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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7
존 카첸바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천사 對 악마, 악마 VS 천사. 사람들은 과연 어느편을 응원할까. 대부분은 아마도 천사가 착한 아이니까 당연히 천사를 응원해야 한다고 하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에 전제조건이 붙는다면 어떻게 될까? '악마가 천사를 죽였다'가 아니라 '천사가 악마를 죽였다'면 그 천사는 여전히 착한 천사일까 아니면 누군가를 죽였으니 그 또한 악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일까.
오랜만의 심리스릴러다. 스릴러라 자고로 '속도감'이 생명이라고 부르짖는 나에게 심리스릴러란 인내심을 요한다. 사건이 급작스럽게 진행이 되지 않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촘촘히 연결된 조직들이 숨쉴틈없이 몰아붙인다. 그 틈속에서 숨구멍을 찾아내어서 숨을 쉬면서 호흡을 이어나가면서 이 심리극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스릴러란 속도가 생명이이지만 심리스릴러난 촘촘함이 생명이다. 빈틈이 느껴지는 이야기 속에서는 긴장감이 계속 유지되기 힘들고 그렇게 되지 못하면 심리스릴러의 제맛을 느끼기 힘들어진다. 이런 단점들 때문에 사람들은 스릴러는 좋아하지만 심리스릴러는 조금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뛰어난 수작을 만나면 그런 차별은 무색해지고 만다.
6백여쪽이 넘어가는 심리극. 방대한 분량에 놀라게 된다. 보통의 심리스릴러는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사람들이 촘촘함에 질릴까봐 배려를 해주는 것일수도 있고 이갸기를 심리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힘들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단점들을 피하고자 뒷부분으로 갈수록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배치해 두었다. 사람들이 정답에 가까이 갈만하면 새로운 사건을 터뜨려서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이다. 물론 원래 사건과의 끊어지지 않는 연관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신병자의 문제는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알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에요. 그건 변치 않아요.
이제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조용히 세상을 살아가려면 약을 잔뜩 먹어야 하니까요." (31p)
바닷새, 나폴레옹, 클레오,기자까지 저마다 자신만의 별명을 가지고 불리는 이곳, 정신병원이다. 이들은 하루하루를 약에 취해서 살아간다. 자신들뿐 아니라 병원 관계자들에게도 관능녀, 알얄꿀꺽이라던가 하는 별명들을 붙여놓고 자신들이 편한대로 부르고 있다. 증상도 다양하다. 자신이 나폴레옹이나 클레오 파트라인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온갖 뉴스를 다 외워서 다니는 기자도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반드시 사건이 생기긱 마련이다.
어느날 밤 당직을 서던 간호사 죽은채로 발견된다. 발견한 사람은 바닷새와 소방수 피터. 병원에서는 그냥 일반적인 사건으로만 여기고 묻어두려고 한다. 그것이 이 정신병원을 계속 운영해 나갈 수 있는 비결이라도 되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연속된 사건이라는 것을 알고 검사 루시가 이곳에 단독으로 도착한다. 그녀는 자신이 조사하던 다른 일련의 사건와 이 사건과의 연관성을 조사하기 위해서 이 병원에 머무르면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으로 바닷새와 소방수 피터를 지목한다. 그들은 이 사건을 잘 해결할 수 있을까.
끝이 잘려나간 손가락. 그것으로써 루시는 이것이 연속된 사건이라는 것을 직감하는데 자신이 조사하던 사건들도 하나같이 손가락이 잘려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하나부터 셋까지 다양하게 잘린 손가락은 아마도 숫자를 의미하지 않을까. 얼만 전 읽었던 [나는 혼자 여행중입니다]라는 책이 생각이 났다. 아이들을 죽이고 그 손톱에 숫자를 남겨두었던 범인. 연쇄 살인범은 꼭 그렇게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기 마련인건가.
정신병원이라는 닫혀진 공간에서 범인을 찾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일단 제정신인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첫번째 문제일 것이고 겉으로는 무조건 도움을 주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그냥 이 사건을 묻어버리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관리직들도 문제다. 과연 루시를 비롯한 삼총사들은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짧은 단발머리만 골라서 죽여왔던 이 사건은 여기서 중지되는 것일까 아니면 어디선가 또 다른 범행이 저질러지고 있을까.
천사를 보려고 하지 마. 천사가 보는 걸 보려고 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목소리들이 다급한 경고를 외쳐댔다.
그만해! 그러지마! (446p)
자신의 실제상황을 바탕으로 과거를 거슬러가며 생각을 더듬어가면서 바닷새 프랜시스의 입장으로 쓰여지는 이야기들은 다른 어떤 스릴러만큼이나 촘촘하고 교묘하다. 어디 한군데 뚫을 공간이 없이 여겨지기도 한다. 지금 한창인 올림픽 게임의 펜싱 경기처럼 내가 이곳을 찌르면 방어해서 튕겨내고 내가 저곳을 찌르면 방어해서 쳐내버린다. 때로는 내가 어느 곳으로 공격을 할지 미리 알고 이미 방어태세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훅 찔러 들어오는 한방. 그 한방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