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편의 연극이 끝났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 불꺼진 객석에 앉아 본 일이 있을까. 관객들은 저마다 빠져나가기 바쁘지만 배우들은 자신들이 혼신을 다해서 쏟아부은 그 연극이 끝나고 난 후 약간은 허탈함마저도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인생도 한 편의 연극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영화처럼 되풀이해서 상영을 할 수도 없는 단 한번뿐인 일회로 끝나버리는 연극.

 

전원버튼만 누르면 언제든 따따부따 떠벌리는 TV드라마아 극장마다 몇 차례씩 틀어대는 영화와는 달랐다. 수백 년 동안 수천수만 번 공연되었을지라도 오직 그 시간과 장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독자적인 언어와 몸짓. (57p)

80년대를 생각하면 매캐하게 뿜어져 나오던 최루탄 가스가 먼저 생각이 난다. 그 시절을 살아본 사람들중에 한번도 그런 냄새를 맡아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위 대학가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퍼져나왔었다. 그중에서도 문학이나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연을 통해서 자신들의 생각을 드러내려고 애썼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잡혀가기도 했었다. 그 당시에 대학생이었다면 내가 할수 있는 무언가 다른 일이 있었을까?

 

정권에 대해서 반대를 외치는 사람이 있다. 최민석이라는 이름의 그를 기준은 쫓고 있다. 그를 꼭 잡아야만 한다. 위에서 내려오는 모든 정보들은 입수 되었고 이제 그를 체포하러 가기만 하면 된다. 다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손에 잡힌 모래처럼, 신기루처럼, 허상인가 싶게 그는 또  빠져나갔다. 기준은 문책되었다.

 

자신만의 연극을 만들고 싶어하는 태주, 줄리어스 시저라는 제목의 연극을 올렸다. 사전검열이 있던 시절 지금보다는 훨씬 더 까다로왔다. 우여곡절끝에 올리게 된 연극. 뿌듯했을 것이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마지막 공연을 올리기 전까지는. 마지막 공연에서 단 한 단어를 바꿨을 뿐인데 그를 비롯한 모든 극단 사람들은 연행되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이 다 다르다. 살아온 인생 이야기 어디 하나 똑같은 사람이 있을까. 다르게 살았으니 인생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다양함을 엮어내며 그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기준과 태주를 비롯한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저마다 자신들의 삶을 충실히 이행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만들어 준 대본에 의해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의, 자신이 원하는 그러한 공연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완벽하게 짜여진 세트상에서의 연기와는 다르게 '인생'이라는 배경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작용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의 인생 연기는 어떠하게 펼쳐질 것인가.

 

작가는 오래전 이야기를 써두었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자 묻어두었다고 했다. 그후 수정작업을 거쳐서 나온 것이 바로 이 이야기라고 했다. 분명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시점과 비교해서 별다를 것 같지 않은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씁쓸함을 나아낸다. 그때 당시와 비교해서 매캐하게 눈물을 뿌려댔던 최루탄 가스의 냄새는 없지만 그보다 더 독한 '현실살이의 힘듦'이라는 가스속에서 우리는 중독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미 중독된 자들게에게는 더이상 그 냄새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오래도록 중독되어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누군가가 조종하는대로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하나로 규정된 채 의문은 없어지고 생기를 잃게 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아닌가 말인가.(217p)

 

"핵심은 재현이 아니라 창조야. 배우는 앵무새가 아니라 예술가니까. 대본만 달달 외워 조잘댄다고 문장 속의 인물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천만에. 그건 연기가 아니라 흉내에 지나지 않아.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원숭이도 할 수 있는 거라고!" (10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