 어디선가 꼭 써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문장들이다. 그래서 읽는 재미를 더하고 속도를 붙인다.

<배꼽의 기원>도 나름 특이한데 여자의 자궁이 주인공이 되어 그 몸의 주인을 당신이라고 칭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여자들은 더욱 공감할 이야기이지만 남자들에게는 약간 결을 달리 하는 이야기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궁이라는 장기가 여자의 몸에만 달려 있는 것이다 보니 더욱 그러한 느낌을 준다. 약간은 공상적인 마인드로 읽어주면 되지 않을까.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된 일화가 있다. 공부를 많이 했다는데 그런 티가 전반적으로 보인다.

모텔의 한 방을 오전과 오후로 나눠쓰는 이야기를 그린 <이불 개는 남자>라는 작품 또한 특이했다. 일단은 이런 식으로 방 하나를 나눠쓴다는 이야기도 신선했다. 실제로도 잠만 잘 사람 구합니다라고 쓰인 광고문을 보기도 했으니 그런가보다 했지만 그렇게 낮에는 노는 방을 이용해서 또 손님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젼혀 하지 못했다. 실제로도이런 일이 있으려나. 사실 이런 설정이라면 약간은 로맨스 쪽으로 흐를 수도 있지만 작가는 그런 진부함을 떨쳐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여자가 메모를 남긴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그에 대해 답은 없지만 그대로 행하는 남자도 참 괜찮아보였다. 이 이야기의 후속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페르마타>는 읽기가 힘들었다. 문장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그 배경이 되는 치과가 싫어서였다. 거기다 뭘 그리 자세하기도 설명을 해 놓으셨는지 당연히 치과의사가 하는 일을 묘사했을 뿐인데도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면서 내가 치과에 있는 느낌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능력이다. 독자로 하여금 저절로 그 배경이 되는 곳에 있게 만드는. 마지막 이야기이자 표제작인 <나는, 자정에 결혼했다>라는 작품은 어떻게 보면 가장 마지막이라서 많이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단편의 특징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앞서 말한 그런 특징들 말이다.

그림을 보고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조그마한 얌체공처럼 어디로 튈지 몰랐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빠져 있을 때 쓴 글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림 이야기가 참으로 많이 나온다. 나는 내가 전에 읽었던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이라는 작품을 생각했다. 그 작품도 참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 이야기는 이 책의 다른 이야기와는 조금은 다르다고 느껴졌다. 마지막 결말까지도 그랬다. 만약 이 이야기가 제일 앞에 나왔다면 나는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인상이 지금과도 또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편집의 힘이다. 단편이지만 엄청난 몰입을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주는 책 한권이다. 엔드리스 시리즈 2권인 이 책은 끝이 없다는 그 단어의 뜻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듯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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