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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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기억한다. 연남동을 보는 순간 떠올랐다. 모두들 자고 있는 새벽. 카페 문을 열고 칼을 갈고 있는 한 남자. 작가라고 했다. 그런데 칼을 간다. 희한한 일이다. 그러더니 자신의 카페를 두고 다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글을 쓴다.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는 잊었지만 그의 독특한 행동은 뇌리속에 남아있다. 아마 방송에 나온 그가 이 작가 김동영일 것이다. 분명.

전작중에서 [당신이라는 안정제]를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의 주치의와 함께 써내려간 이야기. 일단 그것부터가 독특하다. 보통 자신의 병은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맞지 않나.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치의와 같이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또는 자기자신을 위해 글을 썼고 책을 냈다. 독특하다.

그의 글은 perfect하지 않다. 아니 complete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모르게 빈 구석이 보인다. 꽉 짜여진 complex가 아니라 느슨함을 표방하는 듯이 보인다. 적어도 내게는 그리 보인다. 그렇하고 해서 곧 무너질 것 같은 그런 허술함은 아니다. 나름 견고함을 유지하면서도 군데 군데 비어있는 모습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종의 여유나 여백이라고나 할까.

살아간다. 떠난다. 돌아온다.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에서는 숙명이라고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일들. 일단 살아야 하고 일단 떠나야 하고 떠났으면 그곳에서 또 살아야 하고 또 그곳을 떠나야 하고 결국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야 하고.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지만 여행을 극도로 피곤해하고 좋아하지 않는 그다움이 느껴진다.

그저 여유롭게 살고 싶다. 부자가 된다면 좋겠지만 내가 부자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걸 냉정하게 알고 있기에 어느 정도 여유롭게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고 싶다.

(49p)

나 또한 크게 공감하는 한글자 한글자, 한문장들이다. 작가가 자신을 소심하다고 생각하는만큼 나 또한 그러하다. 아마 작가와 내가 친구라면 우린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와 똑같이 어린 시절에 편식을 했고 엄만 뭐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썼으며 알약이 있어서 간편하게 먹으면 더이상의 먹는 것은 귀찮음이라고 생각하는 그와 나. 그와 친구가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는 건 귀찮은 일들 투성이다.(221p)

<사는 것은 귀찮은 것>이라는 제목하에 쓰여진 글.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정말 많은 일을 수반해야 한다. 육체가 온전히 거동을 하기 이해서 먹어주어야 하고 마셔주어야 하고 그만큼 화장실도 가주어야 하고 그 외에도 해야할 것들 투성이다. 그런 것들을 하지 않으면 사람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할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우리는 아직 살아있고 살아있는 한 이 귀찮은 일들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할 터이니 살아있는 것에 감사를 하고 살아야할 뿐.

[퐅랜]이라는 책에서도 이우일 작가는 미국 포틀랜드 지방에서 한동안 살았었다. 이번에 김동영작가도 포틀랜드다. 가보지 못했지만 포틀랜드라는 그 작은 도시는 작가를 불러들이는 공간인가 보다. 아마도 다른 곳과 비교해서 조금은 촌스럽고 조금은 조용하며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도시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쯤되면 운명이다 하고 포틀랜드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소심하고 갈팡질팡하는 나는 여전히 머리속으로만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체크하고 말아버린다.

내게 여행은 떠남과 돌아옴이다.(95p)

작가는 자신의 경우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여행은 떠남과 돌아옴의 반복이 아닐까. 일상생활을 탈출하고 싶어서 여행을 계획하고 떠난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곳에서 살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의 본거지가 그곳이 아니기에 사람은 돌아와야만 하는 것이다. 여행은 돌아옴을 전제로 한 떠남인 것이다. 돌아올 곳이 있어서 행복한 여행인 것이다. 그 어디에도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여행이라는 이름을 버린 것이 아닐까.

당신이 행운이고 사람이 기적이다.(129 p)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사람이 가진 매력일지도 모른다. 사람 사이의 관계. 여행에서 만나지는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을 철저히 외면하지 않는 한 당신은 그무리들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은 사람. 당신이 행운이고 사람이 기적이라는 작가의 말이 곱씹어지는 타임이다.

한 겨울. 눈이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눈이 내리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오늘도 눈이 한아름 내린다. 끝도 없이 내린다. 산과 나무와 온 들판이 벌써 하얗게 눈을 뒤집어썼는데도 불구하고 눈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부옇게 흐린 회색빛 하늘에 밝은 노랑의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 눈과 햇살. 그렇게 또 하루가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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