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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8년 2월
평점 :
저 녀석은 미쳤어. 미친놈 취급하는 수밖에 없어. 저놈은 미쳤기 때문에 미친놈처럼 반응하고 있어.(167p)
리처드 브라우티건. 이 작가의 책이 처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일관된 양상을 띄지 않고 다양하다. 그래서 한번 더 살펴보게 된다. 이 작가 쓴 책이 맞는지 확인하는 차원이다. 때로는 서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다가 때로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소리 같다가 때로는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장르가 널을 뛰듯이 급변한다.
그러므로 인해서 다양한 느낌을 받으면서 그의 책을 읽을수가 있다. 고정되지 않은 관념이라 자유롭다. 물 흐르는 대로 생각을 맡겨두면 된다. 종내는 어디론가 흘러가겠지.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하겠지. 아니 애초부터 목적지라는 게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만.
이야기를 너무 꼬치꼬치 하나하나 따지면서 읽을 생각을 버리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한글자씩 따져가면서 이치를 찾아내면서 정도에 맞게 읽는다면 약간은 피곤해질지도 모른다. 그저 구름에 달 가듯이 내가 그 구름에 얹혀 있듯이 살짝 흐릿하고 몽롱한 기운에 읽어주면 더욱 좋을 이야기, [빅서에서 온 남부장군]이다.
빅서. 분명 지명임에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낯선 이름이다.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지명이 아니다. 지도에서 찾아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군에 있는 자연경관명승지로 로스엔젤레스와 캘리포니아 해안가에 위치한 지역이라고 한다.(네이버 제공) 보호구역에 속하고 있으며 서핑에 최적화 된 지역이라고 하니 경치도 아주 수려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이런 곳에서 온 남부 장군이라니 작가는 이 지역을 언급하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이 있었다. 남한과 북한이 등을 지고 벌어졌던 전쟁. 결국 그 전쟁으로 인해서 한국이라는 조그마한 땅덩이는 두쪽으로 나뉘었다. 미국에서도 자신들끼리 전쟁이 했었다. 남북저쟁. 그것은 노예제도에 관한 전쟁이었다. 노예제도를 없애자는 북군과 노예가 계속 필요하다는 남군으로 나누어저서 싸웠던 전쟁. 결국 북군의 이김으로 말미암아 노예는 해방되었다. 그렇다면 패한 남부군쪽에서는 어떠했을까.
남부 장군의 퇴락한 후손 리 멜론을 통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시간들을 설명해준다. 현실의 이야기를 하면서 가끔 나오는 이탤릭체의 글들은 그 당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 이야기들만 따로 모아서 읽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새로운 맛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제시라는 이름의 나는 리 멜론을 만난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때는 리 멜론이 부자 동성애자에게서 뺏은 돈으로 흠뻑 술에 취해 있을 때였다. 지낼 곳을 찾는다는 그에게 제시는 자신이살고 있는 다락방 아래에 빈 방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들은 그렇게 이웃 사촌이 된다.
술에 술탄 듯 물에 물 탄 듯이 흘러가는 이야기는 현실인듯 비현실인듯 그 경계를 모호히 하고 있다. 결말을 약간씩 달리해서 총 다섯개의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그런 점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있는데 마지막 챕터의 제목은 1초에 186000번의 결말이다. 점점 더 빨라지는 결말. 이 책이 186000번째의 결말을 가질 때까지 결말은 점점 더 빨라진다라고 적혀 있다.
갑자기 올림픽이 떠오른다. 몇만분의 일초까지 정확하게 측정해서 등수를 가르던 그 기억. 그 찰나의 순간 때문에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었던가. 이 책의 결말은 어디까지 빨라져야만 작가는 만족할 수 있을까.
작가가 실제로 부인과 함께 빅서에서 한달간 살면서 친구와 지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쓰여진 이 이야기는 제시라는 주인공은 작가에 그리고 리 멜론은 친구에 비유해서 보면 좋을 것이다. 사라진 남부의 전통을 상징하는 멜론 장군. 후손인 리 멜론은 할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명예를 보존하려고 하지만 현실상에서의 그의 생활은 힘들다. 각박한 현실을 전쟁에 비유하며 풍자적으로 그린 일종의 해학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척박한 현실을 이겨내고 싶은 환상적의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