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 듯 저물지 않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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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을때면 미노루는 거기에 있으면서 없는 사람 같았다 (더구나 그는 늘 책을 읽었다). 미노루와 사귀는 동안, 나기사는 언제나 한기를 느끼는 것처럼 외로웠다.(38p)

 미노루처럼 살고 싶어졌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은 아마도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서 딱히 무엇인가 노력을 하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돈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모르겠다.

에쿠니 가오리의 글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는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커플이기는 하나 동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거나 부부이기는 하나 그 사이에 다른 동성애인이 한명 더 끼어있다던가[반짝반짝 빛나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이[잡동사니]거나 부부간이면서도 서로 다른 애인을 두기도 한다[달콤한 작은 거짓말].

언뜻 보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그런 관계이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글 속에서는 그 모든 설정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그 어느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오히려 그 설정 그대로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에쿠니 가오리의 글을 좋아하는 것은 그 때문일수도 있겠다. 평범하나 다른 듯, 다른 듯  또 그 나름대로 평범한 그런 맛을 느끼기 위해서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평범하지 않은 관계가 이번 책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아니 다른사람이 읽었을때는 충분히 이상함에도 불구하고 내눈에만 그렇게 느껴졌을수도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미노루. 나기사와의 사이에 하토라는 딸이 있다. 그의 일을 전적으로 관리하는 친구이자 회계사인 오타케와 일년의 반 이상을 해외에서 사는 친구같은 누나 스즈메. 자신과 누나가 사장으로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점원 아카네. 그녀의 친구 유마 그리고 그녀의 아들.

미노루는 나기사가 원하지 않아서 양육비를 주지 않지만 자신과 전혀 상관도 없는 아이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두고 양육비를 지불한다. 대체 무엇때문에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까. 반백살의 그의 행동이 철이 없어 보이고 이해하기 힘든 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책에 빠져서 세상 모든 일을 잊고 지내는 그를 이해하기 힘들어서 나기사는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났으니 말이다.

텔레비젼을 보는 남편은 지금 여기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책만 읽는 미노루는 옆에 있어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기사를 혼자 내버려두고 늘 저 혼자만 다른 장소로 가버린다고밖에.(112p)

새로 만난 남자는 책을 읽지 않는다. 단지 텔레비젼을 볼 뿐이다. 그래도 나기사는 책을 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한다. 적어도 텔레비젼은 함께 볼 수도있고 그걸 보며 다른 이야기를 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책에 빠지면 현실은 담을 쌓아버리는, 자신만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버리는 미노루에게 질려버려서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전여전일까 미노루의 딸인 하토는 책을 좋아한다. 나기사는 방에 틀어박혀서 책만 읽지 않도록 밖에 나와서 가족들과 같이 있으라고 말해두었지만 이세상 그 무엇보다 하토는 책을 좋아한다. 하토와 아빠인 미노루 그리고 고모인 스즈메가 만나면 각자 자신들의 책을 들고 책의 세계에 빠져있지 않을까.

작가의 이야기치고는 꽤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미노루가 읽고 는 책을 교차 편집시켜 은 것이다. 처음에 미노루가 읽고 있는 것은 북유럽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 차갑고 시린 겨울 속에서 가족이 있는 곧 할아버지가 되는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했던 젊은 여자의 실종으로 인해 그 여자를 찾아 나선다. 그가 만나게 되는 것은 어떤 사건일까.

책속의 이야기에 빠져들어가다 보면 누군가 방해를 해서 화들짝 놀라 깨어난다. 미노루처럼 말이다. 일본은 뜨거운 여름이건만 책속의 겨울속에서 적응하는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린다. 얼마나 미노루가 책속에서 빠져사는지 이해할 수 있을것만 같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다가 중간에 끊어야만 할 대의 아쉬움을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내가 미노루였으면 좋겠다. 읽으면서 내내 생각한 대목이다. 여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의 유산. 돈 걱정하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읽고 싶은 책에 빠져들어 봤으면. 그나저나 미노루가 읽던 책의 마지막은 어떠했을까. 그가 읽던 책의 제목은 무엇이었을까. 북유럽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와 젊은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사랑이야기. 그 두 책의 제목을 알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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