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소원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유동익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오래전 마음에 두고 있는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선인장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한 아이. 저 아이는 그토록 아파하면서 왜 선인장을 놓지 못하고 저토록 간절하게 껴안고 있는 것일까. 선인장 가시가 찔려서 아프다면 그냥 놓아버리면 될 것을 왜 저렇게 꼭 안고만 있는 것일가. 왠지 모르게 그 아이가 나같이 생각되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그런 그 아이의 사진이 기억속에서 흐려지고 있었다.

 

어디서 나온 사진인지도 몰랐는데 이번에 사진을 검색하면서 어디서 나온 그림인지 알게 되었다. 허헤윤 작가의 선인장 아이. 실제로 책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한권의 책으로 인해서 다른 책을 알게 되는 것은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다.

[ 선인장 아이 : 출처 : http://www.cyworld.com/nunmulsponge ]

 

항상 가시를 세우고 살아야 하는 고슴도치는 날카롭고 날이 선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결코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는 것이다. 정작 우리는 고슴도치의 입장에서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고슴도치가 실제로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얘기를 할 것인가. 자신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운명일 뿐 실제로는 그렇게 날카롭지 않다고 말을 할 것인가.

여기 고슴도치 한마리가 있다. 별다른 이름도 없는 그냥 고슴도치이다. 그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친구를 만나고 싶은 그는 파티를 열까 하는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한다. [모두 우리집에 초대하고 싶어.]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마디를 덧붙인다. [하지만 안 와도 괜찮아.] 이 편지를 받는 다른 동물들은 고슴도치의 이 편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초대에 응해서 방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안와도 괜찮다니 그냥 잊어버리고 말까.

받는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하지 몰라도 정작 고슴도치에게는 인생을 건 아주 죵요한 문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일단 편지를 써놓고도 보내지 못했다. 혼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아직은 아니야." 하면서 그냥 넣어놓고 말아버린다. 그의 선택은 어떠할까. 결국 그는 편지를 보낼까 아니면 그냥 넣어둔채로 친구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아버릴까.

소심하고 겁이 많다. 그것이 이 고슴도치의 성격을 대표하는 단어이기도 하겠다. 아니 거기다 하나 더, 상상을 좋아하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지레 부정적인 입장이 되어 버리고 비관적인 생각을 한다. 우유부단하기까지 하다. 이럴까가 저럴까 고민하다가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현실에 묻혀 버리고 만다. 결단력이 부족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고슴도치는 그만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상황을 살펴주며 그들이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고슴도치의 조금은 나약한 모습들이 어느 정도는 나아보이지 않을까. 

당분간 누워 있을 생각이었다. 여기서 일어나면 또다시 생각을 할 거야. 그리고 생각을 하면 또다시 망설일 거고. 항상 그런 식이었어. 그는 한숨을 쉬었다. 내게는 가시보다 망설임이 더 많을거야. 망설임은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아니지... 보일지도 몰라. 나 말고 모두 다 볼 수  있을 거야.(33p)

어찌나 나 같은지 고슴도치의 마음이 절로 이해되어서 나도나도 하면서 맞장구를 칠 뻔 했다. 지난 주말 가방을 하나 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보고 고민하고 재고 망설였는지 꼬박 하루를 다 보내버렸다. 약간의 결정장애도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몇가지를 골라두고서도 여전히 망설이는 나를 보면서 주위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해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는 옛날 노래 가사가 아니어도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 또한 고슴도치가 아닐가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그는 손에서 가시를 하나 뽑아내고 꾹 참더니 이렇게 심한 고통도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고슴도치는 편안한 고통 같은 건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왕풍뎅이는 모든 것이, 심지어 슬픔이나 절망조차도 편안할 수 있다고 했다. (150-1p)

아픈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비단 사람이 아닌 식물이나 동물조차도 아픔이라는 것건 싫어하지 않을까. 아픈 것이 싫어서 무엇보다도 병원이라는 장소를 가장 싫어하는 나인데, 심리적인 아픔이나 육체적인 아픔 모두 다 싫어하는 나인데 왕풍뎅이는 이런 나를 보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편안한 아픔'도 있다고 말을 하고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펺편한 아픔이 존재한다는 것일까. 어떻게 편안한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일까. 왕풍뎅이는 자신이 고슴도치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가시마저도 참고 견뎔낼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가족이라 할지라도 모든 점을 다 좋아할수는 없으니 안 좋은 점들까지도 자신이 비록 힘들지라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닐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범위가 얼마나 적용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고려를 해봐야 할 것이다.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도 여러 관계가 있으니 말이다. 부모 자식도 있고 부부도 있다. 어느 선까지 우리는 이해하고 참고 견딜 수 있을까. 물론 친구관계도 포함할 수 있겠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은 점이 있다고 관계를 단절할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고슴도치의 생각을 통해서 가지각색의 동물들이 등장을 한다. 아주 작은 곤충들부터 바다에 사는 동물이나 숲속에 사는 동물들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동물의 출현으로 인해서 잠시 당황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다양한 동믈둘을 통해서 우리는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인간유형을 비유해 볼 수도 있겠다.

결국 고슴도치의 소원은 하나일 것이다. 친구들이 와서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그러나 망설이다 보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주위에 있고 언제나 그의 편이 되어 줄 것이며 언제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친구들일 것이다.

망설이는 것은 이제 그만. 상상도 이제 그만,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며 겁을 내지는 말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해 주면 누구라고도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관계 아니었던가. 고슴도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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