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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우체국 - 황경신의 한뼘이야기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2월
평점 :
같은 작가의 책이 한 권 더 있다. 국경의 도서관. 크기도 모양도 똑같은 두 권을 나란히 세워 놓고 보다가 제목을 바꿔보았다. 국경의 우체국, 초콜릿 도서관. 딱 맞아 떨어지면서 의미도 통한다. 두 권은 혹시 이런 제목으로 지어지려고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닐까.
처음 접했던 황경신 작가의 책은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라는 아주 긴 제목의 에세이였다. 분명 에세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들어있는 글들은 난해해서 나는 몇번이고 다시 읽어야만 했고 곱씹어야만 했고 글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써야 했다. 그렇게 작가와의 첫인상은 끝났다.
두번째 책인 [국경의 도서관]. 첫번째 책을 그렇게 싸워가며 읽어댔으니 기대감이란 없었다. 기대감 제로에서 읽는 책은 원래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을 주는 법이다. 여러가지 아주 짧은 단편으로 이루어진 국경의 도서관은 때로는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야기로, 때로는 여러번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는 공감으로 넘쳐났고 한, 두장 밖에 되지 않는 단편보다도 더 짧은 이야기로 부담없이 읽는 재미를 주었다.
[초콜릿 우체국]은 내가 읽는 황경신 작가의 세번째 책이다. 부제가 국경의 도서관과 같다. 38개의 진실된 이야기와 순수한 거짓말. 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이야기는 얼핏보면 국경의 도서관의 연장이라 할 정도로 닮아 있다. 비단 겉표지 뿐 아니라 속의 내용까지도 말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런 종류의 글을 아주 여러편 썼는지도 모르겠다. 한권으로는 내기 어려워서 두권으로 나누어서 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로와 한번 손에 잡으면 그 이야기 속에 풍덩 빠져버리고 말게된다. 때로는 우화같으면서도 때로는 동화같기도 그리고 때로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글.
봄의 공기 속에는 마약 성분 같은 것이 있어, 멋도 모르고 그걸 마셔버린 내가 자아를 잃어버리고 스르르 이곳으로 끌려왔다,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40p) 곧 봄이 온다. 공기는 이미 완전히 차갑지는 않다. 겨울 내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 두었다. 아직 장갑은 끼고 있지만 곧 봄이 온다. 봄의 공기 속에는 정말 마약 성분같은 것이 있을까. 봄이 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준비중이다.
이를테면 카레라이스가 노랗지 않고 푸르다거나, 사과가 빨갛지 않고 하얗다거나, 그의 집 앞에 피어난 목련꽃이 하얗지 않고 파랗다고 했다.(86p)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색을 가지고 있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여러색을 지니고 있는 광선이 반사되는 각도가 달라서 우리 눈에 보이는 컬러는 하나라고 했던가.
본문속의 이 친구는 실연의 상처로 인해서 연속적으로 한 행동이 복합적인 작용을 일으켜 사물의 색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자신만의 색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 파란 목련은 왠지 이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푸른 카레라이스는 왠지 맛이 없어 보일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사물을 꼭 한가지 색으로 보는 것도 일종의 선입견이려나.
레몬에이드처럼 시고 달콤한 슳픔은? 덜익은 포도처럼 시금털털한 슬픔은? 물감처럼 떫은 맛의 슬픔은? 혹은 푹신한 솜이불처럼 부드러우면서 애틋한 슬픔은?....라는 식으로.(113p) 감정에도 종류가 있을까? 작가가 나열한 이런저런 종류의 슬픔 말고도 아픔이나 기쁨에도 종류가 있을까?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는 경우가 있고 슬퍼서 나는 눈물, 감동해서 나는 눈물, 웃어서 나는 눈물처럼 여러 종류가 있는 눈물처럼 정말 감정도 종류가 있다면 내가 가끔 느끼는 슬픔은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까. 이왕 느끼는 슬픔이라면 절절하고 가슴 아픈 그런 슬픔이 아닌 부드럽고 또는 달콤한 슬픔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태초에 세상이 만들어질때 슬픔이나 고통처럼 아픈 감정은 없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저마다의 특색을 자랑하는 글들이 모여서 이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내고 있다. 초콜릿처럼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맛을 가지고 있는 책. 달달함을 주어서 책에 푹 빠지게 만들어 버리고는 그 행간 사이에 씁쓸함을 첨가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맛을 느끼게 하는 책. 한 권의 책 속에서 여러가지 맛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