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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의 소식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평점 :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정보가 나온다. 그러나 이 남아도는 정보가 모두 즉시 벽에 부딪혔고, 하나의 평면상에 늘어놓을 수 없다. 그것이 답답했다. 예상을 훨씬 넘은 난제 사건의 냄새를 풍긴다는 느낌도 있다. (178p)
경찰서 간부와 기자와의 연회. 악연인듯 인연일수밖에 없는 그들의 관계. 뺑소니 사건으로 인해 한때 긴장감이 돌았지만 금세 해결되므로 인해 오늘만큼은 모두들 편하고 먹고 마시고 노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쪽지가 하나 날아온다. 15년전 자살사건이 살인사건이라는 것. 그것도 바로 오늘 딱 24시간의 공소시효가 남았다는 것. 이제 이 시간이 지나면 범인을 처벌할 수도 없다는 것. 간부들은 연회를 뒤로 한 채 기자들 몰래 빠져나오기에 이른다.
공소시효. 모든 범죄에는 공소시효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시간까지는 범인을 잡아서 처벌할 수 있으나 그 이후가 되면 설령 범인을 잡는다해도 그 범죄사실로 처벌할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범인이 좋으라고 만들어진 법인지 아니면 경찰들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만든 법인지는 모르겠으나 솔직히 불합리한 면이 없잖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또한 공소시효가 있었다. 법이 개정되어서 살인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사라졌다. 살인범은 언제라도 잡기만 하면 법의 처벌에 맡길수가 있게 된 것이다. 다행이다 싶다.
15년전 학교에서 여교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옥상에 남겨진 신발과 유서로 경찰들은 자세한 조사 없이 그저 자살로 묻어버리고 말았다. 공소시효를 딱 24시간 남겨둔 지금 살인이라는 제보가 들어왔다. 범인을 잡는 것도 어렵지만 시간에 쫓기는 싸움을 해야한다. 이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세사람의 제자가 공모해서 교사를 죽였다는 제보, 그중 주범이 기타라고 정확하게 알려준 제보대로 경찰은 기타를 데려온다. 한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 그저 평범하게 사는 듯 했던 그의 과거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그의 취조를 맡은 경찰은 편안하게 그를 둔다. 무엇이든 이야기해보라고 말이다. 그는 무엇부터 이야기할지 모르다가 자신들이 이름을 붙인 루팡사건부터 꺼내놓는다. 학창시절 말썽장이 삼인방이 모여서 만들어낸 그 사건은 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보면 치기어린 장난이라 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사건이라 할수도 있다. 공부는 하기 싫고 시험은 다가오고.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도 없이 수업도 빼먹고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들이 점수를 잘 받으려고 했다고는 절대 생각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심심거리로 놀만한 장난이 필요했을 뿐이다. 스릴 넘치는 사건 말이다.
한밤중에 학교에 잠입해서 시험지를 훔친다. 얼마나 짜릿한 모험인가 말이다. 그들은 결국 그것을 해내고 만다. 단 하루도 아니도 나흘내내 학교에 칩입해 당직 선생을 따돌리고 시험지를 훔쳐낸다. 이중삼중으로 둘러싼 경계를 풀고 시험지를 훔쳐내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모든 것을 끈기있게 연속적으로 해냈다는 사실이 더 대단하다. 그들이 말하는 사건과 여교사 자살 사건은 어떨게 연결될까.
요코야마 히데오의 [64]를 생각한다면 그보다는 훨씬 더 가볍다. 아무래도 첫소설인만큼 묵직한 맛은 떨어진다. [그림자밟기]를 생각한다면 비슷하게 가벼운 면이 있으나 그보다는 좀더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클라이머즈하이]를 생각한다면 역시 그보다는 훨씬 더 밝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을 읽어보고는 싶으나 무겁고 두꺼워서 조금은 어렵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재미와 가독성을 보장해주는 그러면서도 작가만의 매력을 잃지 않은 작품이 [루팡의 소식]이 아닐까 하다. 학창시절의 치기어린 장난이라고 넘겨버리기에는 조금은 무서운 장난이 되어 버렸지만 충분히 흥미를 자극하는 작품이에 틀림없다.
사건은 형사 한 사람이 끝까지 외곬으로 파고들어야만 한다. 수사란 어차피 형사와 범죄자의 일대일 승부라고 생각한다. 어중간한 기분으로 형사 몇백 명이 모여 롤러로 훑듯이 몇백 개의 예상도를 깨부숴나가는 것을 수사라고 할 수 없다. 범죄에 대한 증오도 신념도 없다면 그저 찍어내기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355-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