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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 ㅣ 대한민국 스토리DNA 13
채만식 지음 / 새움 / 2016년 12월
평점 :
채만식. 이광수의 추천으로 단편으로 등단하여 [레디메이드 인생], [탁류], [태평천하]로 유명한 작가이다. 국어시간에 시험에 잘 나오지 않으면 이전 소설가들은 그저 이름도 모른채 묻어버리고 넘어가기 일쑤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 당시 시대상과 더불어 한 가족들을 통해서 벌어지는 사회상까지도 짐작할 수가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채만식
- 직업
- 소설가
- 출생
- 1902.06.17. (전라북도 군산)
- 데뷔
- 1925년 단편소설 '새 길로'
- 학력
- 와세다대학교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을 연상케 한다. 인력거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은 아침부터 운이 좋았다. 손님도 딱딱 맞춰 태우는가하면 돈도 많이 벌었던 그런 날이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보니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져 있다. 그에게 과연 그 날은 운수좋은 날이었을까.
[태평천하]라는 제목과 걸맞지 않게 이 책도 비슷한 결말을 보이고 있다. 이 '태평천하'에 만석꾼의 아들이 부랑배당에 들어가 경찰에 잡혀 들어갔다니 이 만석꾼의 집은 동네 떠나가랄듯 울어제낀다. 태평쳔하라는 제목과 상반되는 엔딩인 셈이다.
이야기는 제 삼자의 입장에서 전개되어진다. 누군가 변사가 따로 있어서 이 사람은 어떻고 저 사람은 어떻고 하면서 이야기를 해주는 그런 방식이다. 요즘의 이야기 전개와는 사뭇 달라서 처음에는 조금 낯설 수 있겠지만 한번 동화되고 나면 절로 얼쑤 소리를 내면서 그 장단에 같이 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전체가 전부 사투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는 요즘 사람들로써는 읽기 힘듦을 더 토로할수도 있겠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굵직한 사투리를 들어보겠냐라는 생각으로 한글자씩 따라 읽다보면 또 어느샌가 그 지방에 직접 가 있는 듯이 현장성도 느낄 수 있게 된다.
맨 웃어른 되는 윤직원 영감이 그렇게 싸움을 줄창치듯 하는가 하면, 일변 경손이는 태식이와 싸움을 합니다. 서울아씨는 올케 고씨와 사움을 하고, 친정 조카며느리들과 싸움을 하고, 경손이와 싸움을 하고, 태식이와 싸움을 하고, 친정아버지와 싸움을 합니다. 고씨는 시아버지와 싸움을 하고, 며느리들과 싸움을 하고 시누이와 싸움을 하고, 다니러 오는 아들과 싸움을 하고, 동대문 밖과 관철동의 시앗집[남편의 첩이 사는 집]에 가끔 쫓아가서는 들부수고 싸움을 합니다. 그래서, 싸움, 싸움, 싸움, 사뭇 이 집안은 싸움을 근저당 해놓고 씁니다.(93p)
싸움에 싸움에 싸움을 연속으로 해대는 이 집안. 양반집입네 하고 있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딱히 그렇지도 못하다. 더군다나 딸네부터 며느리, 손주며느리까지 과부에, 진짜 과부에, 그냥 과부에, 과부 아닌 과부들까지 모조리 같이 사는 이 집안이 이 조용하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일 아닐가 싶을 정도로 일이 끊이지 않는 윤직원네 영감집이다.
"거참 아라사놈덜은 그렇다데그려...그놈의 나라으서넌 부자 사람의 것을 말끔 뺏어다가 멋이냐 공군놈덜허구 노동꾼놈덜허구 나눠주었다지?"(143p) 아라사. 지금의 러시아를 가리키는 말인데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그나마 많이 없어졌을 시대에 지어진 이 책에서도 여전히 그들의 구분이 엄격히 존재하는 것을 보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아주 오래 긴시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노예제도와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그런 그들에게 러시아가 주장하는 사회주의는 큰 이슈였을 것이다. 그런 러시아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온 북한의 제도도 그렇고. 작가는 개성에서 작품생활을 했기에 그 런 면에서 좀더 잘 알수가 있지 않았을까.
자신의 윗대에서 불려놓은 재산으로 떵떵거리면서 할일없이 잘 살았던 한 영감의 집을 통해서 바라본 이 시대는 태평천하라 할 수 있을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힘들어 하고 있었고 사회는 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시대를 태평천하라 이름 붙인 것은 아마도 그 세대를 비웃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깔려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태평천하에 부랑자들 당에 들어간 손자를 탓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자신부터 사람들에게 조금은 나눠 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말이다. 과연 태평천하는 누구에게나 태평천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