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꼭 그래야만 했냐!"

영화대사가 아니다. 작가에게 하고픈 말이다. 꼭 그래야만 했습니까? 작가님. '나'의 인생은 꼭 그렇게 끝나야만 했느냐는 겁니다.

 

화장실에서 남들 모르게 나를 낳아야만 했던 십대의 나의 엄마. 그녀가 나를 기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운명으로 살아야 한다고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과 다르게 시작된 나의 인생은 왠지 모르게 [시체읽는 남자]의 '자'의 인생과 오버랩 되어진다.

 

시체 읽는 남자

작가
안토니오 가리도
출판
레드스톤
발매
2016.11.10.

리뷰보기

아무것도 잘 되지 않았던 자의 인생. 그에게는 하나 남은 가족인 누이동생이 있었고 나에게는 그나마 아무도 없는 홀홀단신이니 오히려 내가 더 낫다고 해아하나. 꼬여도 그렇게 꼬일 수 없었던, 자신이 무언가를 해보려고 해도 주위 사람들에 의해서, 높은 관리들에 의해서 치이고 짓밣히기만 했던 자의 인생. '머피의 법칙'도 그보다 더할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의 인생이었지만 그런 그의 인생도 나만큼 불행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누가누가 더 불행한가 대결이라도 하는 것일까.

 

그러므로 생각해야 했다. 뜻하지 않은 분노가 나를 발견하기 전에 몸을 숨기듯이 재빠르게 눈동자의 빛을 끄고 어둡고 적막한 내 안으로 침잠해서 분노의 원인은 찬찬히 되짚어 보면서, 내가 그리는 나의 모습이 적확하게 손아귀에 잡힐 때까지 나는 나를 철저히 숨기고 있어야 했다.(12p)

아버지는 모르고 미혼모인 엄마에게서 버려지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고아원에서 살면서 책만 읽는 조용한 아이였던 나는 초등학교때 나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감각을 익혀버리게 된다. 그렇게 소중하게 기르고 있었던 새가 친구에 의해 죽고 난 이후 감정이 폭발해서 친구를 때리기에 이른다.

 

그 때, 나는 궤적을 읽었다. 어떻게 주먹이 날아오는지 어떻게 피해야만 하는지 배운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이고 발이 스탭을 밟고 손이 움직이고 주먹이 뻗어나갔던 것이다. 그런 독보적인 감각은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원하지 않았던 방향인 일진의 세계로 접어들고 말아버린 나의 인생. 

 

나는 고개를 숙여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고 그와 동시에 오른쪽 어깨를 뒤로 뺀 뒤 허리를 중심으로 회전하듯 몸을 틀었다. 사선으로 휘어져 있던 상반신이 튕겨나가듯 회전했고 그 맨 앞쪽에 나의 주먹이 놓여 있었다.(55p)

재능과 노력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 무엇이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할까. 에디슨은 그렇게 말했었다. "1%의 재능과 99%의 노력"이라고 말이다. 그만큼 에디슨은 노력의 비중을 높게 잡았지만 요즘 예술가들을 보면 타고난 재능이라고 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단 예술가뿐 아니라 체육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운동을 한 경우라면 그 자녀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잘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 아니었던가.

 

나는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로부터 피해서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자세가 무의식중에 자리잡고 있었던 아이임에 틀림없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라'고 했던 복싱계의 유명한 그 말을 그대로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것은 노력하지 않았으므로 재능에 해당하는 것일까.

 

그것이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아직 몰랐음에도 몸이 알아서 반응했다.(69p)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나 학창시절을 거치고 성장과정을 겪으면서 어른이 되기까지의 일을 그린 이 소설은 어찌보면 성장소설의 장르로 보여진다. '나'라는 존재가 권투에 재능을 보이고 그 재능을 발견해 준 선생님에 의해서 키워지고 권투, 딱 하나만으로 성공을 하고 지역에서, 나라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유명해진다는 스토리는 성장소설 뿐 아니라 뻔히 보는 그런 드라마적인 요소를 구성하고 있는 한국소설인지로 모른다.

 

작가는 그런 뻔한 반열에서 피하고 싶었나 보다.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죽죽 올라가게만 그려대더니 하루아침에 추락시켜 버렸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내가 나은 법이다. 쓴맛, 단맛, 특히 뒤쪽에 이르러서 모든 종류의 달콤한 맛을 알아버린 이후의 쓴 맛은 훨씬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그 달콤함을 모르던 시절에 비해서 말이다.

 

하나둘씩 없어지는 것도 아닌, 하루아침에 벼락을 맞듯이 뒤통수를 맞아버리는 나의 인생은 어떻게 봉합해야 하는가. 그래도 아직 이십대이니 너의 운명은 창창하다고, 너의 담임이 너에게 해준 것처럼 너도 그렇게 다른 이들을 위해주면서 살아가라고 위로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절망의 나락에 빠져서 사리 분별 못하고 인생을 포기해만 할 것인가.

 

 그러나 그 모든 게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는 내가 싫었던 게 아니었다. 그들이 그대하는 내가 될 수 없을까봐 두려웠던 거였다.(315p)

'내'가 보는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얼마나 다른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다 자신의 한번뿐인 인생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또한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나의 존재는 이때까지 누굴 위해서 살아온 것일가. 자신이 짝사랑 하던 아라를, 아니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초등학교때의 친구들을, 그도 아니면 자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최고의 인생을 선물해 준 담임을 위해서? 그 누구를 위해서 나는 살아왔던 것일가. 이제라도 나는 나만의 인생을 새롭게 써내려 가야만 하지 않겠는가.

 

[소년시대]의 주인공은 네 계절을 지나고 한 해를 보내면서 사건을 겪었고 그로 인해서 조금은, 한뼘정도는 더 성장한 계기를 맞이했다. [스파링]의 나는 어려서부터 계속 사건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원하지 않던 원하지 않던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삶을 살아왔었다. 그렇다면 나의 성장은 어디까지 이루어진  것일까.

 

소년시대 1

작가
로버트 매캐먼
출판
검은숲
발매
2011.05.13.

리뷰보기

 

이 속에서는 나는 아직 이십대이다. 아직 내 인생은 시작되지도 않은 것이다. 복싱에서 실제 형식을 취한 연습 경기를 '스파링'이라고 한다. 이제까지 나의 삶은 스파링이었던 것인가. 아니면 이제부터 스파링을 해만 하는 것인가. 상대가 누가 되었던 간에 스파링을 통해서 나는 나의 삶을 다시 정비할 것이다.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없을지는 지금부터 시작하는  스파링에 달려있다.

 

표지의 '스파링'이라는 글자는 하늘을 연상시키는 파란색이다. 군데 군데 보이는 하얀색은 구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가장 맑고 쾌청한 날씨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파란 하늘을 기대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감이 틀림없다. 도선우 작가는 아마도 '나'의 인생을 통해서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요, 작가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정말 순수하게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마치 마녀의 솥에서 피어오르는 적색 기운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핏빛 독기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결국 어느 순간이든 폭발하게 되어 있었다.(334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