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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평점 :
화가는 당연히 남자여야한다. (85P)
[암막의 게르니카].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검은수련].
모두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피카소나 모네의 유명한 그림을 소재로 삼아서 모티브 삼아 만든 이야기도 있고 하나의 그림을 두고 그에 엃힌 이야기를 그린 소설도 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그림을 가지고 다른 시대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그 두 시대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60년대와 30년대다. 30년대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60년대에는 나이가 조금 더 들었을 뿐 충분히 생존가능성이 있는 시간이다. 즉 이것은 두 시간대에 모두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장르소설 매니아들에게 추리와 유추는 기본이다.
제시버튼의 [미니어처리스트]를 비롯햇어 이번 책까지 그녀의 책은 일반적인 소설이면서도 무언가 장르적인 이미지를 내뿜는다. 그런 존재감이 소설을 질리지 않게 읽히게 만든다. 삶은 달걀에는 언제나 사이다가 짝이었던가 그녀의 책에서는 그러한 숨은 짝이 존재한다.
또한 사회성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전작에서는 나이가 어린 여자를 설정해서 그녀가 집안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이며 결혼선물로 받은 미니어처 집을 꾸미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존재로 설정했다면 이번에는 무려 4명의 여자주인공을 설정해서 다양한 그녀들의 존재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여성적인 차별 뿐 아니라 그중 한명을 흑인으로 설정해놓아 사회적 인종적 차별까지도 은근슬쩍 다루고 있는 점이 상당히 기교적이다.
1967년 런던. 이제 막 영국에서 독립한 트리니나드 토바고 출신의 흑인여자 오델. 그녀는 충분히 공부를 한 학위가 있는 여자이지만 직업을 찾지 못해 오늘도 손님들에게 신발을 판다. 그런 그녀가 미술관에서 일을 할수 있게 된 것은 신의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출근하게 되는 미술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그녀를 그곳에 불러 준 것은 '퀵'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처음부터 오델을 인격체로 동등하게 대해주었다. 그들간에는 어떠한 유대관계가 생기게 될까.
1936년 에스파냐 말라가. 부유한 미술품 거래상인 아버지를 따라서 에스파냐로 이사를 가게 된 올리브. 그녀와 엄마 세라는 처음에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이내 그곳에 적응하며 살게 된다. 그녀들을 도와줄 테레사라는 소녀. 그녀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고용인이지만 올리브만의 비밀을 지켜준다. 이야기속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의 키를 쥐고 있는 그녀다.
약 30여년의 간격을 띄고 연결되는 이야기는 내내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내게 뒤통수를 세게 쳐주었다. 장르소설에서 분명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강하게 확신했던 독자들에게 반전을 꾀하는 작가임에 분명한 제시 버튼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까 했더니 심하게 찍혔다. 아주 깊게.
'뮤즈'란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주는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보통 우리는 작가를 '남자'로 규정하고 뮤즈를 '여자'로 인정해버리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처럼 말이다. 미술작품을 거래하는 사람이면서도 자신의 딸의 작품은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 그 시기를 벗어난 이 현재의 시대에 우리는 더이상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아직도 그런 편견을 존재하고 있는가.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한 글을 썼다. 스스로 글을 쓰고싶은 충동이 어디서 기원하는지조차 잊고 있었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밖에 존재하는 고요하고 순수한 창작의 동기를 잃어버렸다.(185P)
오델은 비록 미술관에서 일을 하고 있을지언정 자신만의 작품을 쓰기를 원했다. 그런 열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남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 그런 것들이 부담이 되어서였을까.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를 서술하는 글이 오히려 그녀에게 더 뛰어난 작품을 남긴 것을 보면 말이다. 뛰어난 걸작은 의도하지 않았을 때 나오는 법이다. 바로 지금, 그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