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나 소설
김규나 지음 / 푸른향기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결혼을 했느냐는 질문은 '결혼해봤어요?'와는 다르다. 그 질문엔 결혼이 인생의 종착역인 양 이혼 같은 건 아예 예상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온 사람에게 '결혼했어요?'란 결혼생활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뜻이기도 하고 성 경험의 유무를 묻는 것이기도 하며 한 남자에게 소속되어 있는가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결혼했느냐는 말 다음에 반드시 따라오는 물음이 '아이는 있어요?'였다.(260p) 

 

생뚱맞게도 나는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결혼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이라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잘하지 않는 질문이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람을 알기 위한 절차처럼 반드시 통용되어버리곤 하는 질문. 이런 질문을 잘 받을 일이 없어 누군가가 어쩌다 한번 물어보면 당황하게 된다. 그냥 쿨하게 웃고 넘어갈수 있는 답변을 하면 좋은데 말이다. 요즘엔 누군가 물어보면 한번에 시크하게 대답하려고 연습중이다.

 

'칼'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살아가기 위한 도구가 된다. 요리사에게는 맛난 음식을 할 수 있는, 정육점에서는 고기를 썰어 팔 수 있는, 그리고 의사에게는 환자의 병을 고칠수 있는 도구. 처음에는 과감하게 그어야 한다.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면 안된다. 재료를 자르던 환자의 몸을 자르던 첫 손질은 과감히그리고 담대하게 그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마구잡이로 그어서는 요리를 망치고 환자를 죽일 것이다. 조금은 델리케이트하면서 조금은 더 디테일하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마냥 세심한 손재주가 요구된다. 작가에게 주어진 칼이 '글자'라면 그녀는 이 글자들을 아주 잘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처음에는 대담하게 확 긋고 그 이후에 세밀한 부분을 조율한다. 그러므로 인해서 글이 살아난다. 조각가의 손에서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말이다.

 

넌 정말 맛있어. 주원은 가끔 전화통화만으로도 아주 낯설게만 들리는 원색적인 이야기로 나를 자극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의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아파트와 카페로 나를 불렀다.(96p) 그녀의 이야기는 관능적이면서도 자극적이다. 그저 무심히 지나갈수 있는 단어들조차도 그녀가 배열하면 왠지 분위기가 더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요리사가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놓는 것보다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음식을 이쁘게 만드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다. 물론 그녀의 글들은 맛있기조차 하다.

 

인생에 꼭 하나 예측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돌발'이에요. 무난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삶이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탈선이죠. 당황하거나 놀랄 필요는 없어요. 어떤 것은 사라지고 또 어떤 것은 남아 우리를 더 풍요롭게 해줄 테니까요.(51p) 내가 살아가면서 '돌발'이라는 걸 해본 적이 있었을까. 그저 곧이곧대로 앞만보고 신호등이 시키는대로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왔던 내게 어떤 행동이 돌발이었을까. 누군가에게는 충동구매가 돌발일수도 있겠고 낯선 사람과의 원나잇이 돌발일수도 있겠다. 사라지거나 남아있으면서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돌발. 내 삶에 필요한 요소일까 아니면 그냥 외면해 버려야 하는 요소일까. 돌발. 하루종일 입안을 맴돌것만 같은 단어 그리고 생각.

 

커피를 내리는 동안은 커피에만 집중해야 해요.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는 비결이지요.(39p) 무언가를 할 때 그 행동에 집중해야 가장 좋은 것이 나온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일. 그러나 우리는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서 정작 중요한 그 일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먼지로 인해 뿌연 아침. 향이 짙은 그러나 맛은 옅은 한잔의 아메리카노가 당기는 시점이다. 작가의 글은 커피향은 머금은 칼날처럼 예리하면서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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