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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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우선 '이덕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이덕무는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과 더불어 청나라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시인이자 실학자이다. 아는 것이 많고 특히 문장에 뛰어났으나 서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했던 그. 이 책은 그의 소품문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에 실린 이야기들을 고전 연구가 한정주의 번역과 해석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두권 모두 이덕무가 이십대였던 시절에 쓰인 산문집이다. 전자가 훨씬 더 분량이 많긴 하지만 두권이 비슷한 의미로 읽힌다고 번역자는 말하고 있다. 이덕무의 글은 비록 한자어로 쓰여있기는 하지만 결코 그리 어려운 문장들은 아니다.

소재 또한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나 풍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생각하고 쓸 수 있는 글이기도 하다. 그런 소소함이 주는 공감대는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글을 통해서 느낄수 있다. 충분히.

특히 같은 한자어를 반복해서 쓰는 대우와 대조의 묘미를 살린 글 한 편이 눈에 들어온다.(23p)

春山鮮鮮 而夏山滴滴 秋山 而冬山栗栗

'사계절과 산의 풍경들'이라는 제목의 이 시구는 <봄산은 신선하고 산뜻하다./ 여름산은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가을산은 여위어 수척하다./ 겨울산은 차갑고 싸늘하다.>라는 단 네문장 각 산마다의 특징을 이렇게도 잘 잡아내고 있다. 더군다나 한자어로 보면 더욱 놀랍다.

단 두개의 한자, 그것도 같은 단어의 반복이니 결국은 한자어 하나만으로 춘하추동, 사계절 산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내고 있는 셈이다. 신선할 선, 물방울 적, 여윌 구, 그리고 밤나무 율자를 통해서 반복과 대조로 쓰여진 이 글은 정말 간결하면서도 눈에 띄는지라 보는 순간 대단하다 칭하면서 다시 한번 되뇌게 되는 마력같은 느낌의 글이다.

당시 사람들중에서는 이덕무의 글이 중국의 것과 다르다고 하여 비판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는데 그들을 향해서 박지원은 이덕무의 글이 그들의 것과 같지 아니하고 오로지 조선의 자연을, 조선의 사람을, 조선의 성정을 표현했기 대문에 조선의 국풍이라고 하며 두둔하였다고 한다.(225p)

박지원이 아주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았던 것이 아닐까. 이 글에는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그 당시의 풍경들, 그리고 소품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당시에 살지 않아서 중국의 풍과 어떻게 다른지 구분할 수는 없지만 오직 조선의 느낌을 담았기에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알찬 글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바다.

또 한편 <선귤당농소>에 실린 글을 보자.

망령된 사람돠 더불어 시비나 진위나 선악을 분별하느니 차라리 얼음물 한 사발을 마시는 것이 낫다.(179p)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글은 왠지 모르게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과 시시비리를 가려봐야 몸만 피곤해지니 그저 무시하고 내 갈길 가라는 말이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이런 식의 요즘 세상에도 딱 들어맞을만한 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이 글은 전혀 오래전 글이 아니다 싶게 여겨진다. 한자를 안다면 그것을 해석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고 모른다해도 풀어놓은 글을 본다면 너무나도 공감하며 맞장구를 칠 이야기들이 즐비하다.

마지막 글에 번역자는 <다만 쓰고 싶은 것을 쓸뿐>이라는 제목을 붙여놓았다. '숙제로 써야 하는 글이 가장 나쁘다.'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로 이루어지는 글쓰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시 지금 글쓰기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편하게 주위의 사람이나 자신의 일상, 하다못해 지금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라도 자유롭게 써보면 어떨까. 숙제는 해야 되는 일일 뿐 결코 하고 싶어서 자발적인 것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숙제 같은 글쓰기를 하지 말자는 것에 절대 공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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