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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탐정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평점 :
하드보일드를 쓰는 작가 하라 료의 작품은 많지는 않지만 꽤 알려져 있는 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하드보일드라는 장르를 별로 선호하는 편은 아니라서 약간 외면하는 경향도 있다. 장르소설중에서도 스릴러나 추리나 경찰소설이나 다른 크라임류에 비해서 내가 항상 주장하곤 하는 퍽퍽한 노른자에 비유되는 하드보일드. 가끔씩은 너무 삶아 익혀버린 달걀노른자처럼 퍽퍽함에 목이 메일 지경까지 이른 적이 있다보니 약간은 한발 물러서게 된다.
하라료는 그런 하드보일드의 대가라 불리운다. 그의 작품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안녕, 긴잠이여] 라는 책을 통해서 이미 만나본 적이 있고 그 다른 사람들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책을 통해서 하드보일드의 제대로 된 퍽퍽함을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음의 준비를 먼저했다. 퍽퍽함을 삼키기 위한 준비를 했던 것이다.
왠걸 이번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기껏 미리 대비를 해놓았던 것이 덧없어져버렸다. 하드보일드보단 훨씬 더 말랑하말랑하다. 그러함으로 인해서 목맬듯이 한글자한글자 읽혀져 내려가던 것조차 물 흘러가듯 줄줄 흘러 내려간다. 어쩜 이리도 잘 읽힐수 있는지 나조차도 놀랍다. 이런 이야기도 쓸 수 있는 작가였어? 하다하고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전에 읽었던 그 작가의 작품이 맞는가 싶어 의심도 하게 된다. 아마 이후 읽었던 그의 작품들을 다시 한번 꺼내어 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아마도 그런 원인에는 이 책이 단편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탐정이다 보니 이 사무소에 의뢰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각각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거기서 마무리가 되고 다른 이야기에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으로 인해서 한 편씩 읽어내려갈때마다 긴장으로 조였던 마음을 한번씩 풀어주고 넘어간다.
또한 소재자체도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일본에서는 탐정이라는 사무소가 자유롭게 있다고는 하나 그들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심각한 사항들은 경찰에서 담당을 하고 그들이 하는 일은 일반 사람들의 의뢰를 받는 일인데 가드를 해달라는 내용이거나 또는 누군가를 미행해서 정보를 캐내달라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인해서 큰 스케일이나 심각한 내용들은 없는 편이다.
하라 료의 퍽퍽함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서운할 소식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처럼 퍽퍽함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하라 료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드보일드 작가의 말랑함을 느끼고 싶은가. 당장 펼쳐볼 일이다. 장르소설의 기본서라고 해도 충분할 정도의 만족감을 나타내는 작품. 심각한 장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도 있어서 그야말로 여기저기 팔방미인이 따로 없고 안성마춤이 따로 없다. 솔직히 기대이상의 작품이라서 더욱 즐겁다. 다음에는 퍽퍽함일까 말랑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