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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행복 - 이해인 수녀가 건네는 사랑의 인사
이해인 지음, 해그린달 그림 / 샘터사 / 2017년 12월
평점 :
'페이지 터너'라는 말을 아는가. 이야기가 너무 재미나서 페이지를 마구 휙휙 넘기게 되는 책을 뜻하는 말이다. 보통 그런 책들은 나에게는 고속철도와도 같이 마구 달린다. 이 책은 절대 그런 책이 아니다. 기차에 비유를 하자마면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비둘기 열차와도 같다.
종착지가 있기는 하나 아주 멀리 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작은 역마다 하나씩 다 쉬어서 들러줘야 한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맛을 주는 책이다.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좋지 않은 책은 아니다. 오히려 그 매력대로 읽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에세이의 참맛이다.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샘터를 통해서 한쪽지씩 읽는 재미가 있었다. 작년까지는. 올해부터는 집필진이 바뀌어서 그 재미를 느낄 수 없었는데 이렇게 차분한 책으로 한꺼번에 던져주시니 또한 감사할 따름이다. 글은 사람을 닮았다고 했던가. 그녀의 글은 그 자체로 그녀다.
수도서원 50주년을 기념해서 펴 낸 책. 1부에서 5부까지의 글들은 어디선가 다른 매체에서 나왔던 글들을 엮은 것이고 마지막 6부는 첫서원하고 나서 일년동안의 일기를 엮은 것이라고 한다. 수녀님의 첫 일년은 어떠했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단단한 열매였을까. 아니면 아직은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보이는 사회초년생의 모습을 닮았을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고 망설이기도 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짝 민낯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인간다와서 좋다. 처음 일을 시작할때라 실수도 하고 윗수녀님들께 혼도 나고 그러면서도 동기들과의 발랄함조차 엿보이는, 그야말로 통통 튀는 스무살 소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수녀님도 이런 때가 있었구나 하며서 그 모습들을 상상하게 된다. 새로운 느낌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이 현대사회 속에서 '기다림'이라는 것은 오히려 '지루함'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 버릴수가 있다. 기다린다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그런 기다림에서 행복을 찾을수가 잇을까. 시간을 들여야만 완성되는 것들을 생각하면 아마 이해가 될수도 있겠다.
도자기들은 가마솥에서 오랜 시간동안 구워야만 비로소 완전해진다. 기다리지 못하면 도자기는 그저 한낱 깨어진 흙일뿐이다. 맛있는 장들은 오랜 시간 기다려야만 발효가 되어 그 맛을 내게 된다. 기다리지 못하면 그것은 부패되어 버리워질 뿐이다. 우정이라는 것도 시간을 들여서 서로간의 믿음을 쌓고 사랑을 나누어야만 단단하게 완성이 된다. 기다리지 못하면 그 우정은 어느샌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빨리빨리 외쳐도 기다려야만 완성이 되는 것들은 아직도 이 세상에 무궁무진하다. 그런만큼 우리는 기다리는 행복을 찾아야만 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서 더할수 있다면 더욱 행복할 수도 있겠다.
* 샘터 네이버 공식 포스트 http://post.naver.com/isamt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