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어린시절은 평온한 시절이었다. 물론 서울 대학가에선 끊임없이 데모도 일어났었고 그래서 버스타고 가다가 졸지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본 적도 있었고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도 많았지만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듯이 그냥 평범한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던 그런 시절이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무언가 혁명이 일어나고 반란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살아오는 기간동안 과학은 발전을 했고 그 과학이라는 것이 인간에게는 편리할지도 모르지만 자연에게는 무지막지한 해를 끼쳤고 그럼으로 인해서 자연은 시나브로 병들어 갔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봐야 내가 살아온 기간일테니 반백년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세상이 더 빨리지고 빠르게 변화하고 그 변화의 속도는 자연을 망치는 속도와 정비례해서 가속도를 타고 있다. 세상이 이렇다보니 세상의 종말을 걱정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다.
그런 반응은 사실 문학에서 먼저 발생한다. 소설속에서나 보던 각종 잔혹 범죄들이 사실적으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그저 판타지로만 여기던 것이 또는 sf장르라고만 여겨지던 것이 실활에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입이 떡 벌어지게 놀랄 일이다. 소설 속에서 종말론이 언급된 것은 꽤 오래전이라고 여겨진다. 그런 종말론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잘못된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자신 혼자서 마지막을 대비하겠다고 재난키트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처음에는 비웃었지만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는 실제적으로 느끼고 보니 그게 과히 뭐라고 할 말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 지하벙커가 하나 있다. 좋은 말로 하자면 성소, 그냥 말 그대로 하자면 벙커나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종말을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장소. 대중적인 장소는 물론 아니고 고위층 사람 몇몇만 알고 있는 사유 대피소라고 할수 있다. 이 곳을 만들기 위해서 투자자들을 모집하고 그들이 낸 돈으로 건물을 지었다. 광고책자와 각종 소개난에는 의무실에 의사가 상주한다고 했고 바깥으로 나오지 않아도 음식이 자급자족할만큼 길러지고 있고 전혀 부족함이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바이러스가 창궐한다는 뉴스를 본 가족들은 하나둘씩 이곳에 모이기 시작한다. 사실 이 성소라는 곳이 바이러스 대피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아니면 지진대피용인지 아니면 핵폭발 대피용인지 그런 건 아무데도 나와있지 않다. 언제 그곳에 입주할수 있는지도 나와 있지는 않지만 바이러스 뉴스를 본 가족들, 물론 전 재산을 들여서 그곳을 산 가족들이 하나둘씩 이곳에 모인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장소에 여러가족이 모인다는 이야기는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인것 같다. 소재는 제각기 다르지만 [블랙아웃]이나 [사이버스톰]도 같은 유형의 이야기였다. 아주 오래전 책으로는 크리스티 여사의 [오리엔트특급살인]도 비슷한 유형이라 할 수 있겠다. 폐쇄된 공간에 모인 여러 종류의 사람들. 즉 밀실사건을 언급하게 된다. 물론 이 가족들에게도 사건은 일어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범인을 찾으려 하지만 사건은 마무리가 되지 않고 또 다른 사건이 터져버린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블랙아웃
- 작가
- 마크 엘스베르크
- 출판
- 이야기가있는집
- 발매
- 201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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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자신의 살길을 찾아서 하나둘씩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자신을 가두는 방법이 있다. 실제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나오는 방법이다. 또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사건을 이겨내려고 할 수도 있겠다. 다른 모든 사람이 하나로 뭉쳐서 단 한 사람을 버리는 경우도 나올 수 있겠다. 얼마 전 읽었던 [대통령의 골방]이라는 책에서 나왔던 답살도 그와 같은 방법에 속한다. 이 책의 경우는 어떠할까. 자신들을 이끌어주어야 할 가이드가 없어진 상황에서 그들은 어떠한 삶을 살게 될까.
사람들이 처음에는 체면을 차리고 인간적인 행동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려운 상황이 될수록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며 이기적인 되는 것은 [블랙아웃]이라는 책에서 이미 경험한 바이며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도 나오는 설정이다. 우리들은 어떨까. 최악의 상황에서 얼마나 이타적이 될 수 있을가. 자신의 모든 것을 들여서 성소를 준비해두었지만 그것이 성소가 아니라 오히려 "죽음의 입구"라면 그것 자체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지금 당신은 종말이 언제일 것이라고 짐작하는가? 당신의 성소는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