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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양장)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이영의 옮김 / 새움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시를 아무리 읽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정규 수업시간에는 시를 공부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듣게 되는 싯구들도 있기 마련이다. '푸시킨'이라는 이름을 모르더라도 이 시구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누구라도 한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작가가 누구인지 몰라도 이 구절만큼은 살아서 움직인다고나 할까.
시인이었던 푸시킨이 자신의 마지막 장편소설로 써낸 이 역사소설은 18세기 후반 청년장교 그리뇨프의 인생이 그대로 담겨있다. 철없던, 그저 도련님이었던 인물이 군대를 가게 되면서 그 곳에서 벌어지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 당시 역사와 더불어 그 역사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그대로 그려낸 이 소설은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읽기 어렵지 않다. 그만큼 푸시킨이 실생활에서 쓰이는 그런 단어를 추구해서 쓴 이유도 있고 그때 당시나 지금이나 그닥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
태어나기 전부터 편한 보직을 미리 예약해 둔 그리뇨프였다. 아버지의 든든한 배경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른바 금수저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급의 다이아몬드 수저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성장을 해서 군대갈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작 군대갈 나이가 되자 아버지는 마음을 바꿔서 그를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보내버린다.
그저 도시에서 편하게 생활할 줄로만 알았던 그에게 이 사건은 아주 큰 계기 된다. 그는 아버지가 바라는대로 훌륭한 군인으로써의 임무를 잘 수행해 낼 수 있을까. 첫날부터 내기판에 휩쓸려서 돈을 잃는 등 그의 시작은 순탄하지 못했다. 가던 길에는 비싸고 좋은 토끼가죽 코트까지도 주어버린다. 옆에 있던 하인이 말려봤자 그에게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다. 우여곡절끝에 부임지로 들어간 그이지만 그곳에서도 결투를 신청하는 등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게 된다.
그때 그대가 베푼 한 잔의 술과 토끼가죽 외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세. (188 p)
하지만 그의 그러한 모든 행동들이 보답을 받는 때가 온다. 아무런 생각없이 베풀었던 친절이 자신의 목숨을 구할수 있는 기회가 되고 또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반역으로 인한 죽을 운명에 놓였을지라도 그는 정직하고 바르게 그 어려움을 헤쳐 나온다. 권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순간이다.
무기력한 개인으로서 역사 권력 앞에 매몰되지 않는 힘을 축적하는 것은 바로 이런 개인의 의식의 성장과 성숙을 기반으로 가능하다. (289-290p)
큰 권력들 앞에서 개인의 힘은 보잘것 없기 마련이다. 그래서 공권력 앞에서 엄한 사람이 범인의 누명을 쓰기도 하고 정작 잡혀야 할 사람보다는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이 그 모든 죄를 뒤집어 쓰기도 한다. 저자는 주인공을 통해서 그런 개인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다. 개인의 의식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의식이 성숙되고 완성되어 가면서 개인의 힘도 무시할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시대상으로 비추어본다면 충분히 그런 것을 보여주고자 했음이 엿보인다.
러시아 소설이라고하면 주인공들의 이름이 워낙 까다로와서 읽기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런 고정관념을 깰 뿐 아니라 사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묘사로 인해서 쉽게 읽히고 그 때 당시의 상황까지도 짐작할수 있는 소설. 역사소설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시대상을 나타낼 뿐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읽힘으로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는 고전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