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한국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클래식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은주와 이병헌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왈츠를 출 때 나왔던 음악이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이다. 한동안 내 폰의 벨소리로 쓰이기도 했던 음악.

 

[시대의 소음]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책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작가 줄리언반스가 사회주의 나라 소련에서 살았던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을 그려놓은 작품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알지 못했던 한 작곡가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고 그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알 수 있게된다. 전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가 주인공으로 등장은 하지만 전기가 아닌 소설 형식의 이야기가 잔잔하면서도 굴곡있는 그의 인생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그는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를 보았다. 말코가 언젠가 그의 손이 작고 '피아니스트 같지 않다'고 동정하며 진심으로 감탄하는 투로 말한 적이 있었다. (30 p)

러시아의 작곡가이면서 뛰어난 피아니스트기도 했던 그의 손이 작았다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80개가 넘는 건반들로 이루어진 악기인 피아노는 보통 손가락이 길고 날렵하게 생겨야만 잘 칠 수 있는 악기라고만 생각해왔었는데 뜻밖의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고 싶은 이들의 것이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들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인민이고, 누가 그들을 정의하는가?(135p)

지금은 러시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소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시절의 그 나라는 좀더 사회주의고 공산주의에 가까왔다. 그런 사회에서 예술가들이 어떤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가 있었을까.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몇십년전에는 금지곡으로 지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어서 가사가 불건전하면, 멜로디가 우울하면 전부 금지곡으로 몰아붙였다. 이 시대도 다를바 없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이 만든 작품이 초연을 하고 금지되거나 아예 처음부터 자유로운 상황에서 곡을 만들지는 못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곡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들으니 그의 작품들이 또 다르게 들리는 것만 같다.

 

그가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우리존재의 음악-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181p)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시대의 소음'. 어느 시대나 소음을 만들어 낸다. 조용하게 흘러가는 시대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소음을 만들어 내는가에 따라서 그 시대는 다른 모습으로 보여질 것이다. 음악가이자 예술가였던 그가 이 시대의 소음에 대항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남긴 음악들이 그가 시대의 소음에 대항하는 방법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럴 리가 없다. 왜냐하면 소령이 언제 기린을 보았는지 말할 때는 늘 그럴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될수 있었고, 실제로 그러했다.(238p) 

끊임없이 대항을 하던 그였지만 공식으로 보이기에는 당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대성공을 거둔 작품들도 있고 그의 음악이 유명세를 얻기 시작하면서 당에서는 그로 하여금 입당하라는 압박을 보내온다. 그렇게 고사를 거하고 거절을 했건만 그는 결국 당에 입당을 하게 된다. 그의 마음은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리가 없다라고 되뇌는 것을 보면 그가 생각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의 부스러기들은 때로는 아주 오랜후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법이다.

 

레닌은 음악이 기분을 처지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스탈린은 자기가 음악을 이해하고 감상할 줄 안다고 여겼다.

흐루쇼프는 음악을 경멸했다.

이중 어느 것이 작곡가에게 최악일까? (168 p)

러시아의 독재자들이 어떻게 음악을 이해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레닌과 스탈린과 흐루쇼프. 그 어느 사람도 음악가에게 최선일수는 없을 터 그는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고치고 감싸안았을까.

 

모두가 하나임을 주장하고 그에 따라 당에 충성하는 일만이 존재하던 그 시절 그는 자신의 음악으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 책을 읽을 것. 그의 인생이 좀더 손에 잡힐듯 느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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