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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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라도 작가의 작품을 읽어서 다행.

 

미안합니다, 작가님. 그동안 외면했어요. 단지 [녹스머신]  딱 한권의 책으로 당신을 판단했어요. 어려울 줄 알았죠. 재미없을 줄 알았죠. 이때까지 그래서 작가이름만으로 외면한 작품들도 좀 있어요. 이 책 한권으로 그동안의 모든 오해가 다 풀려서 다행이에요. 정통추리는 이렇게도 재미난 것을 모르고 살았었네요.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의 이름과 동일시 한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일단은 동일시 함으로 이해서 독자들이 좀더 몰입해서 읽을수가 있게 된다. 자신이 주인공인냥 직접 현장에 뛰어 들어서 직접 체험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 너무 주관적인 입장이다보니 객관적인 면이 도외시 되는 경향 또한 있다.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좀 더 넓은 의미의 전능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없어서 보이는 단면이 좁아진다는 것이다. 꼭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고깔대작전'과 같다. 실제로는 넓은 세상이 있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고 고깔속의 작은 동그라미로만 보는 것이다. 당연히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미쓰다신조의 작가시리즈는 '나'라는 일인칭시점을 사용하고 있다. 작가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으며 직업 또한 작가로 등장을 한다.

이 책에서는 그것과 약간 다르다. 작가가 좋아하는 엘러리퀸의 이미지를 그대로 땄다. 엘러리퀸 또한 작가 이름과 등장인물이 같고 이 책 또한 그러하지만 미쓰다신조의 시리즈와는 다르게 '나'라는 대명사를 사용하기보다는 린타로라는 이름을 사용해서 약간은 객관성를 띄는 것처럼 보인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직업 역시 작가이다. 그러면서 아버지인 경찰의 임무를 도와주는 탐정이기도 하다.

탐정이기는 해도 일단 전문가가 아니므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점들이 속속 보인다. 무언가 허술하고 빠뜨리는 부분이 자꾸 생기며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을 한다. 단순하게 그저 실수로 넘기기에는 조금 큰 피해이다. 물론 작가는 그것을 노리고 주인공을 배치한 것도 있을것이다. 뒤편에 실어 놓은 작가 인터뷰를 보면 더욱 잘 알수 있다.

홈즈같은 천제 탐정이 아니어서 생길수 있는 문제들은 일반독자들이 읽으면서 자신 또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음을 느끼며 동감하게 된다. 앞서 말한 작가와 주인공이 동일시 되었을때의 장점에 속한다. 그러나 답답한 면이 없잖아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분명 보고 지나가야 할 것도 빠뜨리고 오히려 독자들이 챙겨서 '너, 이런거 잊어버렸어.' 하고 챙겨줄 정도면 조금 심각하긴 하다. 그런 약한 부분이 있는 것이 작가가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명조각가가 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 조각가의 동생은 알려진 번역가다. 장례식이 끝난후 그는 개인적으로 추리소설 작가인 노리즈키 린타로를 만나기를청한다. 경찰에도 알릴수 없는 그 집안의 문제는 무엇일까. 오래전 자신의 아내를 대상으로 '모녀상'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던 그가 자신의 딸을 모델로 삼아서 그와 똑같이, 자세만 조금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남겼다는 조각을 보니 머리부분만 잘렸다. 처음부터 만들지 않은 것이 아니다. 완전히 만들어진 조각상에서 누군가가 목을 베어 간 것이다. 생각할수록 기이하다. 누군가 앞으로 이러한 일이 생길 것을 예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작품의 주인공인 딸의 목숨 또한 위험한 것이 아닐까. 그들은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린타로를 이용해서 누가 이 작품의 머리를 가져갔을지 알아내기를 원한다.

그는 경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즉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 사건을 풀어낼 수 있을까. 이 조각상의 모델인 딸은 무사할까. 정통 추리소설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가기에 무리없이 읽으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순수하게 주인공을 따라서 사건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쉽게 풀어나가면서도 부분적인 면면을 놓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사건이지만 잘 연결해서 지루하지 않게 구성해두었고 마지막에 나타나는 사건의 결과 또한 생각지 못했기에 더욱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다리는 약간의 틈만 남긴 채 모으고 있었다. 양 무릎은 각도를 달리 해서, 왼쪽 다리는 앞 쪽 바닥을 딛고 있고, 오른쪽 다리는 반쯤 뒤로 빼서 발끝을 세우고 있었다. 오른쪽 허벅지와 장딴지의 라인은 예각을 이루고 있었고, 화살촉처럼  꽉 죈 발끝 라인은 움직임이 없는 포즈에 악센트를 주고 있었다. (123p)

장마다 이어지는 루돌프 비트코어의 [조각의 제작과정과 원리]를 읽는 것은 또 하나의 색다른 즐거움이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조각을 어떻게 만드는지 전혀 모르고 지나갔을테니 말이다. 루브르에서 많은 조각상들을 본 것이 기억난다. 그들은 눈을 감고 있었던가 뜨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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