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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그리고 축복 - 장영희 영미시 산책 ㅣ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17년 2월
평점 :
[관포지교]라는 말을 아는가. 관중과 포숙이라는 사람의 우정틀 잘 드러내는 사자성어. 모름지기 친구라면 그 정도로 서로를 믿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장영희와 김점선의 관계가 그러하다. 글을 쓰는 장영희와 그림을 그리는 김점선은 마음을 나누는 친구였을 것이다.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같은 년도에 두달간의 차이를 두고 하늘로 돌아간 그들. 더이상은 그들의 글을 볼 수 없고 그림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은 아마도 그곳에서도 서로 죽고 못사는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마나마 소설이나 자신들에게 필요한 계발서를 읽는 인구는 있으나 시를 읽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디다. 하물며 영시라니. 그런 편견을 깨고 싶었던 것일까. 장영희 교수는 자신이 직접 번역을 하고 컬럼을 써서 신문에 연재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투병중에도 그 일은 놓지 않을만큼 애정을 가졌다.
그녀가 연재하는 신문을 보고 있었기에 나 또한 신문에서 그녀의 칼럼들을 읽어왔다. 길지 않은 이야기들 그리고 해석이 있어 더욱 쉽게 읽혀지는 시들이 아름다웠다. 그런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이 있을까.
같은 저자의 작품은 2014년 출판된 [다시, 봄]이라는 책과 비교할 수 있겠다. '가지 않은 길'이라던가 '3월님 어서 오세요' 같은 몇몇의 시들은 두 권 모두에 수록된 것을 볼 수 있다. 1년이라는 타이틀을 정해놓고 그에 맞춰 시들을 엄선한 것이 그 책이라면 비채에서 출판된 이번 책, [생일, 그리고 축복]은 장영희 교수의 [생일]과 [축복]을 묶어서 합본으로 만든 것이다. 그만큼 많은 시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그림을 느낄 수 있다.
혹시 시라는 것을 외워 본 적이 있는가. 학교 다닐 때 외워본적이 있지만 그 후에는 없을 것이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시란 어떤 존재일까. 시험에 나오는 장르이면 공부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외면하는 장르일까. 영문학과나 일문학과처럼 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학생들마저 줄고 있으니 몇년 후에는 대학에서 이런 학문을 전공하는 과조차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문학이라는 장르는 실생활에서는 전혀 쓸모없어 보이지만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정신세계를 이해할수 있는, 삶에 가장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실용적이지 않다고 해서 외면해버려야 할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일테니 말이다.
시가 어려워서 못 외우겠다는 소리가 가장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시를 한번 보자.
Faiyr tale 동화
There once was a child 옛날 날마다
living every day 내일은 오늘과 다르길
Expecting tomorrow 바라며 살아가는
to be different from today.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영어로도 간단할 뿐 아니라 한국말로도 간단하다. 더없이 간단한 이것이 시인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겠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짧은 글로써 운율을 맞추어서 쓰는 것이 시라면 당연히 이 또 한 시이다.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시. 철도왕의 딸로 큰 재산을 물려받았고 부유하게 살았지만 자신의 큰 아들이 눈앞에서 투신자살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던 그녀.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썼을까. 이 짧은 한 문장을 통해서 자신의 시를 읽어줄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누구나 다 내일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일이 오늘과 다르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더욱 기대하고 그 기대감으로 또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시 속에서 나타나는 저 한 아이는 바로 나 자신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시 속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가면서 읽다보면 재미도 있고 그닥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저자는 아마도 그런 것을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 해석을 하면서도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쓰는 그런 말들을 사용했고 칼럼도 길지 않게 씀으로 말미암아 긴 글에 부담을 느끼거나 지칠수 있는 독자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봄이다. 어둡고 칙칙한 모노톤에서 벗어나 알록달록 화려한 색상의 꽃들을 기대하게 되는 그런 봄이다. 핑크빛의 꽃무늬가 가득한 이 책의 표지가 봄에 가장 어울려 보인다. 이번 봄에는 이 책을 들고 꽃놀이를 떠나봐야겠다. 아름다운 꽃비를 맞으며 나즈막히 시 한편을 읖조려 보노라면 그 곳이 지상낙원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